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 불자란?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한자로는 '부처 불' 자에 '놈 자' 자를 쓰는 게 보통인데 '아들 자' 자를 써도 그 낱말이 뜻하는 바가 같은 부분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닐 듯하다.
이곳 많은 한인들은 보통 불교를 믿는 이들을 불교 신자 또는 불교도라고 부르는데 좀 심한 경우이긴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은혜받지 못한 불쌍한 자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도 있다. 미국서는 이래저래 동정도 많이 받고 산다. 그게 다 내 복이고 업인 걸 어떡하겠나?
그렇다면 일부의 동정심마저 불러일으키는 불자란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믿는 것일까? 다른 종교들에서처럼 구체적으로 무얼 믿기나 하는 것일까?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불교라고 해도 한 마디로 딱 잘라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드러난 겉모양만 보더라도 나라마다 종파마다 조금씩 다르고 심지어 같은 사람일지라도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내 나름의 생각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불자라면 대략 아래와 같은 믿음과 태도를 갖춘 분들이 아닌가 한다.
첫째로는 자기 자신의 믿음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니까 다른 것들은 다 없애 버려야 할 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와 다른 믿음에 대해서도 어쨌든 한 가닥 일리는 있을 수 있다거나 그 중 어떤 것들은 얼마간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가능성의 여지를 베푼다. 때로 낯설고 꺼림칙할지라도 손님을 위하여 조그마한 방석 자리나마 내줄 줄 아는 교양과 아량은 갖추고 있어야 불자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로 불자는 이 우주의 질서가 하느님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다르마 곧 부처님이 일러주신 진리임을 믿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미치는 이 진리는 요약하면 연기법 곧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남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서 저것이 사라진다. 바로 자연의 순환 원리다.
셋째 따라서 불자는 인과를 믿는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결과 없는 원인도 없다. 기적은 없다. 복은 복대로 가고 죄는 죄대로 간다. 다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관계를 거쳐 갚아지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러니 공덕은 일단 틈 날 때마다 쌓아놓고 볼 일이다.
넷째 불자는 바깥이 아니라 나의 안 즉 내 마음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믿는다. 나를 떠나 바깥에서 나를 찾으려는 헛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다. 나야말로 부처의 씨앗을 감춘 여래의 곳간이다. 썩어 없어질 몸 깊숙이 깃든 영원한 본래의 나를 찾아 이 뭣고? 해탈에 이르고자 몸과 마음을 닦는 이들이 불자다.
다섯째 불자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본성이 비어있음을 깨닫는다. 영원할 수 없는 눈 앞의 세계에 끄달리지 않고 공을 깨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언제까지나 내 것이라고 자랑할 만한 게 없다. 따라서 불자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여섯째 불자는 작은 나에서 큰 나로 나아간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 같다는 깨달음을 향해 정진한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너와 내가 하나 되는 불이의 경지요 동체대비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픈 이들이 불자다. 남의 고통에 고개를 돌린다면 불자가 아니다.
(그리고 뱀발. 위에서 보듯 애기 동자 족집게 점 보살 찾아다니는 이들이 불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지요?)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