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의 향기] 겸손과 교만
한상만 신부/성 크리스토퍼 한인성당
그래서 그들이 광고하는 신발과 옷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야구 선수 되고 싶다고 말할 때와 별로 다르지 않게 소방대원이 되겠다고 대통령 되겠다고 하듯이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아이들도 특별한 사람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한편으로는 기쁘다.
그런데 그들 방식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저 스타들의 삶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더구나 그들을 무조건 모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살까지도 모방하는 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참 영웅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와 행복을 가르쳐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별들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일 때는 깊은 밤이다. 한 밤중에 도시의 빛이 없는 사막이나 바다 한가운데 같이 짙은 어둠에서나 별빛이 돋보인다. 대낮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태양 빛 자체에도 관심이 없으니 별빛이 돋보일 이유가 없다. 대낮에는 오히려 빛에 비춰진 세상이 아름답다.
여기 예로니모성인께서 은유 하신 빛의 이야기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라틴말로 성경을 번역하시면서 샛별을 일컬어 루치펠(Lucifer)이라 하고 이 이름을 타락한 천사에 적용하셨다. 모든 피조물 위에 탁월하게 창조되었던 천사가 하느님께 대항하여 대립했고 그 결과 모든 특권을 빼앗기고 버려졌다는 사탄의 우두머리 이야기이다.
루치펠이라는 단어의 말뜻은 '빛을 지닌자'라는 뜻이다. Lucem(빛을)과 Ferre(지니다)의 합성어로서 명사로 사용되고 '스스로 빛을 지녔다'하는 '교만'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새벽 하늘의 어둠이 깨지면서 태양이 솟아 오를 때 서쪽에 매달려 있는 샛별을 본적이 있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쪽 하늘에 빛의 근원인 태양이 솟아 오르고 있는데 반대쪽 서쪽하늘에 매달려 자기도 스스로 빛이라고 맞서고 있는 이미지를 상상해 보라. 가소롭지 않은가.
교만은 이와 같이 자기를 터무니 없이 높임이고 그 결과 참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대적하는 결별이고 추락이다. 교만은 이같이 어떤 빛나던 스타들의 추락의 이유였고 상대적으로 그런 위기를 극복했던 스타들의 겸손을 돋보이게 한다.
이 때 말하는 겸손(humility humilitas)이라는 단어는 흙(soil humus)이라는 단어와 상관 있다. 땅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사람을 그려보라. 그것이 겸손이 뜻하는 "깊숙한 그곳에 내려가 낮아짐"이다.
그러나 이 낮아짐은 목적이 있다. 하느님을 높이기 위하여 낮아지는 것이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높여 주시기를 바라는 자기의탁의 낮아짐이다. 그런 뜻에서 치욕과는 엄밀히 구별된다.
예수님처럼 하느님 때문에 "깊은 구렁 속(시편 1301)"에 내려간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다. 그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비로소 기도하는 사람이다. 마음은 사람의 숨겨진 중심이며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만이 감지하고 살피시는 장소다. 이 신비의 자리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결단의 장소 하느님과 계약이 맺어지는 장소에서 기도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월의 원리가 겸손이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보면 안다. 제 스스로 빛은 아닌데 빛나는 광채를 발산한다.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신 빛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냉담했던 마음이 훈훈해 지고 생기를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이 참 영웅이며 스타가 아닐까.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되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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