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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부도칸이 부러운 이유

커뮤니티는 알고 있었다. 타운은 말라갔다. 이민자는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커뮤니티에 관심을 잃었다.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해진 3ㆍ4세들은 타운에 등을 돌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후죽순 난개발이 시작됐다. 토박이 주민들이 쫓겨나고 동네 상점들도 밀려났다. 정체성을 잃은 타운을 여행객들은 외면했다. 2000년대 말 LA 리틀도쿄는 멸종 위기를 직시했다. 절박함으로 커뮤니티 재건에 매달린지 10여 년이 지난 올해 6월 리틀도쿄에서 부러운 소식이 들렸다. '부도칸(Budokan.무도관)'이 문을 열었다. 체육관 겸 커뮤니티 센터인 부도칸은 로스앤젤레스 스트리트 선상 2가와 3가 사이 3만9000스퀘어피트 부지에 2층으로 지어졌다. 3500만달러라는 큰 돈을 모아 2017년 8월 착공해 3년만인 지난해 6월 완공했다. 팬데믹으로 완공식을 1년 연기하고도 끝내 열지 못했지만 부도칸의 개관은 리틀도쿄에 역사적인 사건이다. 부도칸은 리틀도쿄가 197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반세기 숙원사업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도쿄의 대형 경기장이자 공연장인 '닛폰부도칸'을 LA에 옮겨 짓자는 의도였다. 계획은 좋았지만 예산은 부족했고 부지도 없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의 공감대를 얻지 못해 중단됐다. 그러던 2011년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LA시정부 소유 주차장이었던 현재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받으면서 프로젝트는 되살아났다. 여기까지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현재 LA한인타운에 추진되고 있는 한미박물관과 무척이나 닮았다. 한미박물관도 30년 된 숙원사업이다. 부지도 부도칸처럼 시정부 소유 주차장(6가와 버몬트 애비뉴)을 거의 무상 임대받았다. 3200만 달러인 건축 예산도 부도칸과 비슷하다. 여러모로 닮은 두 숙원사업을 놓고 리틀도쿄는 꿈을 현실화했지만 우린 아직 착공조차 못했다. 차이점을 꼬집으려 한다. 먼저 부도칸은 커뮤니티의 미래 존속에 초점을 둔 큰 그림의 산물이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리틀도쿄는 2011년 탈출구를 찾기 위해 범커뮤니티 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리고 3년간 커뮤니티 전체 의견을 수렴해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100년 앞을 내다본 커뮤니티 부활 프로젝트인 '지속가능한 리틀도쿄(Sustainable Little TokyoㆍSLT)'가 그 이름이다. SLT의 핵심 사업이 부도칸 건립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부도칸은 '함께' 지었다. 복지 비영리단체 리틀도쿄서비스센터(LTSC)가 주도한 SLT협의체에는 일미상공회의소 일미문화커뮤니티센터(JACCC) 일미박물관 등 30여 개 일본계 대표단체를 비롯해 사찰과 교회 등 종교기관 식당 동네빵집 커피점 마켓까지 참여했다. "자식들이 맘껏 뛸 수 있는 공간 하나 남겨주지 못해 되겠는가"는 호소는 공감대를 얻었다. 부도칸 건립에 남은 숙제였던 3500만달러 예산 마련에 모두가 뛰었다. 재력가들도 앞다퉈 기부했다. 부도칸의 정식 명칭은 '테라사키 부도칸'이다. 장기 조직 유형 검사법을 발명한 고 폴 테라사키 전 UCLA 교수 가족이 350만달러 거액을 기부해 그 이름을 붙였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힘을 보탰다. 초등학생들이 볼링 토너먼트를 열어 9000달러를 모아 전달했다. 노인아파트에 50년 넘게 살다가 본국으로 귀국한 할머니는 한 푼 두 푼 모았던 장롱속 1000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주LA일본총영사관도 관저 만찬 행사를 열어 적극 지원했다. 부도칸은 우리에게 빠진 그 중요한 조각들을 홈페이지 머리글에 얄밉도록 분명하게 적었다. '테라사키 부도칸' 이름 뒤에 굳이 넣은 짧은 문장 하나는 이렇다. 'a community-driven project'. 커뮤니티가 주도한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Korean American Museum'의 홈페이지 머리글 뒤에는 어떤 문장이 적힐지 궁금하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박물관의 행보만 본다면 머리글에 '커뮤니티 주도'를 넣을 수 없다. 소수의 이사들만 모여 설계안을 6차례나 주물렀다. 그동안 한차례도 공청회를 열지 않았고 운영 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다. 수차례 지적에도 문은 꽁꽁 닫혀있다. 커뮤니티는 박물관을 모른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email protected]

