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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쉰 살에 쓰는 이력서

Los Angeles

2021.05.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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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가명) 씨는 미국 나이로 올해 쉰이다. 10여년 전 미국에 건너와 모두 4곳의 한인 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지난해 여름 해고된 뒤 김 씨네 네 식구는 저축과 실업수당, 정부지원금, 캐시잡 등으로 버텼다.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런 그가 이력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김 씨는 “이력서는 20대 후반 한국에서 써본 게 마지막”이라며 “요즘 구인난이 심하다던데 기회가 될지 몰라 용기를 내본다”고 말했다.

LA 한인타운의 구인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오는 24~26일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제10회 LA 취업박람회’도 아직 지원자가 많지 않다.

행사를 주최하는 ‘잡코리아 USA’의 브랜든 이 대표는 “행사를 일주일 앞뒀는데 구직 신청자가 100여명에 불과하다”며 “팬데믹 이전에는 1000여명에 달했고 지난해도 500명 이상이었는데 너무 많이 줄었다”고 우려했다.

이번 박람회에 참여한 A사 대표는 “실업수당 받겠다는 속이 뻔히 보이는데 자신을 해고해 달라는 직원이 있어 결국 해고했다”며 “지원자가 이리 없으니 직원 구할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모기지나 렌트비를 내지 않아도 쫓겨나지 않으면서 대신 주식 사고, 코인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도대체 땀과 노력을 믿는 사람들이 설 자리는 어디냐”고 한탄했다.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건 국세청(IRS)도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정도랄까. 재무부 조세 행정 총괄 감사국(TIGTA)에 따르면 3월 5일 기준 IRS는 정원 대비 4434명의 직원이 부족했다. 4월 말 기준 처리하지 못한 적체분이 1710만명에 달한 이유다.

워싱턴 포스트(WP)는 “17일 세금보고 마감을 앞두고 세금환급 지연이 심각하다”며 “이는 IRS의 고장 난 프린터와 복사기 그리고 직원 부족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남가주의 한인 경제단체들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줌 미팅은 이제 좀 접고 얼굴 보고 악수하자고 나섰다. 당장 LA 한인상공회의소는 오는 18일 정기이사회를 1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대면으로 진행하고, LA 세계 한인무역협회(옥타 LA)는 이번 주말 백신 접종을 완료한 80여명의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골프 모임을 갖는다.

또 가주한미식품상협회(KAGRO)는 6월 중 교육 모임과 세미나를 대면으로 개최할 방침이고, 미주 한인 봉제협회는 7월 15일 협회 기금 마련과 친선을 위한 골프대회를 확정했으며, 남가주 한국기업협회(KITA)는 올 여름방학 기간 중 서머 인턴십을 진행한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데 싫다는 사람 일하라고 채근하는 건 아니다. ‘한인타운의 인력난 심각’, ‘경제활력 저하 우려’ 같은 구호도 안 먹힌다는 거 안다. 그저 김영상 씨의 한마디가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IMF 때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가 힘들었지만 이후 IT 붐이 일면서 한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다”며 “팬데믹이 미래에 어떤 기회를 줄지 모르지만, 이력서 한장을 시작으로 베팅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10회 LA 취업박람회의 이력서 지원은 21일까지 웹사이트(https://jobkoreausa.com/jobfair)에서 마쳐야 한다. 원하는 회사에 지원하고 서류가 합격하면 온라인 인터뷰는 24~26일 진행된다.


류정일 경제부 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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