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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믿음

친구들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하늘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기에 희망이 있고 삶의 보람이 있다. 국가와 국민 사이에 신뢰가 약해지면 반란과 혁명이 일어남을 역사의 거울 속에서 자주 본다. 살아가는 길에 어려움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나와 나 자신 사이에도 믿음이 강해지면 역경을 이기고 견디어내는 힘이 있다.

태양을 바라고 사는 목숨은 해바라기 뿐이 아니다. 짐승처럼 살던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해 뜨는 동쪽을 향하여 이주하기 시작한 동기였다. 짐승들에 섞여 맹수와 싸우는 밤의 두려움을 쫓아내고 새벽을 깨우는 태양의 광명은 인류가 문명을 향한 탈출이었다. 태양을 숭배한 믿음의 능력은 곧 만물의 영장이 되는 시작이었다. 아프리카를 떠나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아침 해를 찾았기에 나라 이름이 조선이었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산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는 동안에 엄마에게 의지하는 버릇은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한평생 지속하기에 아기 우는 소리를 엄마가 들었듯 자라나서 어른이 되어서도 소리 없이 혼자 우는 마음의 소리를 하늘이 듣고 있음을 바란다. 고독한 인생에 어려움이 닥치면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 구원의 손길을 찾아서 종교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는 기적이 있다. 1945년 2차대전이 종결된 8월 15일에 우리 가족은 중국 만주의 무순에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10살 된 형, 8살 된 나, 5살과 2살 된 누이들, 2남 2녀를 거느리고 이미 봉쇄된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을 넘어서 남한의 고향에 돌아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안개 낀 어두움 속에 나룻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널 때 소련 국경경비군의 따발총과 장총 소리는 요란하였고 총알은 벌 떼처럼 우리 주위를 지나며 강물을 튕겼지만 우리 배는 무사히 신의주에 도착하였다.

평양에서 며칠 머무른 다음, 당시 남한의 개성시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모든 교통이 두절되어 보행만으로 40여일의 긴 여정이었다. 가끔 소가 끌고 가는 달구지를 만나면 시골 농부의 친절함이 하늘의 도움이었다. 큰 길가나 농가의 처마 밑에서 여섯이서 움츠려 자고 9월의 곡식과 열매의 도움을 받으며 생존하였다. 드디어 남과 북을 나누어 놓은 개성 시 서쪽의 예성강에 이르렀을 때에 우리 가족은 북한 인민군에게 체포되었다.

구치소에서 하루 지나고 우리 어머니의 교섭이 인민군 경비대 책임자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손가락에 금반지를 빼어 책임자의 손에 쥐어 주며 간곡히 부탁하였다. 책임자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네 아이들을 불쌍히 보았는지 책임자 자신이 우리를 인도하고 예성강에 이르렀다. “뛰지 말고 저 다리를 천천히 걸어서 넘어가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리를 건너 우리는 드디어 남한에 도착하였다. 미군 헌병은 우리에게 DDT 살충제를 뿌려 우리 모두 눈사람처럼 하얗게 눈만 깜박이며 웃고 있었다. 며칠 후에 열차 편으로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였을 때 엄마와 오빠들의 등에 업혀 온 2살 된 누이는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우리 가족이 만주를 떠나 2달 후에 남한에 도착함은 기적이었다. 위기가 닥칠 적마다 도움의 손길이 우리를 구해주는 요행의 계속이었다. 그동안 부모님의 끊임없는 기도뿐이었다. 우리가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렀거나 북한에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상상을 해보면 더욱 절실한 기적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믿음을 가진 부모의 슬하에서 형은 불교에 의존하였고 나는 미국에 유학 온 후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누이는 미국 신랑의 가족을 따라 천주교 교인이 되었다.

믿음으로 생활하며 습관에 적응하면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는 동안 차츰 하늘과의 연관을 느끼기 시작하며 사랑과 긍휼을 행동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가끔 믿음의 의혹과 고독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며 기도는 더욱 뜨거워지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달라진 모습으로 나를 깨우고 내 인생이 크게 변화됨을 한순간에 경험한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무한한 감사와 기쁨을 얻는 감동을 경험한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고통마저 즐거움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믿음은 마음에 있고 마음은 몸의 그릇에 담겨 있다. 사람의 뇌는 영성을 관리하는 뇌간이 있어 사랑과 종교가 있다. 감정을 관리하는 소뇌가 있어 식욕과 성욕의 기본기능에서 발달한 감성으로 예술을 즐긴다. 사람의 대뇌는 언어를 기반으로 지성이 발달하여 과학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 땅 위에 모든 목숨의 막내로 태어난 사람은 온 지구를 차지한 만물의 영장 노릇을 해왔다. 영성, 감성, 지성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어떻게 하늘의 뜻을 따라 지구를 다스리고 모든 목숨과 함께 삶을 꾸려갈 수 있을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항상 하늘이 함께 하는 버팀목이 있어 아무리 어려운 역경도 이겨내어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 생각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얻는 듯하다.


최용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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