2021.09.14. 19:00

[스토리 In] 짬짜미와 생존전략

값은 싸지 않았다. LA한인타운 내 한 이사업체는 7월1일부터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이전에 작업자 3명을 부르면 시간당 120달러였는데 이젠 150달러를 달라고 했다. 30달러만 더 주면 되는 게 아니다. 이사를 1시간 만에 마쳐도 무조건 3시간 요금을 내야 한다. ‘기본요금’이란다. 그러니 소비자 입장에선 실제로 30달러가 아니라 최소 90달러가 오른 셈이다. 다른 2~3개 업체에 문의했다. 더 저렴한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 가격이 똑같았다. 왜 가격이 다 같으냐고 한 업주에게 물었더니 조심스럽게 “협회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으면서 물음표가 솟아났다. 이삿짐 협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거니와 ‘이래도 되나’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장 ‘가격 담합’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랐다. 동종 업체들이 이익을 높이면서 소비자는 잃지 않으려 사용하는 수법이다. 속칭 ‘짬짜미’라고도 하는데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남들 모르게 일부 기관, 조직, 기업이 자기들끼리 하는 부정적인 약속’. 문장에서 핵심 단어는 ‘부정적인’이다. 이삿짐 업체의 약속이 부정적인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먼저 그 ‘약속을 한 업체들’이 궁금했다. LA한인타운에서 30년 이상 운영해 왔다는 한 업체에 문의했다. 업주는 친절했다. 이삿짐 협회가 있느냐고 했더니 정식 협회가 있진 않다고 했다. 다만 몇몇 큰 업체들이 서로 연락해서 가격을 함께 올리기로 한 건 맞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타인종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인 업체의 생존전략이라고도 했다. 그가 설명한 가격 인상 이유를 요점만 정리하면 이렇다. ①7월1일부터 최저임금이 15달러로 올랐다 ②개스비도 작년보다 갤런당 1달러 이상 올랐다. 워컴, 자동차 보험료도 올랐다 ④그동안 없던 정부 수수료가 새로 생겼다. 특히 인건비와 관련해 업주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삿짐 업계에서는 최저임금보다 시급을 더 줘야 한다고 했다. 15달러로 오르면 20달러는 줘야 작업자들을 고용할 수 있단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설명을 종합하면 업체 운영비가 작년보다 25~30% 정도 더 많이 들고 직원 구하기도 어려우니 비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함께 가격을 올리기로 한 것은 한 업체만 올리면 서로 제살 뜯어먹기 경쟁이 될 것이 뻔하니 상생하자는 약속이었다고 했다. 쭉 듣고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이사업체만 가격을 올린 게 아니다. 지금 LA한인타운에서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설렁탕 한 그릇 사먹기가 겁난다. 최근 몇년 사이 갑자기 올라 16달러대다. 가격 인상의 이유는 업종과 상관없이 대동소이하다. ‘인건비, 재료비, 개스비 등등 다 올랐으니 땅 파서 장사하는것도 아니고….’ 소비자들도 다들 뉴스를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업주들이 이해 못하는 게 있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라 가격의 인상폭이 불편하다. 30여년간 장사해온 타운의 유명 설렁탕 전문점을 예로 들자. 이 식당의 설렁탕 가격은 5년 전 8.99달러에서 현재 15.50달러다. 7달러가 올랐으니 5년만에 72%가 뛴 셈이다. 그나마 설렁탕은 값싼 설렁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삿짐 업체는 소비자들에게 더 무리한 걸 요구하고 있다. 비록 담합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라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선택을 잃어버렸다. 비용이 저렴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가격이 모두 같아서다. 어디에 문의해도 똑같은 비용이라면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존재할 수 없다. 인터뷰했던 업주는 “그래도 이 정도면 싼 편입니다”고 했다. 싸다는 말은 상대 비교할 때나 의미가 있다. 값은 싸지 않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email protected]

