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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내가 빵을 굽는 이유

Los Angeles

2021.03.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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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할아버지 산소에 가져가려고 하니 꼭 좀 부탁해요. 나만 맛있는 거 먹어서 영감한테 미안해서 내가 잠을 못 이루겠어. 생전에 빵 좋아하셨던 우리 영감 산소에라도 갔다 드려야지….”

“내가 돈이 없어서 하나밖에 주문을 못하겠는데 배달 좀 부탁해요. 늙은이가 차도 없고 택시 타면 차비가 더 나와.”

200명이 넘게 입력되어 있는 손님들 중 오늘은 또 어떤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접할 수 있을는지…. 하루를 기대 속에서 시작해 본다.

2년 전 결코 작지 않은 연봉을 뒤로 한 채 18년 동안 몸 담았던 의류회사를 그만두고 50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들 정신나갔다고 극구 만류했다.

2000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미국 땅에 발을 내딛고는, 혈혈단신 빈 몸으로 이민길에 오른 남편을 보조해가며, 어린 두 자식들을 데리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제, 어깨에 짓눌러 있던 가족부양의 책임감에서 조금은 해방된 것 같아 과감히 사표를 내고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꿈을 좇아 베이커리를 배웠다.

하지만 시작 초기부터 코로나19에 발이 묶여 가게 오픈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홈베이킹(home baking)’을 알게 돼 라인선스를 취득했다.

그리고 단 한번의 라디오 방송 출연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셨다. 주문한 빵 배달을 하면서, 대문 밖에서 서성이며 빵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한국에 계신 친정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주문 하나만 해도, 무료 배달 해드립니다.”

15달러짜리 빵 한 봉지를 들고 6마일이 넘는 거리를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은 뭔지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그분들이 기다리는 것은 빵이 아니라 한순간 스쳐가는 그리운 사람의 정이 아닐까.


경 성·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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