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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제1차 세계대전은 4년 간의 참호전···흙탕물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

Los Angeles

2009.09.1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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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에는 숫자가 붙는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39년 9월 '타임'지가 두 전쟁에 처음 숫자를 붙였다.

그전까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대전쟁(Great War)' 또는 '4년 전쟁'으로 불렸다. 초기에 유럽인들은 전쟁이 기동전으로 곧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기관총의 등장으로 방어하는 진영이 유리해지자 연합군과 독일군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서부전선'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서 공격해오는 적을 막는 데 주력했다. 1914년 12월에는 스위스에서 영국해협까지 거의 1000㎞에 달하는 참호가 구축됐다. 참호전은 4년 동안 계속됐다.

참호 속에서 비는 무서운 적이었다. 전선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은 비도 잦았지만 지표면이 바다보다 낮아서 땅을 파기만 하면 물이 솟아올랐다. 이 지역을 맡은 영국군에게 가장 큰 적은 물과 진흙이었다.

참호는 늘 진흙탕으로 발목까지 빠졌고 더 깊이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병사들은 때로 허리.겨드랑이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물속에서 며칠씩 계속 근무를 서야 했다.

1914년 10월25일부터 이듬해 3월 10일 사이에 비가 오지 않은 날은 18일뿐이었다. 이 가운데 11일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1916년 3월에 내린 비는 35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전쟁 중 작성된 대대 보고서에는 진흙탕으로 인한 고통을 언급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때로 병사들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체중을 골고루 분산시키려고 길게 누워야만 했다. 1916년 솜 전선의 참호에서 한 대대는 진흙 속에서의 탈진과 익사로 16명의 병사를 잃었다. 한 병사는 46시간이나 목까지 차는 진흙 속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구조됐지만 결국 15분 만에 죽고 말았다.

포탄 터진 자리에 생긴 구멍도 위험했다. 전투 중 부상해 정신이 혼미해진 병사에게 물이 찬 포탄 구멍은 죽음의 덫이 되곤 했다. 소총이 진흙에 빠지면 작동이 안 됐기에 병사들은 사격을 하기 위해 총에 오줌을 갈겼다. 1917년 프랑스 병사들은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돌격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양떼처럼 '음매~' 소리를 내며 전진한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정치인.지휘관들에 대한 애처로운 저항이었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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