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인물열전] 엘리사벳, 가장 큰 자를 낳은 석녀
이상명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 신약학
그러나 엘리사벳에게는 큰 시름이 있었으니 아이를 잉태치 못한 석녀(石女)라는 평생 그녀를 짓눌러온 수치스러운 딱지였다. 자신이 낳은 남자아이로 여성의 가치가 매겨지던 당시 유대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엘리사벳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그러다가 폐경기를 넘겼을 법한 엘리사벳의 닫힌 태(胎)가 열리게 된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사가랴는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려 들어간 성소 안 분향단(焚香壇) 우편에 서있는 하나님의 사자와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John)이라 지으라고 지시한다. 늘그막에 아이라니! 사가랴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생물학적으로 출산할 수 없는 두 부부의 나이를 근거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 불신앙의 결과 사가랴는 한동안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신약성서는 세례 요한을 인류역사상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 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서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나란히 등장하여 예수님과 함께 도래할 천국을 선포했던 선 굵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런 '큰 자'를 잉태하기 위해 농익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하나님의 때는 인간의 때와는 다른 법.
석녀였던 엘리사벳의 태가 열린 사건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새 시대가 동텄음을 알리는 여명(黎明)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예언자 이사야는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간의 불임(不姙)과 결부시켜 다음과 같이 외친다.
"기뻐하라 아이 못 낳는 불임의 여인아! 환성을 지르며 외쳐라 산고를 모르는 여인아! 과연 외로운 여인의 자손들이 남편 가진 여인의 자손들보다 더 많으리라"(이사야 54.1). 이렇듯 경수(經水)가 끊어진 한 여인의 태를 여신 하나님은 우리네 인간사 속에서 희망이 사라진 불모지에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의 싹을 틔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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