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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욕설은 쏟아 놓은 그대의 것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부처님께서 라자그리하 근처 대숲의 처소에 계실 때다. 하루는 어느 바라문이 성이 머리끝까지 올라 부처님을 찾아와서는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자기 친척 한 사람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것이 분해서였다. 갖은 험한 소리를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부처님은 이윽고 좀 잠잠해진 틈을 타 바라문에게 물었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집에도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가? 물론 있소. 그렇다면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있겠구려. 그럼 있지요. 대접을 했는데도 만약 손님이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야 아무래도 도로 내 것이 되겠지요.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방금 내 앞에 차려 놓았던 그 많은 욕설들을 나는 하나도 먹지 않았다.

이 말씀에 크게 부끄러움을 느낀 그 바라문은 곧바로 출가하여 열심히 닦고 행한 끝에 마침내 응공 즉 아라한이 되었다는데 응공이란 능히 대접받을 만한 자라는 뜻이고 줄여서 나한이라고도 한다. 이는 잡아함경에 실린 이야기로 남이 성을 내더라도 바른 생각으로 자제를 하는 것이 능히 자기를 이기는 동시에 남을 이기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렇듯 부처님은 우리가 무슨 일에나 화를 누르고 성을 내지 말 것을 당부하셨는데 성냄은 욕심 어리석음과 함께 우리 불자들이 가장 조심하고 삼가야 할 세 가지 독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복잡한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루하루 너무나 화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새벽에 잠자리에서 눈을 떴터 밤에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화를 내고 성깔을 부리자면 어느 것 하나 트집 잡지 못할 것이 없다. 우라질 아침은 왜 이리 빨리 찾아오나 입맛은 왜 이리 없나 식구들 태도는 왜 저래 오늘 따라 길은 왜 이리 막혀?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에 사사건건 화를 내어 봐도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 오고 밥맛은 더 달아나 버린다.

식구들은 가시 돋친 말로 더 화를 돋우게 되고 지각은 맡아 놓은 당상이다. 누워 하늘을 향해 침 뱉는 것이며 바람을 향해 흙을 던지는 꼴이다. 그 침은 내 낯에 떨어지고 흙먼지는 내 눈에 날아든다.

이렇게 꾹꾹 속을 삭이고 있는데 누가 맞대놓고 내게 욕설이라도 퍼붓는다면 까짓것 잘 만났다 웃통 벗어젖히고 한 판 붙는 게 정신건강에 나을지도 모른다. 조국이 망한다 해도 눈 하나 꿈쩍 않겠지만 내 귀에 거슬리는 한 마디는 그냥 못 넘어가는 게 또한 우리 본색이니깐.

하지만 특히 이 미국에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하며 맞대거리 했다간 낭패를 입고 덤터기를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혹시 상대가 이를 노려 올가미를 쳐 놓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이에 휘둘리지 않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 서로 화를 돋울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도록 환경과 조건 인간관계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항상 좋은 말로 서로를 대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대화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생긴 오해는 빨리 풀고 혹시 화를 돋울 만한 빌미를 준 일은 없을까 상대의 처지에서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현실에 윤활유를 칠하는 일이요 상대의 구업을 미리 막아 주는 선업 쌓기다. 하지만 이리저리 애를 썼는데도 아랑곳없이 내게 험한 소리를 퍼질러 놓는다면 어쩌겠는가 악업을 보탠 중생을 가여이 여기며 우리도 부처님 흉내를 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쏟아 놓은 그대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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