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 승복의 유래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이 풍요로운 미국에서도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이들이 많다지만 아마 옷이 없어서 떠는 이들은 훨씬 적을 것이다. 온 천지에 멀쩡한 헌옷 더미요 아직 멀쩡한 신발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런데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또 한 아름씩 사들고 나온다. 왜냐? 바로 유행이요 패션 때문이다.
세상에서 이런 유행과 겉모양에 가장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분들이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고 그 가운데서도 아마 스님들이 가장 간소한 몸차림으로 살아가는 분들일 것이다. 본래 대로 하자면 옷 세 벌에 바리때라는 그릇 하나만 갖추면 일단은 되니까. 만약 세상이 이런 스님들로만 넘쳐난다면 딱 밥 굶을 직업들이 몇 있겠는데 패션 관련 업계도 그 중 하나이겠다. 미장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부처님을 따르는 승가의 사문들은 보통 간단한 아랫도리옷만 입고 어깨 위에 커다란 포대기인 카사야를 걸쳤었다. 이 카사야는 분소의라고 해서 송장을 쌌던 포대기 피 묻은 천 쥐가 쏠거나 불에 탄 옷 쓰레기로 버려진 천쪼가리 들을 모아 조각조각 이어서 만들었다. 철저한 재활용이다. 색깔도 재질도 알록달록 각각이어서 황토로 물을 들이거나 해서 색을 죽였는데 이게 요즘 스님들이 의식을 집전하실 때 걸치는 붉거나 누런 가사가 되었다.
인도는 본래 날씨가 더워서 이렇게 걸치고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불교가 북방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지에서는 추워서 윗도리를 안 입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지 적삼 동방 두루마기 장삼 등이다. 다 잿빛 옷으로 속세의 헛된 애욕을 뭉개고 지우는 중도의 색깔이다. 회색 자동차처럼 때도 덜 탄다. 먹물옷이라고도 한다.
밑옷을 받쳐 입고 장삼을 입은 다음 그 위에 밤색이나 홍색의 가사를 걸친 모습이 스님의 정장 차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걸치거나 드리우는 것이므로 입는다고 하지 않고 수한다고 한다. 장삼은 소매가 무지하게 넓은 두루마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러한 승복들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대에 따라 종파에 따라 모양과 색깔 재질이 변해 온 것까지 아신다면 이 방면 공부를 계속하시거나 패션계로 나가도 성공하시겠다.
요즘은 스님들도 LA 공항을 자주 드나드신다. 나가서 기다릴 일이 있으면 혹시 낯설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한 번 눈여겨보시라. 중국 스님 베트남 스님 미얀마 스리랑카 티베트 스님 서양 스님. 모두 어딘가 조금씩 다르시다. 어떤 일본 스님들은 화려하시기까지 하다. 그러다 옳거니 익히 눈에 들어오는 한국 스님이시다. 살강 위에 씻어 둔 잿빛 사기그릇과 같이 맑고 소박한 모습 말하자면 이게 바로 역사요 문화요 패션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러한 소박한 승복을 걸치고도 단속의 빌미를 주게 되는 게 사바세계인가 보다. 본국의 조계종에서는 몇 해 전 승복을 통일 시키고 디자인을 등록하였다고 한다. 세속의 제도를 빌어서라도 그 옛날 분소의의 본분을 지켜내야 하는 패션 도용의 시대가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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