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제발 살아 있어라.” 7년 전 4월은 통한의 울부짖음이 남해를 뒤덮고 하늘까지 치솟았다. 승객 476명(고등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가는 도중 진도 앞바다에서 조난당했다. 배는 얼마를 못 버티고 침몰했다. 구조된 자는 174명뿐이었다. 뜻밖의 비보를 접한 가족들은 진도 앞바다로 달려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통곡했다. “애들아, 제발 살아 있어 다오. 무사히 돌아와 줘.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대답 없는 검푸른 바다가 통곡의 벽이 되었다.
지난 3월 이스라엘을 갔을 때 구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통곡의 벽’을 방문했다. 통곡의 벽(Wailing Wall)은 옛 유대성전 터에 남아 있는 성전 초석 암벽의 일부분이다. 다윗은 통일왕국을 세운 후 하나님을 위해 전을 세우길 원했으나, 하나님은 피를 흘린 다윗 대신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하길 허락했다. 처음 성전은 기원전 10 세기경에 솔로몬에 의해 완성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삶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거하는 거룩한 곳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철 따라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은 BC 583년에 바빌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면서 성전도 철저히 파괴되었다. 예수 시대에 헤롯 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자리에 오랜 세월에 걸쳐 성전을 재건했다. 그 성전도 로마군 장군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불탔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유대인은 100만명 이상이 도륙을 당하고 세계 각처로 추방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기반은 로마군들이 그렇게 크고 엄청난 건물들을 완전히 부수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남겨두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비잔틴 시대(324~640)에 왕들이 유대인이 일 년에 한 번 씩 이곳에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통곡의 벽은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의 수난과 예루살렘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라와 가족을 잃고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후손들이 찾아와 억울한 역사를 되씹으며 통탄의 눈물을 흘린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고 그 회복을 위해 결심을 다짐하는 민족의 심장 같은 곳이다. 전통이 숨 쉬는 장소이다. 토라를 외우며 하나님이 준 율법으로 재무장한다. 하나님을 거역했던 조상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는다. 지금은 종교의식과 국가의식을 그곳에서 행한다.
통곡의 벽은 신성한 곳으로 여기기 때문에 경계가 삼엄하다. 세계 각처에서 찾아오는 유대인들은 소원을 종이에 적어 성전 벽 틈 사이에 끼워 넣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니 간구가 제일 잘 들리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곳에 들어갈 때 남자는 꼭 모자를 써야 한다. 아니면 대여해주는 ‘키파’라도 써야 한다. 나는 하얀 키파를 썼다. 소망하는 것 여러 가지를 적어 성전 벽 틈에 끼워 넣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 건강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내 조국 한국과 미국의 영광스러운 번영을 위해 기도했다. 자유와 평화가 사온에서부터 땅끝까지 퍼져나가길 간구했다. 자녀들을 잃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해줄 자 누구인가. 전능하신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이 임재해 주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