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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새롭게 시작한 한해

박기준 신부/성 바실 한인성당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시간들에 무게를 두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시작한 올 한 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훗날 받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언젠가 들었던 얘기 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작은 중소기업에 김주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슨 잔정이 그리 많은지 후배들 뒤치다꺼리나 하기 일쑤였고 아무도 손 안 대는 서류함을 거의 날마다 정리하느라 퇴근 시간을 넘겼으며 어김없이 오후가 되면 커다란 쟁반에 커피 여러 잔을 들고는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하며 설탕 대신에 미소 한 숟가락을 더 넣어 책상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휴직계를 냈습니다. 아내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병간호를 위해 그는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지만 한심하고 남자답지 못하고 무능하며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가 회사에 없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것이었습니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마실 수 있었던 향긋한 커피는 기대할 수 없었을 뿐더러 책상 위의 컵들엔 커피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 먼지만 쌓여갔고 향기나던 화장실은 들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더러워졌으며 휴지통에는 늘 휴지가 넘쳤고 서류들은 어디 있는지 서류철끼리 뒤죽박죽 섞여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서 내 사람들은 점점 짜증난 얼굴로 변해갔고 서로에게 화를 냈으며 시간이 갈수록 큰소리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에 가득했던 화평은 어느새 조금씩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같은 동료였던 박주임이 상사의 짜증을 다 받아내느라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김주임이 끓여다 준 커피가 그리워졌습니다. 김주임이 생각나자 아직 남아있는 그의 책상 앞에 무심코 갔을 때 작은 메모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편할 때 그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오늘따라 김주임의 책상 위에 있던 글귀 한 줄이 커피 향처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십니까? 편하십니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지금 여러분을 대신해서 불편함을 견디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니면 지금 불편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누군가는 여러분으로 인해 편안함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있으나마나한 사람 필요 없는 사람 필요한 사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십니까?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그 진가는 사실 지금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여러분께서 남기시고 갈 빈자리는 그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에는 언젠가 여러분이 떠난 후 남게 될 빈자리를 생각하시면서 날마다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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