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무슨 대수냐?”
경제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녹녹하지 못한 미국인들의 구매 패턴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에 현혹되기보다는 실리위주로 쇼핑을 실시하겠다는 것으로 ‘자가 상표’ 구입확산운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 흔히 널리 알려져 있는 상품은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다고 해, ‘제조자 상표(National Brand)’로 통용된다. 이에 반해 ‘자가 상표 상품’ 즉 ‘Private Brand’ 상품은 소매유통망의 상표가 붙어 판매되는 제품을 의미한다. 대형유통체인점들을 중심으로 판매되는 상품들이 이에 속하는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에 현혹되기 보다는 실속을 챙기겠다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상표의 제품대신 가격이 싼, 다소 덜 알려진 상품들을 구매하겠다는 알뜰 쇼핑이 미국 쇼핑의 새로운 장르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경기불황이 잉태한 일종의 새로운 소비규칙으로 ‘욕구(Wants)’보다는 ‘필요(Needs)’를 쫒는 쇼핑임이 특징이다.
식품과 일용잡화를 취급하는 대형 유통체인 등이 자사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PB제품의 판매를 확대되면서 미국에선 PB제품의 비중과 매출이 뚜렷한 증가세를 기록중이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2009년 8월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PB제품 매출은 전년에 비해 7.4% 증가했다. 매출 규모는 859억 달러, 판매 제품의 개수 면에서는 5% 증가했다.
시장조사 및 솔루션 기관인 IRI(Information Resources Inc.)의 Times &Trends Report 역시, “2008년 7월부터 2009년 7월 19일까지 52주 동안 미국에서의 PB제품 판매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22.8%를 기록했으며, 달러지출 기준으로는 0.7% 상승한 17.6%를 기록 중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미국의 전체 소비재 지출의 17% 가량이 PB제품이라는 얘기다.
소매 유통점의 PB제품 점유율은 더 높다. 소비재의 20% 이상이 PB제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월 마트나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유통체인에서의 PB제품 차지 비중은 더 더욱 높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슈퍼마켓뉴스에 따르면 2009년 1분기 중 미국 유통업체 중 가장 많은 PB 제품을 판 곳은 미국의 거대 식료품유통업체인 ‘크로거(Kroger)’다. 이 회사의 PB제품 차지 비중은 전체 판매규모의 35%에 달한다.
크로거가 40여개의 전국 자사공장에서 자체 생산하는 PB제품은 1만4400여 가지다. 이는 2008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주로 음료수, 치즈, 스파게티 소스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크로거는 자체 매장에서 코카 콜라 한 병에 1.79달러를 받고 있지만 코카 콜라와 유사한 크로거의 PB제품 ‘Big K 콜라’를 69센트에 판매 중이다. 1갤런짜리 크로거 브랜드 아이스크림 역시 대중적인 아이스크림에 비해 25%나 싼 2.99달러에 불과하다.
카우프만 크로거사 제조담당 이사는 “미국 내 많은 식료품 유통업체들이 PB제품을 자사의 이미지와 연계시키는 전략을 통해 PB제품의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PB제품이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우수한 제품으로 일반 브랜드제품을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한편 크로거와 유사한 식품유통업체 세이프웨이(Safeway) 역시 32개의 자사 공장에서 PB제품을 조달중이며 미시간과 오하이오에서 99개의 식료품 가게를 운영 중인 ‘Spartan Stores’사 역시, 매출의 25%를 PB제품으로 충당 중이다.
월마트 역시 1993년 도입한 PB ‘그레이트 밸류’의 식품 상품군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월마트가 새로 선보이는 상품은 냉동피자·유기농계란 등 80여 가지며 초콜릿 칩, 세제 등 기존 PB 제품의 경우는 내용물이나 포장을 업그레이드해 내놓을 계획이다.
월마트의 이 같은 움직임 역시 불황을 타고 급팽창하는 PB시장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PB의 발빠른 확산은 미국에서 식품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대형 백화점체인 J.C. Penney사 역시 지난 9월 젊은 전문직 여성을 겨냥한 모던 스포츠웨어 브랜드 ‘She Said’를 선보였다.
물론 자체 상산이다. 상의는 26~44달러, 바지나 스커트는 44~50달러, 드레스 44~58달러, 재킷 68~85달러선으로 유명 의류 브랜드의 값에 비할 때 정말 싼 값이다.
J.C. Penney가 ‘She Said’ 브랜드를 런칭한 것은 자체브랜드를 통해 중간 유통상의 마진을 배제하고 외부 디자이너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 수익구조의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인 Mintel International의 애널리스트 크리스타 역시 이같은 경우, “자체 공장을 통한 PB제품 제조는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아 가격 할인 폭이 크고 제조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을 앞당길 수 있어 업체에 유리하다” 고 언급, 앞으로 의류시장에서의 PB상품물결은 시간문제임을 예고하고 있다. 크리스타는 또한 “유통업체든 제조업체가 자사의 이미지를 PB제품에 연계시킴으로써 소비자는 믿고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음이 가능, 이를 홍보하는 방식을 통해 매출신장이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중이다.
