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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씨앗,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1 (막4:3-34)

New York

2021.05.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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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역설이다. 그 속에 나무와 열매로 드러날 것들을 이미 품고 있지만, 그 품고 있는 것이 반드시 드러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얼마나, 어떻게 드러날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씨앗에게는 ‘드러남’과 ‘숨겨짐’이 공존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드러난 하나님(Deus revelatus)과 감추어진 하나님(Deus absconditus)라는 용어로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했다. 루터는 이 개념을 다양하게 사용했는데, “십자가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지만, 그 고통에 찬 하나님은 인간이 바라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드러나신 하나님은 오히려 인간에게 감추어진 하나님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용어의 다양한 의미 가운데 하나다.

성경에서 선포된 ‘말씀’도, 하나님의 나라도, 씨앗처럼 드러남과 숨겨짐을 함께 품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역설을 마가복음 4장에서 가르친다. 한편으로 예수께서는 “숨겨진 것이란 바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고 선포하면서 말씀이란 등불처럼 반드시 드러나고 알려져야 한다고 하셨다(막4:21-22).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예수께서는 직설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비유로 가르쳤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만 그것을 해석했다(막4:34). 비유 속에 말씀의 의미들이 숨겨져 있어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 밖의 사람들이 말씀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도록 비유로 가르쳤다. 즉 ‘숨겨짐’이란 인간의 지적, 영적 한계만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분하려는 하나님의 뜻도 담겨있다(막4:11-12).

흥미롭게도 예수께서는 “말씀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고 혹은 숨겨졌는가?”를 마가복음 4장에서 세 가지 ‘씨앗’ 비유로 가르쳤다. 첫 번째 씨앗 비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씨앗이 떨어진 밭’의 비유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새가 날아와 먹어버리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은 나지만 뿌리가 말라서 죽어버리며,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조금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열매는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거둔다(막4:3-8). 씨앗이 여러 이유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사탄, 박해, 유혹 등으로 인해서 말씀도 그 결실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결실을 보지 못하는 ‘숨겨짐’과 결실을 보는 ‘드러남’이라는 심각한 차이를 누가 초래하는가? 만약 밭의 상황, 즉 인간이라면 말씀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의지적으로 숨어 계시는가, 혹은 인간에게 거부당하고 계시는가?

두 번째 씨앗 비유 속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숨겨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인데 씨를 뿌린 자는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한다(막4:26-29).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이해할 뿐이다(막4:28). 첫 번째 비유에서 밭의 상황이 숨겨짐과 연관 있다면, 두 번째 비유에서는 인간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가 숨겨짐의 근원이다.

세 번째 비유는 ‘드러남 속의 숨겨짐’에 관한 이야기다. 겨자씨처럼 작은 씨앗이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는데 새들이 그 그늘에 둥지를 튼다(막4:30-32).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서 엄청나게 자랄 것인데, 그 결과 새들이 찾아와 그늘에 집을 짓는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보면, 인간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새가 둥지를 틀 것이라고 가르쳤다. 압도적 드러남과 예상을 빗나가는 숨겨짐이 공존한다.

다음 칼럼에서 씨앗 비유의 의미에 대해서 다루겠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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