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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경영자 릴레이 인터뷰-15]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

Los Angeles

2009.11.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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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사업 강화 위해 곪은 곳 찾아내 쿨하게 도려낼 것"
대한ST·한국렌탈 등 매각…재무구조 개선 순항 중
"우리는 '위기'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회사가 바라는 방향대로 잘 가고 있다. 그러나 어떨 땐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날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양귀애(62) 대한전선 명예회장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재무구조 개선 얘기가 나오자 "차질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아주 감성적이면서도 아주 이성적인 요즘 말로 쿨(cool)한 사람"이라며 "곪은 곳을 도려내 더 좋은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오전 5시쯤 기상해 자정 무렵 잠자리에 들 때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회사 주요 현안과 두 재단(인송문화재단.설원량문화재단) 업무를 챙기면서 감성경영을 실천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는 회장님'으로 유명하다.

"세계경영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등의 최고경영자(CEO) 특강을 많이 듣고 있다. 지금까지 리더십.사진.음악.영화 등 20여 개 강좌를 들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수업받으러 간다."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학교 다닐 때부터 재미없는 모범생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자동차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하는 게 기업 경영에 엄청 도움이 된다. 특히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업종인 전선업을 하면서 '감성'을 입힐 수 있어 만족스럽다."

양 명예회장은 한 달에 한 번씩 임원진을 자신의 서울 서초동 집으로 초청해 영화를 함께 보면서 서로의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는 '시네 데이트'를 즐긴다. 주말이면 전북 무주에 있는 계열사인 무주리조트에 가 '새터데이 안단테(Saturday's Andante)'라는 음악회를 연다. 사내 합창단 '대한하모니'도 만들었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통해 기업을 보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영어 어휘를 풍성하게 늘리고 베토벤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고 하지 않나. 비슷한 이치다. 사람의 감성을 터치하면 기대 이상의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것은 아름다운 모성에 비유될 수 있다. 나는 음악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데 이런 힘을 임직원과 공감하고 싶다. 좋은 동기 부여 수단이 될 것이다."

양 명예회장은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국제그룹 창업자인 고 양태진 회장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처음 피아노를 접했다고 한다. 꾸준히 피아노를 쳐 대학에서도 음악을 전공했다. 고 설 회장과 결혼하면서 음악가로서 삶은 포기했지만 그를 절망에서 다시 일으켜 준 것은 피아노였다. "2004년 3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불면의 밤을 지냈다. 남편 사진을 보면 너무 힘들어 (타계 후) 1~2년간은 집 안과 사무실에서 사진을 모두 감춰 놓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도와준 게 피아노다. 하루 10분 20분씩 피아노를 치면서 상처를 치유받았다. 피아노는 나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비타민이 큰 도움이 되듯 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기업 경영 쪽으로 옮겼다. 대한전선은 2002년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쌍방울(현 트라이브랜즈).명지건설(현 TEC건설).남광토건.한국렌탈 등 10여 개 회사를 거푸 사들이면서 인수합병(M&A)의 기린아로 불렸다. 해외에서 콩고 전선회사 CKT 캐나다 밴쿠버 힐튼호텔 등을 인수하기도 했다. 2007년엔 이탈리아의 세계 최대 전선회사인 프리즈미안의 지분 9.9%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요즘은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영이 힘들지 않나.

"대한전선이 프리즈미안 지분을 인수한 이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유럽 증시가 침체에 빠졌다. 큰 평가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보다 우려가 부풀려졌다.

현재는 유동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착실하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유상증자를 하고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으며 자산 매각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회사와 관련된 안 좋은 루머가 있는데 이 기회에 불식됐으면 한다. 전문경영인들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가면 된다'며 격려한다."

-회사가 안정된 것인가.

"물론이다. 대한ST를 필두로 한국렌탈.트라이브랜즈 등의 매각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주채권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협정을 체결한 대로 하고 있다. 정리할 것은 과감하게 하겠다. 그래야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대한전선 그룹은 어떻게 바뀔까.

"세계 10위권인 전선사업이 기본 축이다. 대한전선 매출(2조4000억원)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5%가 넘는다. 전선사업은 뉴욕과 샌디에이고의 초고압 전력선 사업을 수주하는 등 선진국 시장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있다. 여기에 역량을 더할 수 있는 건설 부문을 강화할 것이다. 아울러 레저사업도 적극 챙길 것이다."

-최근의 위기에서 얻은 교훈은.

"우리는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곪은 살에서 새 살을 돋게 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다. 계획대로 충실히 잘되고 있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고 했는데 실제로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더라(웃음). 꿋꿋하게 우리가 설정한 방향대로 가고 있다. 시장의 우려는 기우다."

대한전선은 1960~70년대 한국 굴지의 가전회사였다. 지금도 이 회사의 '원투제로(1.2.0) 냉장고' '무지개 세탁기' 같은 브랜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업체 간 출혈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석유 파동이 닥치자 고 설원량 회장은 가전사업 부문을 83년 대우에 넘긴다. 지금과 83년 상황을 비교하면 어떨까.

"당시 전선보다 가전 매출이 많았다. 가전 부문 매각으로 임직원 9000명 중 6000명이 대우로 가야 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비주력 부문을 정리하고 주력은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 있다. CEO의 결단이다. 회사가 어려웠을 때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캔버스에 유화를 그렸다. 음악을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언젠가는 음표 하나하나를 그리면서 작곡을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이런 자기 절제 능력 덕분에 대한전선은 '본체(전선사업)'를 망가뜨리고 허우적거리는 미련을 범하지 않았다. 현업에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시기 '환부 제거를 위해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 시너지 낼 방향 등을 쿨하게 정한다."

-앞에선 감성경영을 강조했는데 결단은 냉정한 것 같다. 기업가의 유전인자(DNA)를 이어받아서 그런가.

"(웃으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떨 땐 병력이 그렇듯 기업인의 DNA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기업가의 피도 있고 식탁에서 배운 것도 있다. 요샌 아들을 보면서 이런 걸 느낀다."

-경영 조언을 구하는 대상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CEO와도 얘기하고 삼촌(설원봉 대한제당 회장)과도 상의한다. 어떨 땐 아들과 외부 분들과도 의견을 나눈다. 나는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거리낌이 없다. 주변에서도 '굉장히 솔직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라. 자기가 내보이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진정성을 얻을 수 있겠나. 모두 '내 편'을 만들려면 내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

WHO?

1947년 부산생. 경남여고와 서울대 음악학과를 졸업했다. 국제그룹 양태진(1901~76) 창업주의 막내딸로 양정모(1921~2009) 전 국제그룹 회장과 양규모(69) KPX 회장이 친오빠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69년 설원량(1942~2004) 대한전선 회장과 결혼했다. 남편이 뇌출혈로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오너로서 회사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그룹의 설원량문화재단과 인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추석 무렵 무주리조트에서 보름 상간에 두 번이나 홀인원을 했는데 핸디는 90 정도라고. 대한전선 전무로 재직 중인 설윤석(28)씨와 군 복무 중인 설윤성(25)씨 형제를 두고 있다.

차진용.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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