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바보가 지독한 욕설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어리석음이란 낱말이 새롭게 조명되고 바보가 존경받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자화상에 '바보야'라는 제목을 달았던 추기경이나 바보 정치인으로 자신을 한껏 낮추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감동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온갖 욕설이 끊임없이 만들어져 흙탕물을 튕겨도 이 시대에 바보는 더 이상 욕이 아니다. 어느새 순수하고 꿋꿋하고 고결하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는 바보. 이를 '바보의 역설'이라고 해야할지….
어느 핸가 강풀의 인터넷 만화(웹툰) '바보'가 온라인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보의 또 다른 역설이다. 모두가 자신만을 챙기는 경쟁지향적인 사회에서 친구 대신 죽어간 승룡이의 희생은 바보의 의미를 더 한층 진화시켰다.
승룡이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바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더 이상 놀림의 대상이 아닌 그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그런 바보였다.
만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수백만 관객을 울렸다. 흥행 성공작은 아니었으나 이 휴먼 드라마가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유명인사들이 모여 바보 세미나를 갖는 등 소위 잘난 사람들이 바보 따라하기에 관심을 보인 것도 승룡이 덕분일 것이다.
미국서도 '바보처럼 살아보기의 날'이 있다. '매드 해터의 날'(Mad Hatter Day)이 바로 그 날이다. '매드 해터'는 루이스 캐롤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인물. 책에는 예측 불가능한 '미치광이 모자장수'로 그려져 있다. 바보같이 산다고 해서 아예 미친 사람 취급을 한 것이다.
최근엔 할리우드의 '매너남' 조니 뎁이 내년 초 개봉될 동명의 영화에서 해터 역을 맡아 화제를 뿌리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매드 해터의 날'이 생겨난 것도 동화 속 얘기처럼 뜬금없다.
어느날 벤처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신기술 개발과 관련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저마다 똑똑이 곧 '너드'(nerd)들이어서 쉽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 때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우리가 왜 이처럼 살아야 하느냐." 갑작스런 이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 일년에 하루 쯤은 '매드 해터'처럼 어리석어 보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매드 해터'가 쓰고 있는 모자에 '10/6'이란 숫자가 쓰여져 있어 10월 6일을 그 날로 정했다. 이날 하루 그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실컷 어리석어 보기로 작정한 것.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종이 모자를 쓰고는 가난한 동네를 찾아가 어린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며 봉사의 손길을 폈다.
'그 시간에 첨단기술을 개발하면 수백만 달러를 벌텐데….' 업계에서 바보같은 짓거리를 한다는 비웃음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때가 1986년이니 '매드 해터의 날'은 올해 벌써 23주년을 맞는 셈이다.
바보처럼 살면 손해본다는 생각에 다들 자기 이익 챙기기에 바쁜 요즘 세상이다.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지독한 불경기로 인해 모두가 돈.돈.돈에 미쳐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미치지 않고 살아가려면 바보의 삶이 그 해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자도 논어에서 '어리석음이야말로 앎의 최고형태'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은 바보가 되어보자는 날 그래서인지 바보의 역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들린다. 바쁜 일상이지만 한번쯤은 어리석어 보자. 갈수록 강퍅해지고 있는 삶이 넉넉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