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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바디메오, 길 없는 길을 간 제자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 신약학

모국에서 자살하는 인구의 비율이 올해 10만 명당 24명이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올해는 유난히 우리 주변에 살 '길'이 막막해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이 없음은 희망이 보이지 않음이다. 여기 밑바닥 인생에서 '길'을 보고서 그 '길'로 나아간 이가 있다. 그는 희망으로 가는 출구가 없어서 여리고 성문 앞에서 날마다 손을 벌리고 구걸로 연명하던 걸인의 길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그 '길'로 들어선 바디메오다.

여리고 성문 앞에서 구걸하던 소경 바디메오가 목소리 높여 외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恨)서린 절규를 예수를 향해 외쳤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사회 밑바닥에서 온갖 푸대접과 멸시를 받고 사는 그에게 예수님은 희망을 의미했다.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은 물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그에게 시력의 상실은 희망 없음이었다. 더군다나 재앙이나 질병은 하나님의 응징이라는 인과응보의 신학에 근거한 당시 유대의 종교적 현실을 고려한다면 그에게는 육체적 장애보다는 사회적 편견이 더 견디기 힘든 질곡이었을 것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꼴찌가 일등 되고 일등이 꼴찌가 되는 아이러니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바디메오가 그런 경우이다. 그는 예수님의 치유로 육안(肉眼)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영안(靈眼)이 열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길을 따라 나섰으니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히 끝난다.

이후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헬라어 '아콜루데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스승의 가시는 길을 알고서 제자로서 그 길을 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시력회복의 기적보다는 그 짧은 만남으로 걸인이었던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이 더 큰 기적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신앙은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냐는 '양'의 문제가 아닌 하루를 살아도 진정한 제자로 살아가는가 하는 '질'의 문제이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볼 수 없는 '길'을 찾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디메오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일등 신화와 양으로 가치를 매기는 통념을 깨고서 예수께서 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좇아간 진정한 제자였다. 지금은 바디메오처럼 다시 한 번 '헝그리' 정신으로 일어나 2010년을 희망으로 맞이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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