2021.08.08. 19:00

[스토리 In] 찜질방에서 부딪친 두 개의 권리

권리는 ‘해도 되는 행위’다. 법률상 정의를 쉽게 풀어쓰면 그렇다고들 한다. 사전적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봤다. 내가 A라는 행위를 해도 된다는 것은 남이 간섭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간섭해선 안 되는 것들이 권리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유롭게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권리(자유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평등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에 요구하는 권리(사회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참정권) 등이 그 종류다. 이 중 ‘평등권’이 최근 한인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렀다. 평등의 시험대는 LA한인타운 찜질방이었다. 논란은 ‘위 스파(Wi Spa)’라는 업소가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는 남성의 여탕 출입을 허용했다면서 한 여성 고객이 거세게 항의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여성은 동영상에서 이렇게 외쳤다. “남성이 여성 전용 구역에 들어와도 괜찮다는 겁니까? 아직 어린 여자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앞에서 성기를 다 드러내도 괜찮다는 겁니까? 위 스파는 그걸 허용한다는 겁니까?” 영상은 순식간에 온라인으로 확산했고, 급기야 1주일 뒤 찬반 시위대가 업소 앞에서 충돌해 유혈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를 주류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하면서 전국적 이슈가 됐다. 그 후 언론들은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LA타임스 역시 지난 6일 이 논란과 관련해 사설을 게재했다. ‘트랜스젠더 고객들도 다른 모든 고객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제목이다. 성소수자들의 스파 출입 권리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글의 일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누구도 절대적 편안함을 누릴 권리는 없다. 스파 안에서도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완벽한 편안함은 보장되진 않는다. 그러니 (만약 편안하길 원한다면) 신체를 가리도록 한 규정을 둔 스파 업소를 찾아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누구나 어디에든 환영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편하든 불편하든 말이다.” 누구에게나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쓴이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보호해야 할 주체가 빠졌다. 이 경우엔 찜질방에 있던 아이들이다.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아이들에겐 위협이 될 수 있다. 세상 어떤 부모가 알몸의 남성이 성기를 드러내고 다니는 곳에 어린 딸을 데리고 가겠는가. 더군다나 트랜스젠더가 맞는지 여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만에 하나 소아성애자가 트랜스젠더를 가장해 여탕에 출입한다면 상상조차 끔찍하다. 위 스파를 이용한 한 여성 고객이 지난해 남긴 이용 후기는 아찔하다. 이 여성 역시 여탕 안에서 트랜스젠더가 성기를 드러내고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순간 불편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경악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문제의 트랜스젠더가 함께 온 친구에게 자랑삼아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다. 스스로 여자라고 주장해 여탕에 들어온 이 트랜스젠더는 본인이 지금까지 100명도 넘는 여자와 성관계를 했고, 성관계 중 긴장을 풀기 위해 코카인이나 LSD 같은 마약을 종종 한다면서 낄낄거렸다고 한다. 이 여성은 “내 상식으로 그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변태’였다”면서 “업소가 남자임이 분명한 트랜스젠더의 여탕 출입을 막을 수 없다면 여성 고객들은 이 업소를 갈 수가 없다. 여성들을 보호해달라”고 했다. 권리가 충돌할 때 해결 방법 중 하나가 ‘보다 중요한’ 혹은 ‘우월한 이익’을 보장하고 덜 중요한 이익은 유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찜질방 사건에서 ‘보다 중요한’ 이익의 주체는 절대적 약자인 아이들이다. 트랜스젠더도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소수이지만 아이들과 비교할 때 약자가 될 수 없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건 법 이전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윤리적 의무다. 의무의 법률적 정의를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고 한다. 의무는 ‘해야만 하는 행위’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1.07.11. 19:00

