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아래서] 이제는 금을 지우고 안아 줄 때
전쟁이 멈췄다. 땅에는 금을 그었다. 30년도 지나버린 그날 방송국의 카메라가 헤어졌던 사람들의 사연을 비추기 시작했다. 전쟁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빨리 방송국으로 달려오세요. 통금이 해제되었으니 언제든지 나오실 수 있어요"라는 방송 진행자의 말은 전쟁의 아픔으로 닫히고 굳어버렸던 이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해버렸다.
150명의 사연으로 시작했던 저녁 방송은 다음날 새벽 만여 명이 넘는 이산가족들로 가득 찬 앞마당에서까지 이어졌다. 참으로 서로를 열렬히 찾았다. 가족들도 좋았지만 옆집 살던 개똥이네라도 좋았다. 스스로 몰랐던 그리움은 그렇게 깊었다.
우리가 그었던 금이 어찌 이것뿐이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계만이 아니라 서로 멀어지게 하는 금을 그어버리고 자신이 지치고 힘든 것이 외로움이란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랑의 서약을 부끄러운 듯 다짐했던 남편과 아내가 금을 긋는다. 혀에는 무기를 달고 서로 노려보지만 서로 상처를 건드리고 잘못을 따지지만 사실은 외롭다는 이 말 한마디가 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고 싶어서 전쟁을 하다니.
이웃과 금을 그으면서 편안해질지는 몰라도 평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과 금을 긋고 웃으며 살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래도 금을 긋고야 만다. 내가 소중하다고 하면서 자신에게까지 금을 긋는다.
이 모든 금긋기의 시작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그었던 금긋기가 있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쉽게 금을 그었다. 마음에 빈 곳이 있다는 것을 느낄수록 무엇이든지 채워보려고 했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그리움은 분노와 자기 연민으로 총칼이 되었다.
그렇게 전쟁은 할지라도 금은 지우지 않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금을 지우며 오셨다. 사랑이라고는 분노와 전쟁밖에 모르는 우리는 총탄을 퍼부었지만 다 맞으면서 넘어서 우리에게 오셨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분노와 총알이 모두 그리움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멸시와 분노의 욕을 들으시면서 우리를 품에 안으셨다.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든 손을 비우고 그리움을 그리움이 되게 할 시간이다. 코로나 19가 그은 금이 아니다. 코로나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었던 금이다. 이제 너의 사랑이 그리웠다고 말해도 되고 외로웠다고 말해도 된다. 아내의 사연도 남편의 사연도 그리고 이웃의 사연도 칼과 총이 아니라 그리움이니까. 금을 지우고 안아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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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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