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마다 얻어오는 달력 중에 음력이 표기된 달력은 특별히 나에게 뽑혀 식탁 위 부엌 벽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단 일년간의 시한부 벗이 된다.
밤이 길어지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추분이 지났는데 아차 싶어 친정엄마의 생신 날짜를 꼽아 본다.
멀리 이국땅에 있는 딸래미 전화 한통에도 감격해 하실 유일한 효도마저 놓치나 싶었는데 안심이다.
가깝게 살면 제철음식이라도 손수 만들어 드리면 좋으련만 요리책을 낸 딸의 요리를 한번도 드셔본 적이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지난 겨울에 잠시 친정에 가서도 내가 좋아한다고 이북식 김치만두를 빚고만 계셨으니….
어김없이 대추며 버섯이며 햇우엉까지 풍성한 가을향이 코끝에 맴돈다. 우엉 한단 잡아드니 한뿌리 빼들고 채찍질 시늉을 하는 아들의 재롱에 어느새 울적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거친 뿌리채소를 먹어야 장수한다는데 흙의 정기를 듬뿍 빨아들인 우엉은 섬유질이 많고 독소를 배출시키는 훌륭한 식품이다. 깨와 미소된장을 섞어 두부로 드레싱을 만들고 구기자 몇알 뿌려 색을 맞추니 편안한 절간 음식같다. 얼마 전 심장수술을 한 이웃 어르신께 담아갈 접시를 찾는 손이 갑자기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