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인물열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유럽에 복음의 씨 뿌린 부부
이상명 교수 / 미주장로회신학대 신약학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하여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과 만나 평생 그의 선교동역자로서 헌신하였다. 주후 49년 로마에서 유대인 동족 간 발생한 유혈 폭동으로 인하여 클라우디우스황제가 칙령을 발포하였다.
그 칙령에 따라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그 추방당한 일군(一群)이 유대인 대열에 섞여 부부가 고린도에 당도하게 되었고 때마침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사도 바울을 만나 게 되었다.
고린도는 사시사철 떠내기 인파로 북적대는 항구도시였고 각종 올림픽 경기와 군사이동으로 인하여 천막의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때가 많았다. 이런 연유로 바울은 자신의 업종인 천막제조를 통해 어느 도시보다도 고린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이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직업인 천막 깁는 일을 하였으며 그 부부는 자신들의 일터의 일부를 사도 바울에게 제공함으로써 그가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왔으니 그들의 작업장이 선교 베이스였던 셈이다.
당시 10% 미만의 사람들만이 인술라(insula: 열악한 다세대 주택)가 아닌 도무스(domus: 일반 가정집)에서 살 수 있었기에 이들 부부는 상당한 재력가였음에 틀림없겠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도무스를 신자들을 위한 가정교회로 제공하였다. 이렇듯 바울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그가 유럽 선교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교회로 보내는 편지에서 이들 부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이 점에서 바울과 이방교회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도 이들 부부에게 복음의 빚진 자가 되었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