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됐다. 이에 앞서 유럽과 남미 여러 나라에서는 광란의 사육제(謝肉祭)가 계속됐다. 하지만 청교도 정신으로 건국한 미국은 별다른 사육제가 없다. 오직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마디그라가 유명한데 특히 올해는 뉴올리언스 세인츠가 수퍼볼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31대17로 역전승하므로 그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니쓰 사육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사육제가 유명하지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와 상파울로에서 열리는 삼바축제인 ‘피의 카니발’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이 기간 전 세계의 호사가들이 이 광란의 축제를 구경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여들어 먹고 마시고 춤추는 원색적 퍼레이드를 벌이는 가운데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기 때문이다.
사육제를 지칭하는 영어 카니발(carnival)은 라틴어 carnevale에서 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고기를 금한다”(謝肉)는 뜻이다. 절제의 기간인 사순절이 시작되기전에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사육제라면 의당 고기를 금한다는 사육대신에 식육제(食肉祭)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12세기경에 시작된 베네치아 사육제에서는 남녀불문하고 서로 알아볼 수 없도록 가면과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해서 사육제가 벌어지는 동안에는 모든 일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 사육제가 끝나는 날은 화요일로 마디그라라고 했으며 그 다음날이 재의 수요일인 동시에 사순절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디그라는 일명 ‘기름진 화요일’이라 했는데 기름진 육식으로 풍요롭게 먹고 마시는 날인 까닭이다.
이런 일련의 종교적 행위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대동소이(大同小異)하게 나타난다. 이슬람의 경우에는 라마단 기간 한달중에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음식과 음료의 섭취와 성행위를 금하는데 일몰이 되어 음식 먹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초조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가엽기 그지없다. 이렇게 사육제를 즐기면서 지키는 사순절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단식후 음식을 취하기 위하여 초조해하는 금욕적 라마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불교에서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 소위 용맹정진한다는 승려들이 세속에서 펼치는 갖가지 해프닝을 볼 때 이러한 종교적 요식행위는 결코 구원과도 관계없고 참 신앙생활과도 무관한 것이다. 사순절이 진행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마지막 40일을 좇아가면서 그 분의 삶 속에 함께 녹아져서 그의 고난의 깊은 의미를, 또 부활의 대승리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키려는 사순절도 사육제를 지키는 종교인들과 별다를 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저런 절기들을 지키다보면 그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