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세종시가 왜 이리 문제가 되는지 모르는 한인들도 있을 것이다.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당시 충청권 공략 차원에서 제안했던 것 같다. 충남 공주와 연기군 사이에 인구 50만의 새로운 행정도시를 만들어 정부 부처 일부를 그 곳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당선 후 조용히 있었으면 문제가 이처럼 확대되지는 않았을 텐데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수도 이전 공약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보았다”고 말함으로써 세종시 계획이 결국 선거용 정책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수도 이전 계획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2004년 1월 헌법재판소 항소심까지 가게 됐다. 헌법 재판소는 수도를 이전하려면 헌법 절차에 따라서 한다면서, 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 판결을 존중해 수도 이전을 깨끗이 포기했더라면 문제는 간단히 마무리 됐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고집을 부려 수도 이전이 아니라 절반의 행정기관을 옮긴다는 명목으로 계획은 계속 추진됐다. 신도시는 처음에 세종시라고 부르다 근래에는 행복도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신도시 건설법안은 결국 2005년 3월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수도권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결단으로 여야 합의 하에 통과되었다.
현 이명박 정부는 정부를 서울과 세종시로 분산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며 세종시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동안 공사의 약 24%가 진행됐고 전체 사업비 22조 5천억 중 5조3688억이 이미 투입되었다.
세종시에 대한 반대여론이 강해지자 건설업자들이 미분양 사태를 걱정해 주택공사가 주춤해지기 시작했다. 행정도시 건설담당 관계자도 “세종시는 분당 인구 39만 명과 일산 27만 명보다도 많은 50만 명의 대 거주도시로 계획되었지만 현재로서는 10분의 1인 5만 명도 채우기 힘들다”고 말한다.
세종시 문제는 결국 정치싸움으로 확대돼 여당인 한나라당의 내분을 야기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과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엄중한지 모르냐” 면서 정운찬 총리를 비난했다.
충청도민들은 정치인들이 충청인들을 상대로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는 것은 충청인들을 농락하는 것이라며 “행복도시 사수 궐기대회”와 삭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노동단체까지 가세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 대해선 충남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이회창 선진당 총재는 “이 대통령은 처음 약속한대로 세종시 원안을 그대로 추진할 것을 국민 앞에 선언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반면 ‘수도 분할 반대 국민회의’가 7명의 전직 총리를 주축으로 구성됐다. 행복도시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복잡한 세종시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만들어 낸 문제다. 이명박 정권이 세종시 계획을 원안 그대로 추진해 22조원을 유령도시에 허비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현 정권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오면 모든 책임을 현 정부에 돌리고 비난할 것이 자명하다.
대통령(서울)과 국무총리(세종시)의 집무실이 서로 다른 도시에 있는 나라는 없다. 행정이란 집중돼야지 분산시키면 비효율적이다. 생활권과 자녀교육 등을 고려할 때 근무지 이전에 따라 공무원 가족 전체가 세종시로 이전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한국 현실과 맞지 않다. 현실성 없는 계획에 22조원을 낭비하지 말고, 지난 정권의 선거용 정책의 실효성을 재고해야 한다. 이 문제는 결코 충남 주민에 제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적 문제다.
지난 11일, 정부는 세종시 민관 합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세종시 계획의 대안을 마련해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는 대안 심의기구다. 나는 이 위원회가 대안을 발표할 때까지 국민 모두 지켜보는 게 옳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