[스토리 In]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1년 전 칼럼의 마지막 문장을 느낌표로 대신했다. 느낌표는 역사상 가장 짧은 편지다. 1862년 소설 ‘레미제라블’을 탈고한 빅토르 위고가 독자들의 반응을 궁금해 하자 출판업자가 보낸 초단문의 답장이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을 느낌표로 끝맺은 이유는 미주중앙일보 이메일 뉴스레터인 ‘똑개비뉴스’ 1호 발송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뉴스레터를 읽고 속시원한 느낌표를 얻길 기대했다. 마치 ‘똑똑한 개인 비서(똑개비)’처럼 어렵고 복잡한 정치 현안부터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알찬 정보까지 친절히 설명하자는 것이 뉴스레터의 의도였다. 지난해 7월28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1호를 내보낸 똑개비뉴스가 다음달 8일이면 100호를 맞는다. 또, 다음달 28일엔 첫 돌을 앞두고 있다. 똑개비뉴스의 지난 1년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언프레시덴티드(unprecedented)’가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말 그대로 ‘전례 없는, 사상 초유의’ 시간이어서다. 아무도 경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일상에서 질문들을 넘쳐났다. 백신은, 영업제한은, 지원금은…. 어려운 답들을 친절히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뉴스레터는 유례없는 이념대립의 시대도 통과했다. 지난해 11월 대선의 맥을 짚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현실에선 초대할 수 없는 두 대선 후보의 토론을 가상썰전으로 꾸며 한인 유권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인정하던, 하지 않던 결과는 똑개비뉴스가 예측했던 대로였다. 양념처럼 넣었던 유튜버 소개 코너 ‘꿈튜버’도 뉴스레터 사상 첫 시도였다. 수천만 달러를 버는 유튜브 스타부터 미국 고등학교의 일상을 전하는 고교생까지 다양한 연령, 직업, 지역의 한인·비한인 40명을 뉴스레터에 담았다. 사실 이 코너의 목적은 유튜브 홍보가 아니라 사람을 소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짧지 않은 언론사 재직기간 배운 교훈 중 하나가 ‘사람 이야기는 배신하지 않는다’였다. 코로나19로 갇힌 일상에 사람 냄새를 전달하고 싶었다. 의도는 어느 정도 통한 듯 싶다. 이젠 전국 각지에서 본인을 소개해달라는 한인 유튜버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두줄뉴스와 톱10뉴스 코너는 “기사 읽을 틈도 없다”는 독자들을 위해 주요 뉴스만 짧게 요약해 전달했다. 뉴스레터는 내용뿐만 아니라 반응도 유례 없었다. 독자들은 수많은 느낌표를 보내왔다. 공간적 제약에 종이신문으로 전달하지 못했던 사각지대의 소식들을 원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어려운 뉴스 쉽게 요약해주셔서 감사하다’, ‘간지러운 등을 긁어줬다’, ‘바른뉴스 고맙다’, ‘이메일을 받고 지우지 않길 아주 잘했다’ 등 격려의 이메일이 수백 통이다. 독자들의 느낌표엔 신랄한 비판도 있었다. ‘한심한 X, 니가 기자냐?’,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니 가짜뉴스, 앞으로 조심해라’, ‘두뇌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시나?’, ‘재수 없다’ 등의 이메일은 뉴스레터 제작에 채찍질이 됐다. 칭찬이나 꾸중이나 똑같이 소중했다. 귀담아 들어야만 지난 호보다 다음 호가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뉴스레터를 받아보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 심층 분석과 요약, 사람 이야기까지 한통에 담은 이메일 뉴스레터는 최소한 미주지역에선 똑개비뉴스가 유일하다. 무료로 누구나 받아볼 수 있다. 홈페이지(ttalk.koreadaily.com)에 접속해 맨 위의 ‘무료 구독신청’ 링크를 누르고 빈 칸에 본인 이메일 주소만 넣으면 된다. 똑개비뉴스의 첫 생일을 앞두고 또 다른 1년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서다. 뉴스레터의 최종 목표는 1호 제목으로 정했었다. ‘250만 미주한인들이 똑개비뉴스를 아는 날까지’였다. 돌이 되었으니 이젠 걸음마를 떼고 보폭을 넓혀 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좀 더 빨리 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걸음이 바빠지더라도 똑개비뉴스에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있다. 애초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다. 똑개비뉴스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먹고 자란다. 빅토르 위고가 출판업자에게 보낸 초단문의 편지와 같다. 1년 전 칼럼의 첫 문장으로 대신한다. ‘?’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email protected]

