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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요리는 생명이다

New York

2021.06.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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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방랑식객 임지호가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젤 먼저 전해준 이는 필라에 사는 S였다. 오래전, 한국학교 관계로 한국에 갔을 때, 내가 임지호가 하는 식당 ‘산당’에 한국학교 관계자들을 안내했었다. 그것을 기억한 S가 내가 그 소식을 들었는지 궁금해서 연락해온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 그냥 멍-했다. 다만 “신은 참 이상하다. 왜 필요한 인재들은 일찍 데려가시지?”하는 의문이었다. 나중에 친구들은 농담 반진담 반으로 “뛰어난 수재들은 한 가지에 집중해서 있는 힘을 다해 뭔가를 창조하는 것이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어. 그러니까 멀쩡하다가 한순간에 넘어지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었다.

임지호를 처음 만난 것은 화랑을 경영하는 심은경 씨를 통해서였다. 진짜 맛집이라며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양평에 있던 식당 ‘산당’이었다. 음식은 코스요리였다. 임지호 사단인 은경 씨가 소개해줘서인지 임지호는 짬짬이 나와서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치 실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 튀긴 감자로 장식했던 튀김(음식은 기억 안 난다)과 민물 참게 두 마리가 접시 위에 앉아 만월의 보름달 맞이하던 게장이다. 민물 참게의 달맞이 접시는 그 자체가 한 편의 시였다.

오래전, 그림전시회를 하러 그가 뉴욕에 왔을 때, 우리 대학동문들과 함께 산행을 함께 한 일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산을 오르면서 한 무더기의 갈색 버섯을 발견한 그는 맛있는 버섯이라며 통째로 채취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같은 버섯이 있어서 일행 중 한 사람이 따려고 하자 그는 그것은 독버섯이라며 따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가 두 가지를 비교해서 설명해주니 비로소 근소한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었다. 나중에 라면 끓일 때 그 버섯을 넣었더니 고기보다 더 맛있고, 진하지 않은 버섯 향이 참으로 구미를 당겼다. 다음 산행 때, 간혹 그 버섯을 보았지만, 그게 식용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해 다시는 그 별미를 맛보지 못했다.

알려진 대로 자연 요리의 달인답게 그는 산과 들의 먹거리들에 해박하다. 유난히 바위가 많은 그 산에서 석이버섯을 발견하고 그게 바로 석이버섯이라고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산에 다니면서 그 버섯을 숱하게 보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랐던 우리는 그냥 지나쳐 다닌 게 다반사다. 동행했던 식당 주인 바버라 씨는 신이 나서 석이버섯을 따느라 정신없었다. 우리까지 합세해서 바버라 씨는 엄청난 석이버섯을 가져갈 수 있었다.

허드슨 강가를 거닐면서도 그는 보는 풀마다, 꽃마다, 나무마다 이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요리하면 좋다고 가르쳐주었다. 나는 꼼꼼히 기억하려고 했지만,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아서 여전히 헷갈린다.

그는 자연 요리전문가라기보다는 내 눈엔 수행자의 모습으로 더 많이 비쳤다. 인생을 달관했다고 할까. 그의 사람 좋은 웃음은 보는 이를 편하게 해주고, 그의 화살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만든 자연 음식을 먹으면 속도 편하다. 요리는 생명이라면서 남들에겐 그렇게 편하게 해주더니, 자신은 무엇이 걸려 그처럼 잠자리에서 세상을 훌쩍 떠나야 했는지 모르겠다.

임지호, 하늘나라에서는 평안하시게. 언제고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내가 자네에게 밥을 해줌세. 자네도 편히 남이 해주는 밥상을 받아보게나.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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