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에 ‘동성연애 특권법폐지 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을 달고 발표된 명단은 총 267명이었다.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크리스찬 코얼리션이라는 백인 보수계의 대표단체와 손을 잡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지속시키자는 서명운동을 전개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Asian Week, CNN, Examiner 등 아태언론과 주류언론이 앞서서 보도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적 소수인 코리언 커뮤니티가 또 하나의 소수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요구한다는 전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을 계속 차별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누구인가. 그뿌리는 주민발의안 187을 낸 백인우월주의 세력, 소수민족보호법을 철폐하고 이중언어 교육을 폐지하고 각종 웰페어를 삭감하자고 주장하던 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오늘은 동성애 문제를 들고 우리를 선동하고 있지만 내일은 또다시 이민자, 소수민족, 여성, 노인, 저소득층의 민권을 침해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법안이 사회의 논란이 되면 혐오범죄도 늘어나 더욱 많은 소수민족, 유색인종, 그리고 동성애자들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로 오해받는 이들이 폭행과 폭언의 대상이 된다. 동성애자 고등학생들은 이성애자 학생들보다 평균 4배나 많은 협박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주변의 편견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있다. 지난해 한인교회 앞에서 한 인종혐오주의자에게 살해된 윤원준군도 생각해보자. 우리 동포사회는 미국사회에서의 소수계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뿌리깊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자리잡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는가.
학교에서 성별, 인종, 종교, 신체장애 및 동성애를 토대로 차별할 수없다는 당연한 법을 캘리포니아 상원과 하원이 통과한 이유도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법의 제목도 “학생안전과 폭력예방법”이다. 서명운동 측의 “동성애를 교육법규에 의무적으로 삽입하여 정상적인 삶의 표준이라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터무니 없는 주장은 혐오범죄와 학교내 폭력의 위험을 부정하는 무책임한 입장이다.
특정계층을 민권에서 소외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 우스운 말이다. 물론 시각의 차이와 개인적 편견들이 있더라도 그로인해 누구의 민권도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소수층이 우리들끼리의 의견대립으로 내분, 세력이 약화되는 것이야말로 미국사회 기득권층이 바라는 것이다. 직장을 구하거나 거주지를 구하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정당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이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동성애자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이란 없다.
동성애자 차별주의자들은 동성애가 그릇된 선택이며 ‘구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로 살 것인지, 이성애자인양 행세하며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성적 지향성 자체를 선택할 수는 없다.
에이즈를 동성애자만의 질병으로 매도하는 비과학적 홍보도 상식에 어긋난다. 에이즈는 보편적으로 인정하듯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다.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견해가 유포된 배경에는 초창기 에이즈를 다루었던 사람들의 무지 또는 고의적인 편견 때문이었다.
일부 한인 교계에서는 성경이 분명히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동성애자는 기본적인 민권도 가질 권리가 없으니 차별금지법을 폐지하라는 내용이 성경에 어디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고 관용하자고 말씀한다. 사랑과 진리, 정의와 공평을 가르치고 예수님은 ‘소외자’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독교인들이 앞서서 동성애자에 대한 모든 인격적 모욕과 비난을 중지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주민발의안 22번을 반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