2021.06.08. 19:00

[스토리 In] 귀신을 만드는 사람들

귀신이 보인다. 연방의회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 증거라는 사진이 페이스북에 나돌았다. 언뜻 보면 오싹하다. 로이터 통신 기자가 찍은 사진은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 장면이다. 대통령 등 뒤에서 대통령의 시선이 향한 앞쪽을 찍었다. 좌석에 앉은 의원들맨 뒤 출입문 바로 앞에 이상한 검은색 물체가 서있다. 마치 검은 망사를 쓰고 검은 치마를 입은 귀신처럼 보인다. 키도 족히 6피트는 넘어 보인다.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자칭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뒤따르자 ‘귀신’은 폭풍 공유되기 시작했다. 댓글도 폭주했다. 상당수 글들은 현 정부를 못마땅해 여기는 이들이 썼다. ‘바이든 정부 의회를 악마들이 점령하고 있는 증거’, ‘악마의 딸이 바이든을 지지하려 출현했다’는 괴담까지 나왔다. 이쯤 되니 주류 언론들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USA투데이, 로이터, AP 등이 귀신의 정체를 취재했다. 알고 보니 귀신이라던 물체는 방송용 카메라였다. 대통령의 정면 샷을 찍는 CSPAN의 카메라였는데 최대한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검은 천을 카메라 위에 씌운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귀신이 아니라는 증거로 2018년과 지난해 트럼프 의회연설 당시 비슷한 구도에 찍힌 방송카메라 사진을 공개했다. 귀신 소동의 백미는 그 다음부터다. 악마가 없었다는데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또 거대 언론들이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음모론이 귀신처럼 떠돌았다. 진짜뉴스보다 차라리 가짜뉴스를 믿겠다는 불신의 근거는 학습 효과다. 언론들이 때로 사실만 짜깁기해도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귀신 소동이 벌어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관련 기사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연설엔 일자리·교육·복지에 이르는 약 4조 달러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이 담겼다. 그래서 ‘미국이 다시 일어선다’는 기사 제목들이 다수였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일터다. 그런데 이 연설의 반향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날 연설을 2690만명이 지켜봤다고 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을 지켜본 4770만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했으나 국민의 관심도는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날 의회 연설은 취임 100일에 맞춰 바로 전날 이뤄졌다. 언론들은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비교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그중 한 언론은 취임 100일간 공식 발언 중에서 사실이 아닌 말들을 분석했더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려 7배나 많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숱한 명언(?)들을 남겼다. 코로나19 치료 일환으로 살균제를 인체에 주사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해 뭇매를 맞았고, 재선 승리를 도둑맞았다면서 지지자들의 의사당 행진을 부추겼다. 그런데 ‘7배나 많다’는 말에 감춰진 진실이 있다. 바이든도 사실이 아닌 발언을 67차례나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취임한 1월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성인들을 접종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백신 매입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발언은 거짓이다. 트럼프 재직 당시 정부는 이미 10억 도스 분량의 백신 접종 계약을 체결했다. 거짓을 말한 사람에게 손가락이 향하면서 또 다른 거짓말은 가려진 셈이다. 사실을 사실로 가린 왜곡 보도에 대한 반발이 가짜뉴스의 생산 동력이다. 의사당의 귀신도 차라리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이들이 만든 가짜다. 귀신이 실제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날 그 자리에 반드시 귀신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보기 싫은 대통령을 귀신과 묶어 욕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귀신을 만드는 데 귀신인 사람들이다. 귀신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1.05.09. 19:00

