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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런 얘기 저런 얘기'] 2010 남아공대회 허정무 감독

Los Angeles

2010.03.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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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즐기면 기회는 온다…내가 할 일은 멍석 깔아주는 것
무조건 이기자고 생각하면 상대 페이스에 말려들어
누가 뭐래도 제갈길 가라는 선배 감독들 조언 고맙다


1994년 6월18일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의 첫 경기인 스페인전. 전반 25분 고정운에게 백태클을 한 스페인의 미겔 나달이 퇴장당했다. 그러고도 한국은 먼저 두 골을 내준 뒤 어렵사리 쫓아가 2-2로 비겼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호 감독은 "상대 선수가 퇴장당했을 때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우리는 경험이 부족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대표팀 코치로 김호 감독의 옆에 앉아 있었던 허정무 현 축구대표팀 감독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강팀과 대결해 본 경험이 있었다면 주눅 들지 않고 수비라인을 좀 더 전진시켜 압박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쾌속세대와 함께 즐기러 간다= 허정무 감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얘기한다. 그는 "김정남 감독부터 딕 아드보카트 감독까지 본지에 실린 기사를 보며 여러 가지를 새롭게 정리했다"고 했다.

허 감독은 "홈에서 열린 2002 월드컵을 제외하면 매번 아쉬움만 남겼다. 항상 우리는 비장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어떻게든 세계의 벽을 넘으려 했다. 그러기 위해 상대를 붙잡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제는 마음가짐부터 새롭게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성과를 낸 '쾌속세대'의 면면은 그의 생각과 닿아 있다. 허 감독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경기를 망친다.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기 십상이다. 느긋하게 경기를 즐기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에는 밴쿠버의 주역 김연아.모태범.이상화와 또래인 이청용(22.볼턴).기성용(21.셀틱)이 있다.

허 감독은 "세계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하는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그들의 롤모델이 된 박지성(맨유).이영표(알힐랄) 등이 팀의 중심을 잡고 있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드컵 쾌속세대'의 가능성은 지난 3일 코트디부아르와 평가전에서 확인됐다. 그는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더라도 동료를 활용하면 충분히 강팀과 싸워 볼 수 있다. 자신감을 갖고 이기는 방법을 찾아 상대를 압도하는 게 경기를 즐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뭐라 해도 내 길을 간다= 역대 월드컵 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감독이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 나가라"고 충고했다. 선배들의 조언에 고마움을 표시한 허 감독은 "세 번의 월드컵을 거치며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이 한.일전에 매몰돼 정작 본선 준비에 차질을 빚은 차범근 감독을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고도 했다.

허 감독은 월드컵 예선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겼다. "처음 대표팀을 맡았을 때 선수층이 너무 엷었다. 본선에서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주위에서 무슨 얘기를 하든 젊은 선수 발굴에 주력했다.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유럽에서 뛰는 이청용.기성용도 대표팀에서 자리 잡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허 감독은 남은 시간도 '마이 웨이'를 선언했다. 이동국이든 안정환이든 선수 선발 및 기용과 관련돼 감정에 치우친 여론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꼽고 있다.

86년 한국축구가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재진입할 때 주역이었던 허 감독은 새로운 사명을 안고 남아공으로 향한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기로에 서 있다. 이제 원정 월드컵에서도 16강에 올라야 한다. 더 늦으면 정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진입을 꿈꾸고 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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