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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강광배 '17년 인간승리 썰매 인생', 불모지 개척···3종목 첫 출전 진기록

Los Angeles

2010.01.2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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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무릎인대 파열되며 장애자 판정 받아
98년부터 2010년까지 불굴의 의지로 도전
루지·스켈레톤·봅슬레이 국가대표 영광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로 불리는 강광배(38·강원도청)은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니었다.

초등학교떄 태권도를, 중·고교시절에는 유도 도장을 다니던 운동을 좋아했던 남학생이었다.

전부 전주 출신인 강씨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 무주 리조트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울스포츠와 인연을 맺게 됐다.

태어나서 처음 본 스키장에 ‘이런 별천지가 있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짬짬이 새벽이나 밤 시간을 이용해 스키를 배울 정도로 흠뻑 빠졌다.

그 결과 대학교 2학년때 전북스키연맹 회장배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무주리조트에서 스키 강사로 채용됐다.

하지만 1995년, 대학교 3학년 시절 초등학교 선수들을 가르키며 내려오다가 미끄러 지며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무릎 연골마저 다친 그는 지체 장애자 5급 판정을 받아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선수 생활을 마치며 방황하던 강씨는 다음해 봄 대학교 게시판에서 루지 선수 선발 공고를 보며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됐다.

주저없이 지원서를 제출한 강씨는 일주일간 강습회를 하며 지원자 30명 중 2등에 오르며 정식 선수가 됐다.

당시 국제루지연맹(FIL) 소속 쿤터 렘머러 코치가 강습회를 지도했는데 강씨는 여름에도 바퀴를 단 썰매를 타고 아스팔트를 달리곤 했다. 결국 국가 대표에 선발,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강씨는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정말 가슴이 떨렸는데 막상 올림픽이 끝나니 메달을 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렘머러 코치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 스포츠 과학부에 입학,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유학중에도 학업과 차기 올림픽 준비를 병행하던 그는 세대교체를 이유로 대표 선수에서 제외됐다. 여기에 다쳤던 무릎을 또 다치며 인스부르크 병원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다음해 1월, 그의 인생은 또 한번의 전환기를 맞았다.

인스부르크대학 지도교수의 소개로 접한 스켈레톤을 배운뒤 혼자서 대한 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에 가입, 대한체육회(KOC)조차 모른 상태에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을 획득했다.

솔트레이크 올림픽 이후 강원도가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봅슬레이 팀을 만들면서 한국으로 복귀,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 스켈레톤 선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KOC 추천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으로 출마했다.

토리노 올림픽을 마친 강광배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루지나 스켈레톤과 마찬가지로 봅슬레이 역시 당시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씨는 봅슬레이로 전향, 기적처럼 일본을 따돌리고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대학교 3학년때 처음 루지를 시작, 17년만에 세계 최초로 3개의 썰매 종목에서 모두 올림픽에 출전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이번 동계 올림픽 성적에 상관없이 강씨는 불굴의 의지로 미개척 분야에서 한국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쓴 ‘썰매 종목의 영원한 개척자’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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