[스토리 In] 총격과 투표, 두 개의 작은 공

총은 전쟁이다. 영어 단어(gun)의 어원이 그렇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군힐드(Gunnhildr)’에서 유래됐다. 군힐드는 전쟁을 뜻하는 두 단어 ‘gunnr’와 ‘hildr’의 합성어다. 원래는 성벽 투석기의 이름이었는데 중세에 ‘gonne’, ‘gunne’로 변형됐고 지금의 ‘gun’으로 짧아졌다. 총은 피를 부른다. 미국은 그 총 때문에 일상이 참사 현장이다. 지난달 16일 애틀랜타에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고, 불과 엿새 뒤인 22일 콜로라도주 마켓에서는 10명이 희생됐다. 또 31일 오렌지카운티 한 사무실 건물에서는 4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중엔 9세 소년도 있다. 언론들이 이번이 3번째 총기난사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많다. 총격사건 데이터베이스(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올해 4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한 총격 사건은 21건이다. 당연히 민주당 의원들은 또 총기 규제를 역설하고 나섰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걸 알기 때문에 일단 내뱉고 보는 말일지도 모른다. 전미총기협회(NRA)라는 공룡 단체와 여야가 반반 나뉜 의회의 정치공학적 구조, 무엇보다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한 권리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가깝다. 그나마 민주당 의원들은 말 뿐이라도 할 말은 하니 나은 편이다.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탄에 희생되는데도 공화당은 엉뚱한 곳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표권 제한법안이다. 공화 의원들 주도로 47개 주의회에서 361개의 선거 제한법안이 발의됐다. 법안 중 4분의 1이 투표시 신분확인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다. 유권자 등록도 까다롭게 했다. 법은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제가 됐던 선거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성의 10분의 1만이라도 총기 규제에 동참한다면 총기 규제는 현실화 될 수 있다. 사람 목숨보다 선거제한이 우선 순위는 아니지 않은가. 워싱턴포스트가 총과 선거를 주제로 지난 22일 충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은 분석기사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당신이 거주하는 주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울까. 총을 사는 것과 투표하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정답은 대부분의 주에서 총을 사는 것이 더 쉽다. 신문은 총기를 실제 내 손에 넣기까지 시간과 투표 대기시간을 비교했다. 전국 3분의 2에 해당하는 34개주와 워싱턴 DC 지역에서 투표 대기시간이 총기 구입시간보다 길었다. 반대로 투표가 총기 구입보다 쉬운 곳은 일리노이, 미네소타, 워싱턴 등 단 3개 주에 불과했다. 나머지 13개 주에서는 양쪽 대기시간이 비슷했다. 선거와 총기 구입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특정일에 치러지는 선거는 수많은 인력이 여러 과정을 준비해야 하지만 총기 구입은 상품을 파는 행위일 뿐이라서다. 하지만 총과 선거는 근원을 파보면 비교 불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총을 의미있게 하는 총탄과 선거를 의미있게 만드는 투표는 공교롭게도 둘 다 어원이 ‘작은 공’이다. 총탄(bullet)은 중세 프랑스어 ‘작은 공(boulle)’에서 나왔고 투표(ballot)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무기명 투표시 사용한 ‘작은 공(pallotte)’에서 비롯됐다. 지난 선거에서 우린 작은 공을 사용했다. 선거라는 도구에 투표라는 작은 공을 넣고 방아쇠를 당긴 결과가 현재다. 어쩌면 내 한 표 때문에 총기 규제를 못하고 어쩌면 내 한 표 때문에 9살 짜리 소년이 숨졌는지도 모른다. 만약 총기 규제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본인이 뽑은 정치인의 입장을 찾아보기 바란다. 진영의 논리에 갇혀서, 혹은 맹목적으로 한 사람을 추종하다가 덮어놓고 작은 공을 쏜 건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진짜 전쟁은 투표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1.04.04. 19:00