미국의 소비자, 특히 주부들이 제조자 상표를 도외시한 채 PB구매에 열을 올리는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이 타격은 누구가 입는 것일 까? 궁금 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소비재 제조업체들이다. 화장지와 세제 중심의 거대 제조 업체인 P&G의 경우, 최근 수익 급감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매출은 2사분기 말 현재, 지난해 동기대비, 18% 감소된 25억 달러 수준이다. 바운티(bounty) 페이퍼 타월, 타이드(Tide) 세제 등 대표 브랜드의 판매는 11%나 감소했다. 반전까지는 앞으로 수년이 걸려도 가능할 지 아무도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P&G 뿐만이 아니라 소비재시장 세계 3위 유니레버, 크리넥스 티슈 제조회사인 킴벌리 클락, 냉동식품 제조기업 사라 리, 치약 및 비누 제조기업 콜게이트-팔몰리브 등이 모두 지난 분기 중 수익 감소현상에 직면했다.
한때 한국에서는 ‘강남 부동산 시장 불패’, 미국에서는 ‘소비재시장에 불어 닥치지 않는 불경기 바람’이라는 말이 유행어였지만 작금의 미국 소비재시장은 PB바람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경기불황에서 비롯된 PB제품 열풍이 영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마케팅 조사기관 번 스테인은 “경기불황 중 PB 상품을 사용한 소비자 중 절반이 다시 브랜드 상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 브랜드 상품 업체들을 또 한 차례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끝나고 난 뒤에도 PB상품의 열기가 지속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또 PB상품은 주로 불황에서 판매가 증가,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판매가 감소된다는 속설을 달고 다녔지만, 이번에도 불경기가 끝날 지언 정, PB고객이 다시 브랜드 상품 고객으로 환원될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이에 대한 전망은 ‘PB상품시장 확대는 가격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품질 향상이 수반된 상태에서 일어난 만큼, 미 소비자들의 PB상품 사랑은 당분간 지속한다’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유통업계에선 PNB상품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체 브랜드를 살리면서 자체상표(PB) 방식의 장점도 유지하는 단독독점모델(PNB : Private National Brand) 상품이 크게 늘 전망인 것이다.
PNB상품은 ‘유통업체가 상표를 스스로 만들어 싸게 파는 상품’으로 대형 유통업체가 대량 구매를 앞세워 메이커에 용량과 사양을 별도로 주문해 납품받는 형태를 의미한다.
제조업체로선 자신이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관계로 자신의 브랜드 생산은 포기해야 하지만 대량 납품이라는 매력 때문에 PNB상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유아복 전문업체, 란제리 전문 회사, 골프용품 업체 등이 이에 해당될 전망이다.
PB업체도 지금과 같은 황금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 중이다. 백화점ㆍ할인점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자체 상표를 붙인 상품이 잇따라 나오는 등 ‘상품군’ 경쟁이 더욱 드세질 전망 이어서다.
따라서 값싼 제품으로 분류되어 왔던 유통업체의 경우, 자체 브랜드제품의 품질 향상은 물론, 기존의 가격 의존형에서 품질 우선으로 시급한 전환을 도모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PB 제품은 NB 제품에 비해 값이 싼 만큼, 또 품질도 떨어진다는 인식이 실제로 많았던 만큼, 이를 불식시키는 것도 관건이다.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고 NB 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소비자가 만족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할 때 PB 업체들의 성공행진은 계속될 수 잇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B 제품의 전략으로 단지 가격이 아니라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다양화’ ‘전문화’ ‘세분화’로의 자리매김도 변수다. 대형 유통업체 제품이라고 해서 가격으로 승부할 시기는 지난 것으로, 경쟁력 유지차원의 아이디어 상품 출현이 새로운 대안일 것이다.
이와 함께 의약품시장에는 ‘제네릭 약 (generic medicine)’ 바람이 불고 있다.
제네릭 약품은 사전식 표현으로는 ‘상표등록에 의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품’을 의미한다. 즉 제네릭은 특허권의 존속기간이 만료되어 특정회사가 독점권을 가지지 아니하는 경우에, 다른 제약회사가 특허권을 보유하였던 제약사가 발매하였던 오리지날 약품과 약효 동등성을 가지는 복제 약품에 대한 제조 승인을 받아 제조?판매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부대비용의 절약 등으로 약 값의 원가를 절감, 싼 값에 약을 내놓을 수 있다. 위장약, 혈압약, 콜레스테롤 저하약 등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형태의 의약품으로 의약품 업계의 PB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최근 미국 유통업계의 신조어 ‘GNP’가 의미심장한 뜻을 전달하고 있다.
Generic과 Private제품이 National 제품을 능가했다가 바로 신조어의 실체다.
실리가 명분을 능가하는 한 단면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