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들이 한국 정부의 가장 시급한 재외동포 정책으로 '복수국적 허용 연령 확대'를 꼽았다. 또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 포기 절차를 간소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주중앙일보가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에서 한인들은 '재외동포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2142명) 중 절반 가까운 983명인 45.9%가 현행 65세 이상에게만 허용하는 '복수국적 허용 연령의 하향 조정'을 꼽았다.
그 뒤로 37.2%(796명)는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 포기 절차 간소화'를 지적했으며, 36.9%(791명)는 '재외국민의 건강보험 규정 완화'라고 답했다.
또한 '재외국민 보호 강화' 정책을 요구하는 응답자는 32.4%였으며 '재외국민의 한국 내 경제활동 편의 증진'에는 25.9%가 찬성했다.
이번 질문은 미주 한인들이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정책을 좀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도록 응답자에게 최대 3개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그 결과 미주 한인들이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1세들과 2세들을 위한 내용들이 많았다.
실제로 '동포청 신설'이나 '미주 한인 국회 비례대표 할당' 정책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동포청 신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한 미주 한인은 전체 응답자의 16.5%에 그쳤으며 국회 비례대표 할당 정책도 응답자의 6.7%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한인 1세 시민권자들이나 한국 방문이나 취업을 원하는 한인 2세 인구들을 위한 정책 요구는 높았다. 특히 취업 연령이 되는 2세들이 부모 국적에 따라 자동으로 복수국적자 신분을 갖게 됐다가 발생하는 불이익을 방지하는 정책 마련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었다.
이 밖에 기타 요구사항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할 때 격리해제를 요구하거나 ▶안전한 모국 여행 지원 ▶상속세ㆍ부동산 양도 등에 대한 각종 업무의 간소화 등도 있었다.
한편 만 65세 이상 외국 국적자가 한국에 영주할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해 복수국적자가 된 재외동포는 1만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지난 2017년 한국 법무부가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국적법이 개정된 2011년 681명을 기록한 이후 해마다 1000명 이상씩 증가해왔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미주 한인들의 재외동포 정책은 수년째 한국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이슈들이다. 배경과 원인을 소개한다.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
10년째 대외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 이슈는 2011년 한국 국회가 국적법을 개정한 직후부터 불거졌다. 당시 한국 국회는 한국으로 귀국하고자 하는 재외동포에게 국내에서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전제로 복수국적 취득을 허용했다. 경제활동 연령기 동포가 복수국적을 취득할 경우 한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허용연령은 만 65세 이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은 병역 의무 만기가 만 38세이므로 그 이후부터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주 한인들의 강력한 요청에 한국 정치권은 개정을 약속하고 추진하기도 했지만 실제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징병제도를 갖고 있는 한국이 병역 의무를 회피하면서 권리만 누릴 수 있다는 국민적 거부감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 포기 절차 간소화
부모의 국적 때문에 한국 국적을 갖게 된 2세들이 이를 모르고 있다가 한국 방문이 거부되거나 미국에서도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고 있어 시정이 시급하다. 특히 '국적자동상실제'가 폐지된 후 남학생뿐만 아니라 병역의무 없는 2세 한인 여성들까지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복수국적자가 되어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 시민권자 아버지와 영주권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동으로 복수국적자가 됐지만 이를 모르고 있다가 국적이탈이 불가능해 서울대 교환학생 기회를 포기한 한인 2세 여학생이 현재 한국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4일(한국시각) 한인 2세 여성인 재닛 진주 최(19)씨가 현행 국적법이 국적이탈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본안 심리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해외 거주 여성 복수국적자들의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현행 한국 국적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사를 통한 것이다.
지난 6월에도 선천적 복수국적 때문에 미 공군 입대를 포기한 버지니아주의 한인 2세 여성인 엘리아나 민지 이(23)씨가 한국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당시 헌법재판소는 이씨가 한국 국적법 조항으로 기본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90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최씨 케이스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케이스를 접수한 지 두 달 만에 사전심사를 통과시켜 위헌 심판 가능성이 크다
◆재외국민의 건강보험 규정 완화
2019년 한국 정부는 외국인이나 재외국민이 한국에 들어와 건강보험으로 값비싼 진료를 받고 빠져나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 한국 체류 기간을 기존의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했다.
이에 따라 미주 한인들이 한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가능하다. 문제는 입국 후 6개월 동안 연속 30일을 초과해 국외에 체류하는 경우에는 재입국 일부터 다시 6개월이 지나야 지역가입자로 가입이 가능하고, 가입 후 연속해 30일 이상 출국 시에는 자격을 잃는다. 이 때문에 직장이나 사업, 학업 등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미주 한인들은 한국에서의 의료 이용이 쉽지 않다.
미주 한인들은 해외에 출국하더라도 계속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허용해 한국인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재외동포들의 '먹튀' 논란이 가장 큰 이슈라 한국 정부가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