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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서생원과 레몬 나무

레몬 나무 밑에 생쥐 한 마리가 떨어져 있다. 이른 아침 뒷마당에 들렀을 때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살아 있다. 순간 적의를 느끼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팽팽히 긴장한 오른발을 뒤로 빼고 냅다 걷어차려는 순간이었다. 어라, 도망갈 생각을 안 하네.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도망가지 못하는 놈에게 발길질한다는 것은 저보다 큰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생쥐라고 하기엔 덩치가 커서 어른 주먹만 한 것이 등을 올리고 돌돌 말아 웅크리고 있다.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 보려는 것 같은데 여의치 못한 모양이다.

뒤뜰의 레몬 나무는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봄이 되면 연분홍 꽃망울에서 뿜어내는 짙고 그윽한 향기에 코를 찔리는 호사를 누리게 한다.

홈디포에서 파라솔이 달린 둥그런 철제 테이블을 구해 와 레몬 나무 옆에 쳐 놓았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바람 좋은 날은 깜박 졸음도 즐긴다.

레몬 나무는 촘촘한 가지로 꽉 차서 속이 어둡다. 낮에는 참새들이 그 속에서 짹짹대며 논다. 파르르, 파드닥 짹짹. 더러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가지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섬뜩한데도 아랑곳없다. 두 마리가 부둥켜안고 바닥에 툭 떨어지기도 한다. 밤에는 쥐들이 몰려와 찍찍대며 논다.

한낮엔 새들이 흰 똥을, 밤에는 쥐들이 쌀알만 한 검은 똥을 밑에다 싸 놓는다. 아침에 나와 보면 쥐똥과 밤늦도록 슬어놓은 나의 사념들이 함께 널브러져 있다.

참 잘 생겼다. 쫑긋 솟은 두 귀와 오종종한 얼굴, 윤기 흐르는 재색 털과 늘씬한 몸매에 하얀 가슴까지. 시궁쥐와는 확실히 격이 다르다. 아무렴 옆집 과실나무에서 잘 익은 오렌지와 아보카도 같은 고급 열매를 따 먹고, 꽃철이 아니어도 향기가 나는 레몬 나무에서 노닥거리는 쥐를 시궁쥐에 비견하랴. 아하, 그래서 생원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모양이다. 생원이란 선비가 아니었던가.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한 시절에 양반의 반열에 들었으니 고래(古來)로 하찮은 미물을 두고 의인화한 경우가 서생원 말고 또 있었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도 상한 곳이 없다. 눈도 또렷하다. 쥐약을 먹었다면 속이 뒤틀려 게워냈을 터인데 입 주위가 깨끗하다.

이 애, 말 좀 해봐 어디가 아프냐. 말을 해야 알지. 나는 먼 옛날의 어머니 말투를 닮는다. 제발 파다닥 일어나서 도망가거라. 안 그러면 비닐봉지에 싸서 버릴 수밖에 없어.

그때 레몬 나무가 잎을 가볍게 흔들어 대었다. 밤마다 그를 품었던 레몬 나무는, 내게 애원의 손짓을 한지도 모른다. 고 보드라운 발바닥이 나뭇가지를 간지럽힐 때마다 키득키득 웃느라 잎을 흔들어대던 몸짓으로.

쓰레받기에다 그를 얹고 집 밖으로 나가 그늘진 잡풀 속에다 감추듯 앉혀 놓았다. 이제부터 살고 죽는 건 네 운명이다. 나는 이제 모른다. 뒤돌아 나오다가 돌아다 본 쥐의 새까만 두 눈에 반짝 광채가 났다. 죽지는 않을 모양이다.


조성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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