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자 릴레이 인터뷰-13] 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
벨보이가 웃으면 실적이 좋아지더라
보여주기 민망한 집무실 쓰고, 호텔 뒷문 이용 '소박한 회장님'
이렇듯 조용히 호텔사업을 키워온 서정호(56)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을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14층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났다. "왜 회장실이 아닌 곳에서 인터뷰를 하느냐"는 첫 질문에 서 회장은 "워낙 좁고 볼품 없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해서"라며 털털 웃었다.
가장 좋은 자리는 고객에게 돌린다는 호텔업의 원칙 그대로다. 그는 출퇴근할 때 직원들이 고객이 아닌 회장에게 신경 쓰는 것이 불편해 호텔 정문이 아닌 뒷문을 이용한다. 앰배서더는 총 2700여 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직영 호텔 4곳에서만 11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지난 7월 장충동 호텔 이름을 '그랜드 앰배서더'로 바꿨는데 무슨 사연이 있나.
"소피텔은 세계 5대 호텔 그룹 중 하나인 프랑스 아코르(ACCOR)의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앰배서더는 아코르와 87년부터 제휴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 마침 소피텔 브랜드 계약이 만료돼 우리만의 정체성을 살리고 싶어 이름을 바꿨다. 우리는 65년부터 사용한 '앰배서더'라는 토종 브랜드를 지켜왔다.
한국 호텔 업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메리어트면 메리어트 힐튼이면 힐튼이지 로컬 브랜드를 해외 유명 브랜드와 병행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브랜드를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 심장을 나눠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피텔 브랜드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제는 독자 브랜드를 쓸 타이밍이구나 싶었다. 아코르 측도 거절하지 않았다. 같은 취지에서 지난해 1월엔 새 기업 이미지(CI)도 선포했다."
-지난해에만 대구.수원.창원 등 세 곳에 호텔을 열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경영을 맡은 곳이다. 실제 소유주는 다르다. 이제 호텔은 서비스 지식 노하우를 파는 기업으로 진화했다. 특히 우리처럼 독자적으로 호텔 사업을 하는 회사는 대기업에 비해 직접 투자할 여력이 적다. 고유 브랜드를 키워서 그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이 현명하다.
서울 네 곳을 빼고는 모두 이렇게 경영 계약을 했다. 호텔 개발.건축 시설관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의종개발이라는 회사도 있다. 한국에서 호텔 비즈니스의 수직 계열화를 이룬 유일한 회사가 앰배서더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신종 플루까지 겹쳐 요즘 경영 사정이 어렵지 않나.
"질병.테러.이상기온 등이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가 한 울타리가 되면서 겪는 역작용이다. 글로벌 위기가 닥치자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환율 효과를 크게 봤다. 특히 가을 들어 일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서울 강북 쪽 호텔은 아주 실적이 좋다.
이비스 명동만 해도 8월부터는 방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랜드 앰배서더도 마찬가지다. 이비스 명동은 지난해 대비 15% 이상 그랜드 앰배서더는 7~8%쯤 매출이 늘었다. 하지만 일본 특수를 기대하기 힘든 노보텔 강남이나 노보텔 독산은 성적이 안 좋아 전체적으로 3~4% 정도 성장할 것 같다."
-하루 숙박요금 10만원대의 실속형 호텔 '이비스' 브랜드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첫 시작은 2003년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라는 대치동에 세운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이다. 지금은 세 개가 됐다. 중증호흡기증후군(SARS) 신종 플루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줄곧 객실 판매율이 90%가 넘는다. 앰배서더가 이런 차별화한 상품을 선보인 것은 선대 회장 때부터다.
노보텔 강남은 지금도 틈새시장의 대명사로 불린다. 93년 강남에 개관하자마자 현재까지 평균 객실 판매율이 94%에 이른다. 비수기인 겨울을 빼면 봄부터 가을까지 방이 꽉 찬다는 뜻이다. 이런 독보적인 프로젝트가 이비스까지 이어진 것이다. (웃으며) 덕분에 업계 선두주자 소리를 듣는다."
-새 프로젝트의 성공 관건은.
"수요 파악과 타이밍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역시 서비스다. 모든 신규 프로젝트는 처음 계획한 것보다 서비스를 한 단계 높였다. 노보텔은 비즈니스호텔이지만 유럽의 고급 호텔이란 느낌을 받는다. 이비스는 객실 크기와 인테리어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룸서비스도 없다.
그러나 밀도 있는 공간 디자인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나중에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서 회장은 7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친의 뜻에 따라 호텔에서 일을 했다. 룸서비스도 하고 프론트에서 허드렛일도 거들었단다.
유학 시절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1년간 근무한 경험도 있다. "아버지께서 '무조건 최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경험을 쌓아라'고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고급 호텔의 상징은 프랑스 식당이었다.
'앙드레'라는 식당에서 일했다. 하루 9~10시간 서서 일하면서 양파 깎고 양념통 옮기는 일을 했다. 현장 감각을 익히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 물론 양파수프도 제대로 만들 줄 안다(웃음)."
-부친에게 배운 경영 철학이 있다면.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호텔에만 매달린 분이다. 업에 대한 식견이 탁월하셨다. 당신께서 직접 정한 '빠르고 깨끗하고 맛있고 친절하게'라는 사훈은 지금 봐도 명쾌하게 호텔 사업을 설명한다."
-호텔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지표는.
"숫자가 아니라 '직원 얼굴'이다. 벨보이나 프론트 등 현장 직원의 얼굴 표정 태도 말투에 호텔 성적표가 다 나와 있다.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문제가 있는 거다. 직원이 회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사장이나 총지배인에게 '직원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파악해 원하기 전에 해주라'고 지시한다. 원하는 대로 못해줄 상황이라면 투명하게 설명하면 된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인재 말고 신경 쓰는 분야가 있다면.
"정보기술(IT)의 접목이다. 요즘은 객실도 식당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시대다.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 계속 투자할 방침이다. 마케팅IT팀을 별도로 만들었다."
-해외 진출 계획은.
"한국에선 아코르와 제휴하고 있지만 해외는 독자적으로 나갈 수 있다. 뉴욕 같은 곳에 비즈니스호텔을 인수하고 싶다. 다만 지금은 타이밍이 이른 감이 있다. 미국 기업들이 지금은 제로 금리 때문에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1~2년 내 한계를 맞아 싼 매물이 나올 것으로 본다."
-아예 다른 업종에 진출할 생각은.
"나는 호텔 밖에 모른다. 호텔 연관사업 확장을 생각하고 있다. 면세점이나 웨딩 식당 프랜차이즈 등에 관심 있다. 해외 진출도 같은 맥락에서 할 것이다."
WHO?
1953년 서울생. 앰배서더호텔을 창업한 고 서현수(1924~92) 회장의 장남이다. 중앙고와 동국대를 졸업했다. 가업 승계를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 뉴욕 호텔·모텔학교를 다닌 뒤 네바다주립대의 호텔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MBA)을 마쳤다.
유학 시절 양파 깎기, 객실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밑바닥 현장업무부터 익혔단다. 재계의 유명한 와인 매니아. 프랑스 레종 도뇌를 훈장(2002년), 금탑산업훈장(2003년)을 수훈했고 세종대 명예경영학 박사학위(2004년)도 받았다.
차진용.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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