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에서 더 좋은 환경이나, 유익한 것을 만들어 가고 창조하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신 삶의 가치를 높이고 축적하는 기본자세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의 섭리를 부정하는 반대의 현상들, 즉 원망이나, 불평불만, 또는 비생산적인 말들이 생활주변에 강하게 나타나는 환경 속에 살아가므로 인간은 불행이라는 운명의 발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삶을 불행으로 떨어트리는 원인을 찾아보면, 과도한 인간 탐욕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뭐가 되겠다는,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또는 무엇인가 더 가지겠다는 욕심이 지나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항상 불행의 늪에 빠져 살게 되는 것이다.
또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가지려 하고, 얻으려 하는 욕망이 삶을 더 힘들게 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이나 현실 자체를 긍정하면서 성장해야 발전을 가져오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능력과 환경, 처지를 무시하기 때문에 불행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잘 적응하고 현실에 충실하면 의외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늘 겸손하여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면 예기치 못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때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당장 힘들다고 삶의 의미를 경시하거나 비관해서는 안 된다.
오래전 한국의 모습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시골에서 서울 지역의 어느 명문대에 입학하면 학비조달 염려는 둘째치고, 가족 잔치부터 열곤 했다. 그만큼 경사스런 일로 여겼다.
반면, 이런저런 환경이나 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않기도 하고 못 간학생들은 이웃이나 동료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 지역 고향에 붙박이가 되어 남아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게 타인의 부러움을 사며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도 많았음을 보게 된다. 어떤 이는 감옥에 가기도 하고,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기도 했고, 명퇴를 당해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이들도 있다. 사업하다 실패하여 재산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고, 그것 때문에 자살해 죽은 자도 있다.
힘들지 않게 잘 살려고 극심한 경쟁을 거쳐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살았는데, 일부 어떤 이들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다.
반대로 지방 고향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 역시 모두는 아니지만, 마을 유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인들이 할 줄 모르는 농사를 통해 이익을 얻고, 농산물과 연관한 사업을 통해 예상외로 경제적 부를 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거철이 되면 그 지역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그 후에는 당선된 자들이 찾아와 굽신거리는 인사를 받기도 하며 살아간다. 처지와 입장에 원망하지 않고, 순응하며 열심히살다 보니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도시로 나가 출세했다 하여 부러움을 샀던 그룹들과 반전의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앞선 사례는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면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되고, 경이스런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이런 교훈은 성경이 잘 말해 준다.
성경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2-13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했다. 처지와 형편을 잘 다스리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한순간에 불과한 눈앞의 성공이나 화려함에 대해 부러워하거나, 한순간의 자신의 넉넉지 못한 환경에 대해 처지를 원망하거나 비관할 필요가 없다. 환경이나 처지를 이해하는 능력, 인내하는 능력, 긍정적 방향으로 승화시켜 가려는 용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살면 누구못지않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행복하고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