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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첫 한인 장군을 기다리며

Los Angeles

2009.12.0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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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희/피플부 데스크
LA폭동이 한인 사회에 미친 영향 중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자각'이다.

80년대 밀려들어왔던 이민자로서 한인들의 위치는 그저 조금 성공해가고 자리잡아가던 소수계 집단이었다.

그런데 폭동으로 인해서 한인들이 스스로 '소수계 중의 소수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이익을 챙겨줄 주류사회 인사들을 위한 후원 행사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또한 이전에는 많지 않았던 '정치 지망생'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던 점포들 매일 지나던 한인 타운의 거리들의 시커먼 화염과 매캐한 냄새가 1.5세나 2세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이다.

최근 신호범 워싱턴 주상원의원의 후원행사가 LA한인타운에서 열렸다. 그는 입양아 출신으로 정치인으로서 내년에 5선에 나서게 된다. 그는 늘어나는 선출직 정치인으로 나서는 한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렇게 이곳저곳에서 한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봄 LACCD 이사진에 합류한 티나 박이사도 LA타임스에선 "그게 누구데?"라는 식으로 무시했던 후보였다.

예전에는 부모들도 자녀가 의사와 변호사가 돼서 전문직으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랬는데 이제는 누구든 앞장서서 '소수계 중의 소수계'가 된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풍토다.

지난 2006년 박영태 중령이 대령이 됐다. 박 대령은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한인으로서는 첫 대령이다. 이전에 김영옥 대령이 첫 대령이었지만 웨스트포인트 출신이 아니었다.

웨스트포인트와 관련있는 한인들은 누구나 현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미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중인 박 대령이 별이 되느냐 언제 되는냐 등 기대와 관심이 많다. 본인은 '신' 만이 알 뿐이라고 겸손해 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높다고 한다.

김영옥 대령은 웨스트포인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시안이었기 때문에 장군이 되지 못했다. 웨스트포인트였다면 누군가 끌어서 장군이 되고도 남을 만한 걸출한 영웅이었지만 그 당시 미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보다 이민역사가 긴 일본계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했고 그가 오바마행정부에서 보훈부 장관을 맡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연방상원의원도 떡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폭동 전이라면 한국계 정치인이나 장군이 나오는게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수 십 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는 변호사나 수 십 만 달러를 버는 의사가 최고인줄 알았다.

하지만 한인 정치인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배후인물이며 대부인 신호범 의원이 신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울 젊은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웨스트포인트에도 한인들이 매년 40명 이상씩 입교하고 있다. 머지않아 굳이 박 대령이 아니라도 장군이 나올 것이다. 처음엔 준장이나 소장 정도로 끝나겠지만 나중엔 중장도 대장도 나올 것으로 본다. 만약 김영옥 대령이 몇 년만 더 사셨다면 한인이 장군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말이다.

신호범 의원은 인터뷰에서 30년내에 한인 출신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게 장군 출신이든 선출직 정치인 출신이든 꼭 나올 것이라는 의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한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흑인 출신 대통령이 나왔다.

킹 목사의 꿈이 당대에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자각'이 있었듯이 우리 한인들에게도 LA폭동은 자각이었다.

다음 중간선거에서 어떤 한인이 출마하게 될지 박 대령이 언제 장군이 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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