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연기 속에 무너지는 낙빙 장관
하기환 회장의 '태고의 신비' 파타고니아 여행기<2>
전망대서 30분 더 올라가니 절경
예약 안하면 4000불에 텐트 숙박
한폭의 그림 같은 토레스 삼봉도

브리타니코 전망대 절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하기환(왼쪽) 회장과 이영근 회장. 굉음과 함께 흰 연기를 내며 떨어지는 낙빙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 이영근 회장

그레이 호수 보트 크루즈에서 바라본 그레이 빙하.

곳곳에 절경이 펼쳐진다. 트래킹 출발 전 아침 산책에 나선 하 회장.

우뚝 솟아있는 3개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인 토레스 삼봉을 찾은 이(왼쪽) 회장과 하 회장.

20세기 초 호수를 발견한 스웨덴의 지질학자이자 극지방 탐험가 오토 노르덴스콜드의 이름을 따 명명된 토레스 델 파인 국립공원의 노르덴스콜드 호수 전경.
첫날 숙소인 에코 캠프(Eco Camp)에서 버스로 페호에 호수(Pehoe Lake)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배를 타고 40분에 걸쳐 호수의 일품 비경을 감상한 후 하선해 프렌치 계곡(Valle Del Frances) 트레킹에 나섰다.
트래킹 첫날이라 힘이 들었음에도 나름 열심히 산을 올라갔다. 브리타니코(Britanico) 전망대까지 올라갔는데 가이드가 “이제 다 왔다. 그만 하산하자”고 했다. 그런데 가이드 없이 온 젊은 친구들이 계속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가이드에게 “더 올라가 볼 테니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하고 이영근 회장과 나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결국 가이드도 마지못해 우리 뒤를 따라왔다.
30분 가량 더 올라가 마주한 경치는 정말 최고였다. 가이드 말만 믿고 중간에서 돌아갔으면 천추의 한이 될 뻔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절경과 산 곳곳에 붙어있던 글레시어가 굉음을 내며 떨어지며 흰 연기를 내 뿜는 장관을 보면서 가이드가 정말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숙소로 파이네그란데 랏지를 찾아갔더니 우리가 방 예약을 안했기 때문에 밖에 설치된 텐트에서 자야된다고 했다. 무려 4000달러를 내고 4일을 숙박하는건데 불씨도 없는 텐트에서 자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파타고니아’라는 곳은 바람과 구름, 비 등 악천후로 유명한 지역인데 요세미티 국립공원 가는 정도로 쉽게 생각하고 준비한 나에게 옥외 텐트에서 숙박하라니 죽으라는 소리같이 들렸다. 프론트 데스크 앞에 있는 소파에서 밤을 보내도 상관않겠다고 우기면서 가이드, 예약을 대행해 준 여행사와 한바탕 신경전을 펼쳤다.
결국 타협 끝에 2명의 예약자가 오후 9시까지 안 오면 그 방을 우리한테 주겠다 했고 운 좋게도 우리가 그 방을 배정받게 됐다. 랏지는 한방에 6명, 8명씩 자는 기숙사 스타일로 시설도 엉망이었다. 자연보호도 좋지만 세계 최고 경치의 명산을 갖고도 제대로 된 시설이 없다니, 여기에 비하면 아르헨티나 사이드 파타고니아는 정말 편한 것 같다.
이튿날 파이네그란데 롯지에서 그레이 호수를 끼고 북쪽으로 3시간 트래킹을 해서 그레이 산장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그레이 빙하 관람을 한 후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토로 사르미엔토(Toro Sarmiento), 노르덴스콜드(Nordenskjold) 등 무수한 호수 비경을 감상하며 숙소인 에코 캠프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토레스 델 파이에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3개의 봉우리를 향해서 트래킹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지라 쉽게 시작했지만 가다보니 산능선을 따라 우거진 숲을 지나야했고 작은 강과 계곡, 가파른 빙하 퇴적지대를 지나게 됐다.
장시간 트래킹으로 결국 무릎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해 똑바로 못 올라가고 발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올라가야만 무릎 통증이 덜 했다. 마지막 빙하 퇴적지대는 등산로도 없고 경사가 심했다. 한참을 걷다가 위를 쳐다보면 아직도 산 정상 끝이 안보였다. 정말 죽을 힘까지 다 해서 토레스 삼봉에 도착했다.
한폭의 그림같이 우뚝 솟아있는 3개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 아래에 있는 빙하 호숫가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다. 물통 대신 물병 하나만 가져가서 중간에 빙하가 녹은 냇가물을 물병에 채워 마시곤 했다. 등산에 필요한 스틱도 지난 2월 스키타러 솔트레이크시티에 가서 현지 REI매장서 사 온 것이다. 등산 스틱의 중요성을 모른채 그냥 집에 굴러다니고 있어 가져온 것인데 이 스틱이 없었으면 하산길은 엄두도 못 냈을 것 같다.
정리된 등산로가 아닌 부서진 돌덩이들을 밟고 내려오니 스틱으로 안전한 돌맹이를 찾아서 찍고 점프하면서 내려와야지 스틱이 없으면 주저 앉아서 손으로 돌맹이를 잡고 내려와야 된다.
점점 무릎이 더 아파오고 간신히 가파르고 어려운 돌 무더기를 지나서 칠레나(Chilena) 산장에 도착했다. 무릎 때문에 앞으로 갈 길이 까마득했다. 산장에 필요한 LPG 개스통과 음식물을 아래 동네에서 실어 나르는 말 두마리가 보였다. 말을 탈수 있는지 물어보니 한 사람당 100달러씩 200달러를 내면 말을 타고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주저없이 200달러를 주고 말을 타고 내려왔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요긴하게 쓴 200달러였던 것 같다.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람 타는 말이 아닌 짐 나르는 말이 그것도 2마리가 우리가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 그 산장에 있었으니 한 마디로 ‘하나님 감사해요’였다.그 다음날 에코 캠프 호텔을 떠나 아르헨티나쪽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계속>
정리=박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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