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청승 떨지 맙시다
청승이라는 말은 한문에서 나온 것 같지만 한문과는 상관이 없는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궁상맞고 처량하여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궁상맞은 이라는 말도 가난하고 넉넉지 못한 상태의 말입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처량하게 앉아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으면 “애가 왜 이렇게 청승을 떨고 있니. 있는 복도 나가겠다”라고 야단을 칩니다.아침에 일어나 카톡을 엽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밤새 보낸 카톡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카톡이 신세타령입니다. ‘이제 늙었으니 외롭고, 세상이 허무하고 갈 날이 멀지 않았고, 기운이 없고’라는 처량한 말들입니다.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늙고 싶어서 늙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잘못을 저질러 늙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세월이 가니 나이 들고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매일 지나간 달력만 들여다보면서“내가 늙었다. 내가 늙었다”라고 탄식만 하는 것이 곧 청승을 떠는 것입니다.
지금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의 친구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죽었습니다. 그럼 그의 12살은 그의 삶의 95%를 산 셈입니다. 또 나의 친구 하나는 20대에 자살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20살은 100세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참 공평하시고 선하십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대로 ‘자기가 죽는 날까지 곡간에 추수한 곡식을 모아드리고 삶을 즐기자’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매일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는 날만 기다리면서 20년, 30년을 사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밖에 볼 수 없습니다. 어제는 벌써 영원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역사이고 내일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피노자의 말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저는 대전 건양대학의 김희수 총장님을 존경합니다. 그는 올해에 94세입니다. 그런데 지금 건양대학에서는 1200 침상의 병원을 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이 욕심이 많아서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그분의 정신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Grandma Moses는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80세에 전시회를 시작해 100세까지 전시회를 하다가 101세에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뽀빠이 이상용 씨가 나이 드신 양치기 노인을 만났습니다. “지금 염소가 몇 마리나 됩니까” 물으니 289마리라고 했습니다. “참 용하십니다. 그럼 연세는 얼마나 되십니까” 그러니 “글쎄 80은 지났는데 잘 모르겠네.”“그럼 많은 염소의 수는 정확히 아시면서 나이를 기억 못 하세요” 하니까 “염소는 누가 훔쳐가니까 자주 세어 보지만 나이는 누가 훔쳐가지 않으니 자주 셀 필요가 없다네”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 나이를 기억하지 맙시다. 사는 동안 즐겁게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젊은 사람들처럼 즐겁게 살아야지요. 매일 나이를 세면서 청승을 떨지 맙시다.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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