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우리 콘도 1층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한 것이 두 달을 넘겼다. 운동 시작한 초기에 두세 번 빠진 걸 빼고는 끼니 안 거르고 밥을 먹는 것처럼 꼬박꼬박 새벽마다 헬스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몸 여기저기서 근육들이 불거져 나오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로서는 여간 대견하고 흐뭇한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 운동을 마치고 체중을 재니 정확하게 140파운드였다. 인터넷에서 체지방률을 계산하는 방식을 찾아 신장과 체중을 입력했더니 체지방률이 22.5라고 알려주었다. 내 신장에 현재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내용이었다. 내 나이에 체지방률이 정상 범위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마음 한 편엔 아쉬움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마다 근육 운동을 시작해서 거의 석 달의 시간을 제법 알차게 채웠다. 처음 두 달은 근육의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석 달째 접어들면서 근육의 성장이 무척 더딘 것 같다. 가슴과 등뿐 아니라 복근의 성장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내 몸의 체지방률을 보고는 그 기대감이 거품이 되고 말았다. 모르는 게 약인데 뭘 좀 알고 나니 그게 병이 될 줄이야.
전문적인 육체미 선수들은 대회 기간 체지방율을 6~7%로 유지를 한다고 한다. 복근의 형태가 또렷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체지방률이 15%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복근을 가지고 있는데 복근을 덮고 있는 체지방, 즉 배와 허릿살이 그 복근을 가리고 있는데 유산소 운동과 음식 조절을 통해서 체지방을 걷어내야 비로소 그 복근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내 배를 만져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내 뱃살 아래쪽에는 단단한 복근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무너진 옛날 왕궁의 주춧돌처럼 복근의 윤곽만 보일 뿐이다. 어릴 적 우리가 흔히 말하던 임금 왕 자가 배에 새겨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빡세게 운동을 해야 하며 내 사랑 탄수화물을 멀리해야 한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았던 이정재가 관상가에게 묻는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내 뱃살 아래에는 단단한 왕이 숨어있다. 말하자면 나도 왕이 될 상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왕이 될 생각이 없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더 무거운 중량을, 그리고 더 많은 횟수를 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흰 쌀밥과 국수와 만두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영국의 어느 왕자도 그랬다지 않았던가.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는 그 왕자의 이야기.
결국 내가 이렇게 아침마다 운동하는 것은 내 지독한 탄수화물 사랑 때문이다. 심슨이라는 여자와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영국의 왕자처럼 형이상학적이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운동하면 왕은 아니어도 내 사랑 탄수화물과 결별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 누구나 왕이 되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왕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는 왕이 될 수 있는 상은 있지만, 사랑을 위해 왕을 포기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 저녁 된장찌개와 두부, 그리고 열무김치를 버무려 고추장에 비빈 흰쌀밥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나는 정녕 왕이 될 상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