[스토리 In] 별무늬와 민무늬

‘그래봤자 배에 그려진 작은 별무늬 하나일 뿐이다.’ 유명 동화작가 ‘닥터 수스(Dr. Seuss)’의 ‘더 스니치스(The Sneetches)’라는 동화를 압축한 문구다. 차별을 반대하는 풍자 동화인데 내용은 이렇다. 스니치는 오리를 닮은 노란색 동물이다. 일부의 스니치들만 배에 작은 녹색 별이 있는데 이들은 별무늬가 없는 스니치들을 오랫동안 차별했다. 어느 날 한 장사꾼이 나타나 별을 그려주는 장사를 한다. 3달러면 별무늬 스니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민무늬의 스니치들이 너도 나도 배에 별을 그린다. 그러자 별무늬 스니치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한다. 다시 장사꾼은 이번에 별을 지워주는 장사를 한다. 별을 없애는 비용은 10달러로 좀 비싸다. 하지만 별무늬 스니치들은 별을 지우는데 줄을 선다. 결국 애초에 누가 별이 있었고 없었는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스니치들은 별무늬, 민무늬 할 것 없이 다 빈털터리가 되고 장사꾼만 부자가 된다. 1961년 출판된 이 책은 ‘겉모습이 달라도 누구나 평등하다’는 교훈을 심어주는 교재로 60년째 사용되고 있다. 본명이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인 닥터 수스는 여러 작품에서 교훈적 메시지를 담아왔다. 동화 ‘호튼’의 ‘생명체는 아무리 작아도 생명체’라는 문구는 낙태반대 운동가들의 모토로 쓰였다. 또 ‘로렉스’는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닥터 수스는 20년 전 사망했지만 그의 생일인 3월2일이 미국의 ‘책 읽는 날(Read Across America Day)’로 지정될 만큼 영향력은 아직도 크다. 그런 닥터 수스의 책이 최근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첫번째 작품인 1937년의 ‘그리고 멀베리가에서 그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And to Think That I Saw It on Mulberry Street)’를 비롯해 6개 작품에 등장하는 아시안이나 흑인 캐릭터가 인종차별적인 시각으로 그려졌다는 이유에서다. 논란이 거세지자 닥터 수스 엔터프라이스 측은 80년 넘게 사랑받아온 해당 책들의 출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종차별 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LA, 뉴욕에서 한인들이 그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길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정류장에 서있다가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한인사회도 당연히 분개했다. 당국에 범인을 찾으라고 압박하고 한인 정치인들이 나서야 한다며 등을 떠밀기도 했다. 차별에 맞서 일어서는 것은 소수계로서 최소한의 방패다. 그런데,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가 차별의 가해자가 된 적은 없었는지다. 안타깝게도 증거들은 일상에 널려있다. 타민족 비하 용어는 우리가 그들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 수준이다. 같은 아시안인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하고 중국인들은 떼놈이라고 욕한다. 히스패닉은 멕작, 흑인은 깜둥이, 백인은 양놈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우릴 ‘칭총(Ching Chong)’이라고 깔보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한인끼리도 차별한다. A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타대학 출신을 업신여기고, A지역 사투리를 쓰면 덮어놓고 신뢰하지 않는다. 차별은 비뚤어진 우월의식에서 나온다. 내가 더 잘났고, 더 가졌다고, 더 반듯하다고 믿는다. 혹시 차별에 맞서는데 힘을 보태고 싶은 한인들이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거창한 캠페인에 동참하기 전에 혹시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근거없는 우월감부터 없애면 어떨까 싶다. 그래봤자 배 위에 그려진 별 하나일 뿐이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email protected]

