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한국을 방문하였다. 대전문학관에서 ‘시와 정신’ 주최로 열리는 해외시인선 ‘바람에 기대어’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고 30년만에 하늘을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사람들의 발길은 활기차 보였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만큼 많이 발전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오면 되는 것을... 그 긴 세월 그리움으로 꿈만 꾸었다. 함께 글을 쓰고 나누는 시카고문인회 회원들과 함께 이어서인지 우리 걸음엔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행은 주로 문학관을 탐방하고 그곳 문인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바쁜 일정을 지내는 동안 충북 옥천의 정지용 문학관, 충북 보은 오장환 문학관, 경기도 안성에 조병화 문학관, 박두진 문학관,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 문학관, 시카고에도 여러번 문학 강연 차 방문했던 경희대 김종회 교수가 촌장으로 있는 경기도 양평의 ‘소나기마을’ 황순원 문학촌을 둘러보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서울로 올라온 다음날 이른 아침 침실의 커튼을 열었다. 바라보이는 종로의 시가지는 낯설었지만 편안히 다가왔다. 멀리 인왕산이 보이고 높게 뻗은 빌딩 사이로 낮게 드리운 고궁의 모습도 정겹게 다가왔다. 나는 이야기가 흐르는 역사의 숲,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를 만나러 갔다. 잘 포장된 언덕길을 오르는 내내 마음은 뛰고 있었다. 시인이 걸었을 이 산자락을 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시인의 서시를 마음으로 낭송해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산의 구릉진 언덕길 양편으로 큼직한 바위들과 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소담히 무리를 지어 핀 들꽃들이 반갑게 흔들렸다. 손을 내밀어 들꽃을 살며시 만져 본다. 이곳을 오르면서 시인도 흔들리는 들꽃을 어루만졌으리라. 아마도 시인은 산 아래 작은 마을을 내려다보며 조국의 암울한 처지를 생각하며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렸으리라.
시인의 언덕이라 명명된 산등성이를 얼마나 올랐을까? 짧은 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은 윤동주 시인의 사진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 한눈에 보아도 윤동주 문학관이다. 문학관의 내부는 간결하고 소박했다. 문학관 안쪽으로 눈길을 끄는 묵직한 철문이 보였다. 차례를 기다려 철문을 열고 내부로 발을 딛는 순간 나는 곧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사방이 막힌 감옥이었다. 나무의자 몇개가 놓여있을 뿐 내부는 어둡고 답답했다. 입구 맞은편 벽에 윤동주 시인의 지난 영상이 비쳐질 때까지 높은 곳에 손바닥만한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의자에 그냥 앉아 있었다. 무엇을 기억할 수도,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시인은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중 조선 독립운동 선동죄로 투옥되었다. 일본 경찰의 끈질긴 회유에도 시인의 조선독립을 향한 그의 마음은 꺾을 수 없었다. 조국의 광복을 몇달 앞둔 1945년 2월16일 시인은 계속해서 이름 모를 주사를 투여받고 초췌해진 몸으로 옥사하였다. 그곳은 멀리 일본 후쿠오카 차디찬 감옥이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총과 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시인은 잃어버린 조국의 언어와 글로 소리 없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20세기 중반 국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으로, 조선 독립의 문학적 상징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시인 윤동주. 죽는 순간까지 시인은 하늘과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다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3년 후 친지들에 의해 출간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있다. 광복절을 지내며 윤동주가 한없이 보고 싶고 그리운 까닭은 지금은 눈을 비비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시인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정신과 하늘과 바람과 별을 사랑한 순수하고 올곧은 그의 아름다운 마음에 있지 않을까 한다. 오늘은 유독 밤하늘의 별을 세며 시인 윤동주를 만나고 싶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