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11] "방문 약속 지키다니 정말로 놀랍다"···'발바리 캠페인' 호응에 자신감 얻어
그렇게 힘이 빠져 지쳐가고 있을 무렵 조금씩 조금씩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후 시간에는 은퇴한 노인들이나 어린아이를 돌보는 주부들과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심하던 노인들은 갈 길이 바쁜 나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 20분이고 30분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도 했다. 나로서는 일분일초가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한 표가 아쉬운 판에 뿌리치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도 없었다.하루는 7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나왔다. 이번에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수키 캥'이라고 소개했더니 땀을 뻘뻘 흘리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들어와 물이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나더러 소파에 앉으라고 하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지역에 30년을 살았는데 집을 찾아온 후보는 당신이 처음이오" 하면서 "당신에게 꼭 표를 던지리다" 하는 게 아닌가.
분명한 한 표를 확보한다는 것이 그렇게 흥분되는 일일 줄은 미처 몰랐다. 힘이 불끈 솟았다. 그렇구나 발로 뛰는 것이 효과가 있구나 그래 끝까지 해보자.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개 방문하기 며칠 전에 엽서를 보내 언제쯤 집을 방문하겠다고 통지한 다음 찾아갔다. 사전 통지 없이 낯선 사람이 불쑥 찾아가면 경계를 하거나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바인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보수 성향의 주민이 많기 때문에 집을 방문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어떤 집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이 보낸 엽서를 며칠 전에 받았지만 정말 이렇게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 당신이 와서 놀랐어요. 약속을 지키는 것을 보니 신뢰할 만한 사람인 것 같네요.
이번에 누굴 찍을까 고심하고 있었는데 당신에게 투표하겠어요." 발품을 파는 노력에 대한 보상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내 앞에서 직접 표를 주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확신도 점점 커져갔다.
처음에는 서너 명의 자원봉사 학생들이 거들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 감각이 없다 보니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분위기만 썰렁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엔 거의 대부분 혼자서 다녔다. 노크를 했을 때 사람이 있는 집은 네 집 가운데 한 집 정도에 불과했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문고리에 홍보 팸플릿을 걸어놓고 메모를 남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에 점점 자신이 붙었다. 전자제품 유통 회사 서킷시티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할 때 많은 고객을 접해본 터라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나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에는 자신이 있긴 했다. 정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고객유권자에게 상품후보자을 파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바리 캠페인'을 한 달 정도 하니까 익숙해져서인지 피로감도 줄어들었다. 더구나 하면 할수록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친근감을 보이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하루하루 돌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놀이처럼 신바람이 났다.
어바인 지역에 한인 중국계 이란계 같은 소수계 이민자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인구의 절반을 넘는 백인 유권자들의 표를 얻지 못하면 당선 가능성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 주민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을 때는 더욱 힘이 솟았다. 어떤 백인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신문에서 당신을 봤어요. 말이나 생각이 인상적이더군요" 하면서 기꺼이 한 표를 주겠다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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