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자 릴레이 인터뷰-9]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
바퀴벌레는 작아도 수억 년 생존…외형 경쟁은 안한다
충주 공장 1300억원 투자 재도약 꿈꿔
112년 장수기업…보수성 깨려고 노력
윤 회장은 인터뷰에 앞서 교수 출신답게 회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강의부터 했다. 그는 "1897년 동화약품이 수렛골(순화동의 옛 이름)에서 창립해 112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숙종의 정비인 인현왕후 민씨의 생가가 있던 곳이 바로 이 자리"라며 "고종 때 궁중 선전관을 지낸 민씨 집안의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과 양약의 장점을 취해 개발한 최초의 한국산 신약 '활명수'를 생산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동화약품은 두산과 함께 창업 100년을 넘긴 기업이다. 두산은 1896년 종로에서 포목상으로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이 모태다. 설립연도는 두산이 한 해 빠르지만 학자에 따라선 같은 자리에서 한 업종(제약)과 제품(활명수)을 이어온 동화약품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보기도 한다.
윤 회장은 "우리 회사의 행보가 한국 기업사의 이정표가 됐던 적이 많다"며 "최근 10년간 매출이 정체 상태지만 다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25일은 이 회사 창립 112주년 기념일이었다.
-동화약품이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비결은 뭔가.
"민족기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윤리경영으로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 (회사 로고인 빨간색 합죽선을 가리키며) 저 부채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시경'에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하여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말이 출전으로 '민족이 합심하면 잘살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초기 경영진 중엔 독립운동을 한 분이 많다. 창업자 민강 선생의 사망으로 회사가 위기를 겪자 민씨 집안의 부탁으로 할아버지 보당 윤창식 사장이 37년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당시 이미 정도.책임경영과 봉사정신의 경영철학을 내세울 정도로 윤리경영의 전통도 강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때로 타성이나 정체의 원인이 될 수 있지 않나.
"사람도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지고 변화에 둔감해진다. 그런 점에서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나는 밖에 있다 왔으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이전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확실해졌으니 변화와 혁신이 절실하다. 창립기념식에서 현재 동화호가 위기라는 것을 강조했다. 2005년 부회장 취임사 이후 처음으로 전 직원을 모아놓고 말한 것이다."
윤 회장은 동화약품 부회장을 맡기 전까지 교수(경희대 의대)로 재직하면서 회사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윤광렬 명예회장)가 의대를 보낸 데는 어려운 회사 일을 맡기지 않으려는 뜻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밖에서 보니 변화의 활력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동생(윤길준 부회장)과 상의해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전문경영인인 조창수 사장과 함께 각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윤 회장은 회사 주식의 5.13%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이고 윤광렬 명예회장은 3.03% 윤길준 부회장은 1.8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일은.
"직장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처음 와보니 너무 경직돼 있었다. 열심히는 하는데 효율적이지 않고…. 특히 웃음이 없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8시간인데 12시간씩 근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자기 생활이 없으면 행복한 직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퇴근시간 후에 회사에 남으면 쫓아내게 했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젊은 직원들을 모아 학습조직을 꾸리고 다양한 분야의 외부 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열고 있다."
-외형상 후발 업체에 추월당했다.
"10년 전만 해도 최상위권을 유지했으나 2000년 의약분업이 고비가 됐다. 남들이 전문의약품(ETC)으로 치고 나갈 때 일반의약품(OTC)만 고수한 것이 승부를 갈랐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덩치를 중시하는 사람에겐 바퀴벌레와 맘모스의 예를 들고 싶다.
바퀴벌레는 작아도 수억 년을 생존해 살아있는 화석이 됐지만 맘모스는 멸종해 죽은 화석으로만 남았다. 외형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지만 결코 무리는 하지 않는다."
동화약품은 2008 회계연도에 매출 1886억원 순이익 285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제약업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경영 참여 후 보람된 일이 있다면.
"골다공증 치료제 신약 기술 개발이다. 2007년 미국 P&G에 5억1100만 달러의 기술 수출 계약을 했다. 한국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엔 추가로 일본 데이진제약과 9700만 달러의 기술 수출 계약도 성사시켰다.
올 5월 충북 충주에 1300여억원을 들여 cGMP(우수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공장을 준공했다. 부지 면적이 8만여㎡로 단일 생산시설로는 국내 제약업계 최대 규모다. 연말까지 경기도 용인에 중앙연구소(부지 면적 2만2000㎡)도 준공할 예정이다."
-신규 사업 진출이나 구조조정은.
"우리는 본업에 충실하지 벌이는 체질이 아니다. 인원 정리 같은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때도 없었다. 오히려 경력사원을 많이 뽑았다. 인사.마케팅.기획 같은 핵심부서부터 시작했다. 대개 첫 직장으로 들어와 정년까지 가는 보수적인 조직에 메기 역할을 해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경력사원이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제는 직원의 20% 정도가 경력사원이고 회사 창립 이후 처음으로 여성 임원도 두 명 나왔다."
-경영 노하우를 어디서 얻나.
"전성철 이사장이 운영하는 세계경영연구원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강의도 듣는 MMP라는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갈 때는 책이 제일 확실한 스승이다.
고교 시절부터 책 구입광이다. 내 방에 가면 네 면에 책장이 있고 그중 한 면은 이중 책장이다.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데 워낙 많이 사니까 VIP 회원이 됐다.
임원들과 함께 읽으며 공부도 하고 신입사원이 오면 한두 권씩 주기도 한다." 윤 회장은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회장 집무실도 공개했다. 특이한 것은 서서 책을 보는 독서대였다. 그는 "앉아서 책을 읽다 보니 자꾸 졸려서 독서대를 샀다"며 "내 방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
"'야마다 사장 샐러리맨의 천국을 만들다'와 '주켄 사람들'이다. 직원이 행복한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소신을 가진 일본 경영자들에 대한 책이다.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사장은 연극배우 출신인데 출근하면 온종일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고 한다. 배우가 신이 나지 않으면 관객이 감동할 수 없다는 현장 경험에서 이런 철학이 나왔다고 한다. 직원이 신나게 일해야 서비스가 좋아지고 단골고객도 생긴다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WHO?
1952년 서울생. 가송 윤광렬 동화약품 명예회장의 장남. 서울고를 나와 경희대 의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충주의료원 정신과 과장을 거쳐 경희대 의학과 신경정신과학교실 교수 경희대 병원 정신과 과장을 역임했다.
2005년 3월 동화약품 부회장에 취임했으며 같은 해 5월 대표이사가 됐다. 2008년 2월 윤광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자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3세 경영인으로서 조용하고 내실 있게 기업을 이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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