나다나엘(Nathanael)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인 지금의 구약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메시야 대망사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과 함께 사람들의 나름의 여러 추측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왕궁에서 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메시야의 오심은 결코 왕궁의 왕과 같이 추앙받는 자리에서 오실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고, 죽으시기 위해서 오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빌립을 통해서 ‘메시야’,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심을 나다나엘에게까지 전해집니다. 빌립이 전한 말을 듣고 나다나엘이 한 반응은 어떻게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한복음1장46절. ‘메시야가 어떻게 나사렛에서 날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나사렛(Ναζαρετ)’은 ‘지켜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나사렛이라는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 곳은 주목 받지 못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아주 낮게 비하할 때에 ‘나사렛 사람(Nazarene)’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나다나엘이 어떻게 메시야가 나사렛 사람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 속에 충분히 납득이 가는 태도였습니다. 그냥 평범한 성읍도 아닌 나사렛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나 생각과 다른 일에 대해서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납득이 가야지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의 논리와 납득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논리와 이해의 밖의 것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배격하는 것보다는 충분히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과 믿음의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이해 그 이상의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당시 메시야에 대한 생각을 깨는 메시야, 그리스도의 나사렛 탄생이라는 말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격했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의 말을 듣습니다. 메시야가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와야 합니다. 그리고 보아야 합니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성경이 어떠하며, 기독교가 어떻다는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정말 비판하고 싶다면 와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와서 보아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믿음은 결코 얕은 지식이 아닙니다. 당시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 성경에 대해서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얄팍한 지식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의 ‘와 보라’는 말에 자신이 직접 예수님께 가서 확인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며,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는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한복음1장47절.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가리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신 것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약속된 메시야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고 하신 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처럼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이라고 자부하면서 행동으로는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한복음1장48절. 당시에 무화과나무는 아주 흔한 나무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배우고 기도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경건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직접 확인하고자 했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그가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와 보라’는 초청에 응해 보세요. 그러면 밖에서는 모르던 중요한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