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자 릴레이 인터뷰-6]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건설은 '벤처 정신' 필요···도전 계속해야"
업계 관행 따라 하기보다 성장 더디더라도 '정도 경영'
2001년 미분양 자금난으로 사옥 매각한 '아픈 추억'도
"하반기까지는 건설 경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며 위기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마침 인터뷰를 한 날 아침엔 시공능력 37위 건설업체인 현진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앞으로도 건설 경기가 어려울 것 같은가.
"밑에서 불쑥 (현진 부도 같은) 일이 터진다. (건설 경기는) 계속 어렵다고 봐야 한다. 올해 하반기까지는 그럴 것 같다."
-언제쯤 좋아질까.
"서울 지역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지방은 찬바람이 씽씽 분다. 일부 지역 부동산 값이 회복됐다고 하지만 이 역시 거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호가가 올라간 것 뿐이다."
-지난해 매출과 이익이 줄었다.
"상당히 큰 건설사들이 대주단(은행권이 결성한 채권단) 협약에 들어갔다. 이런 회사들은 대개 2~3년 전부터 인수합병(M&A) 등으로 외형을 키웠거나 시행사를 끼고 수주를 늘린 경우다. 우리는 리스크 관리를 신경 썼다. 매출은 아무래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올해 실적은 어떨 것으로 보나.
"하반기에 주택 신규 분양이 여러 곳 계획돼 있고 토목.공공 부문에서 선전이 기대되는 만큼 점진적으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본다. 해운대 아이파크 수원 아이파크 시티 등 대형 사업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내년엔 더욱 나아질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부산 해운대 경기도 수원 권선동 일대 대규모 부지를 사들여 개발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쇼핑몰.학교.공원 등의 기반시설을 갖춘 미니 신도시급 주거단지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길게 길게 보고 사업한다"며 다른 건설사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수원 프로젝트는 전체 규모가 3조원짜리다. 부지 매입 대금만 7000억원이 들었다. 해운대 아이파크의 경우는 2000년에 부지를 사들여 이제 사업을 시작했으니 8~9년 걸린 셈이다. 한국에는 10년쯤 걸리는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 장기 사업을 한다는 것은 천천히 굴러가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2007년 10월 10만원을 넘던 주가가 지금은 4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웃으면서) 주식 시장은 미인대회 같아서 저 여자가 예쁘다고 하면 저 여자에게 이 여자가 예쁘다고 하면 이 여자에게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 내실이 있으면 언젠가는 올라갈 것이다."
-자동차 비즈니스를 하다 건설 분야로 옮긴 지 10년이 지났다.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여유 있는 표정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대상이 달라졌다. 이전엔 어디에 가든지 자동차 램프나 옆모양 등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지금은 거리 풍경을 주로 본다. 자동차는 건설과 달리 고객 반응이 상당히 빨리 오는 상품이다. 다만 5년 10년이면 없어지고 만다.
반면 아파트는 50년 100년 가는 제품이다. 더욱이 자동차는 재산 목록 2호 아파트는 1호 아닌가.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이 다르다. 건설은 긴 호흡을 갖고 하는 사업이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조업은 성과물이 집적되는 경향이 있는데 건설업은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벤처'다. 마치 화전민이 확 불 지르고 농사지은 다음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과 비슷하다.
또 제조업은 인풋 대비 아웃풋을 정확히 체크할 수 있는데 건설업은 이게 어렵다. 철근이 하나 빠졌는지 아닌지 실제로 확인하기가 힘들다. (일일이 확인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점검한다고 해도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사후 정정도 어렵다."
-건설업 하면 '복마전' '비자금의 온상'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자동차의 경우는 국제적으로 경쟁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달하지 못하면 도태한다. 건설업은 국내 시스템에 맞춰 경쟁하다 보니 발전이 더디고 투명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고뇌도 많이 했다. 어떤 사업은 포기한 적도 있다. 비자금이 필요한 경우라면 아예 수주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건설업도 정정당당하고 투명해지는 과정에 있다. 성장이 더디더라도 내실 경영을 추구했다. 선친의 정도 경영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볼 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2001년이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8000여 가구의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자금난을 겪었다. 여기에다 아이타워(현 강남파이낸스빌딩)를 짓느라고 계속 투자를 해야 했다. 당시 부채 규모가 2조7000억원이나 됐다. 자금 회전이 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자금의 70~80%를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통해 조달하고 있었다"며 "이를 장기채로 바꾼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001년 5월 론스타에 아이타워를 매각 6000여 억원을 조달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아이타워를 매각할 때 아쉬웠을 것 같다.
"잘 지었고 멋있는 건축물인데…. 굉장히 아까웠다. 그러나 또 지으면 되지 않나 싶었다. 또 아이타워 매각을 계기로 재무구조가 좋아져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건설이라는 업종은 유목민처럼 텐트 치고 옮겨 다니면서 '영원히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에 아이파크몰을 운영 중인데.
"처음엔 동대문 밀리오레나 굿모닝시티처럼 분양 사업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입점 업소들의 영업 실태를 보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특히 연이어 있는 점포끼리 똑같은 제품을 파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다 편안한 쇼핑이 가능한 백화점 컨셉트로 바꾸게 된 것이다. 상권 형성이 제대로 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30%씩 성장하고 있다. 내년에는 경상 흑자가 날 것이다." 정 회장은 재계 인사로선 드물게 '아파트 살이'를 하고 있다.
2004년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삼성동 아이파크에 입주한 것. 그는 "아파트는 연료 효율이 높고 인터넷 망을 까는 데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우리가 정보기술 강국이 된 데는 아파트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현대자동차가 요즘 잘 나간다. 자동차 사업에 대한 미련은 없나.
"미련 같은 거 없다. 아버님(고 정세영 명예회장)께서 회사 설립부터 기반을 닦는 데 기여했고 나도 조금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만족한다."
WHO?
1962년 서울생.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용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영국 옥스포드대(정치학 석사)에서 유학했다. 정 명예회장이 자주 하던 ‘사람은 무조건 근면하고, 성실해야 하며, 결과도 좋아야 한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단다.
8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기획·자재·개발 부서 등을 거쳐 96년 회장까지 올랐으나 99년 3월 현대산업개발을 맡아 현대그룹에서 독립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스키·테니스·자전거·수상스키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매니아로 한때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차진용.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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