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다 문득 멈췄다. 왼쪽 윗눈썹에 숨바꼭질할 때 빠진 꼬리 같은 하얀 것이 보였다. 그것이 흰 눈썹이란 것을 안 순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흰 머리, 흰 눈썹 노인의 대표적 상징이다.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때 흰 머리를 처음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벌써 흰 머리가? 가뭄에 콩 나듯한 흰 머리를 호들갑을 떨며 뽑아버렸다. 뽑아 버릴수록 흰 머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번졌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머리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흰 눈썹? 이건 흰 머리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노인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반지 그릇에서 트위저를 찾아 흰 눈썹을 뽑아버렸다. 그 자리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멋쩍게 눈썹을 만지며 찬찬히 보니 안쪽으로 두 개의 흰 눈썹이 더 있었다. 누가 볼세라 그것까지 깨끗이 청소를 해버렸다. 흰 눈썹이 새로 난 것인지 검은 머리가 하얘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오른 쪽 눈썹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도 두 개의 흰 눈썹이 있었다. 이들인들 어찌 거기 있을 수 있으랴, 비로 쓸듯 치워버렸다. 흰 눈썹을 다 뽑아버렸지만 기분은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엉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근 내 눈썹은 양쪽으로 다섯 개가 없어지자 뻥 뚫린 프리웨이 같았다.
앞으로 눈썹이 모두 하얗게 되면 어쩌지? 나이 드신 남자들의 하얀 눈썹은 가끔 보았다. 남자의 흰 눈썹은 흰 수염과 더불어 점잖고 경건해 누적된 연륜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릴 때도 만화나 영화 같은 데서 흰 눈썹과 긴 수염을 날리며 지팡이로 악당들을 쳐부수고 정의를 세우지 않던가.
하지만 여자의 흰 눈썹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나는 내 성글성글한 눈썹이 늘 불만이었다. 짙고 맑고 아름다운 아치형의 눈썹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눈썹으로 가곤 했다. 눈썹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런 눈썹은 여성만의 로망이 아니어서 남자들도 미운 눈썹을, 성근 눈썹을, 삐뚤삐툴한 눈썹을 타투로 교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흰 눈썹은 타투로도 어쩔 수가 없다.
눈썹, 사람만이 갖고 있는 눈썹. 사실 윗눈썹은 인간의 얼굴에 꼭 필요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만일 사람에게 눈썹이 없다면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람의 얼굴은 어떤 이미지일까.
신비한 미소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다. 그녀의 그림에 눈썹이 없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녀가 원래 눈썹이 없다고도 하고 다빈치가 그림을 그리는 화법 때문이란 설도 있고 일부러 눈썹을 뺐다는 말도 있다. 그런 모나리자를 보면 눈썹이 없다고, 성글다고 미인이 되지 못하란 법은 없다.
별로 쓸모없는 것 같은 눈썹, 왜 있는 것일까.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속눈썹은 눈을 깜빡거려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 혹은 이물질이 눈에 튀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윗눈썹은 깜빡거릴 이유가 없다. 보는 눈이 있고, 냄새 맞는 코가 있고 말과 먹는 일은 입이 한다. 눈썹은 놀고 먹는 백수?
눈썹은 각기 모양은 달라도 코를 중심으로 얼굴 양쪽, 바로 이마 밑에 붙어 있다. 만일 눈썹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자라면 우리 얼굴은 괴물처럼 흉측할 것이다. 윗눈썹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타투 광고 외에 눈썹에 대한 기사는 별로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다 눈썹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관상이었다. 눈썹은 사람의 지능, 의지, 능력을 나타내며 눈썹 털은 혈연과 관계가 깊은 형제관계, 즉 형제 궁이란다. 눈썹은 그 사람의 총명함과 어리석음을 말해주기도 한다는 것. 눈썹이 가지런하고 초승달 모양으로 예쁜 사람은 총명하단다. 나는 내가 총명하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눈썹의 길이는 눈의 길이보다 길어야 부귀가 따르고 눈과 눈썹 사이의 거리가 넓어야 두뇌가 명석하고 회전력이 빠르며 자손복도 좋단다. 눈썹의 종류도 초승달, 일자, 용, 범눈썹 등 17가지나 된다. 그중 으뜸은 당연히 초승달 눈썹이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운명에 맞는 눈썹을 가지고 태어난단다. 그래도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메워보려고 성형을 하고 타투를 하고 또 눈썹 연필로 모양을 다듬기도 한다. 신은 왜 우리에게 눈썹을 달아주었을까. 얼굴의 균형을 잡고 이마와 눈 사이를 모양새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
더위가 펄펄 끓는 여름 날, 아니 여름이 아니라도 땅을 파거나 힘든 일을 해 보라. 이마에서 구슬땀이 흐른다.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면 끈적끈적한 땀에 손이 미끄러진다. 그때 눈과 눈썹 사이를 만져보면 안다. 이마에 있는 수많은 땀샘에서 비 오듯 땀이 난다. 그 땀은 흘러서 어디로 갈까. 땀이 흘러내리면 바로 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속눈썹은 무던히 깜박거려 외부의 티끌이나 이물질로부터 눈을 보호한다. 만일 속눈썹을 깜빡거려 흘러내린 땀을 막으려면 속눈썹은 일초에 몇 만 번을 깜박거려야 할까. 아무리 속눈썹을 빨리 깜박거려도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린 땀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 짜디 짠 땀은 눈 속으로 들어가 눈을 상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동물에게는 없는 눈썹, 신은 우리 외모의 균형도 잡아주고 또 건강한 삶을 사는 조각품으로 눈썹을 눈 위에 붙여주었다. 눈썹이 밉다고 못 생겼다고 성글다고 그들의 할 일을 망각하지 않을 터. 삶의 연륜 따라 눈썹도 나이를 먹어간다!
흰 눈썹인들 어찌 제 할 일을 잊으랴. 신이 우리에게 흰 눈썹을 보내준 또 다른 배려가 있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