2021.03.07. 19:00

[스토리In] 음모론보다 위험한 199표

“보수가 몰락하고 있다.” 5일 의사당 앞에서 초선의 여성 의원은 본인의 추락은 보수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전날 2개 상임위원회에서 쫓겨난 그녀는 자신의 축출에 찬성표를 던진 친정 공화당 하원의원 11명을 ‘배신자’라고도 불렀다. 그중에는 지난 11월 선거에서 하원에 첫 입성한 한인 영 김 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보수의 가치를 개탄한 그녀는 조지아주 14지구 연방하원의원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46)이다. 그녀가 상임위 직책을 박탈당한 이유는 과거의 그녀가 한 말과 SNS에 공유한 글들 때문이다. 그녀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충돌한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 혹은 다른 발사체라며 9·11 음모론을 부추겼다. 또 2018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한 고교에서 17명이 희생된 총기 난사 사건은 총기규제를 위해 의도된 위장 작전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유대인들이 쏘아올린 위성에서 발사한 레이저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지난 2019년 그가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조치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것이 빠를 것”이라는 글에 ‘좋아요’를 눌러 공유했다. 이런 상식 밖의 말과 행동은 그녀가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넌(QAnon)’의 신봉자라는데서 기인한다. 큐어넌은 ‘악마 같은 아동성애자들인 민주당 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원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연히 그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다. 그녀는 비록 민주당 하원의원 219명 전원의 찬성과 공화당 하원의원 11명의 찬성으로 상임위에서 쫓겨났지만, 표결 전날 비공개 공화당 모임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했는데 상당수 공화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처럼 징계 대상에 오른 또 다른 공화당 의원이 있다. 네브래스카주의 벤 새스 연방상원의원이다. 공화당위원회는 그의 불신임안을 추진 중이다. 13일 투표한다. 의원직을 박탈당하진 않지만 사실상 당이 그를 버렸다는 뜻이다. 불신임 대상이 된 이유는 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날 불신임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주공화당위원회가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원칙을 위반했거나 보수정치를 버려서가 아니다. 그들의 분노는 내가 단 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1인 숭배가 아니다. 물론 당은 나같은 트럼프 비판론자들을 숙청할 수 있지만 이같은 행위는 ‘국가의 암(civic cancer for the nation)’이다.” 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공화당 의원이 있다. 상원의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다. 그는 상임위에서 쫓겨난 그린 의원을 놓고 “정신나간 거짓말과 음모론”이라며 “공화당의 암(cancer for the party)”라고 했다. 공화당의 두 상원의원이 내 식구들을 향해 ‘암’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한 것은 양보할 수 없는 보수의 가치 때문이다. 보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질서, 규정, 예의, 전통적 기준을 소중히 여긴다. 또 본능적으로 극단주의를 배척하고 원칙을 따르며 본인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진다. 결정해야 할 순간엔 감정보다는 냉정한 이성을 중시한다. 산불의 원인이 인공위성에서 쏜 레이저 때문이라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땅의 사탄을 몰아내기 위해 보내진 구원자라거나, 동료의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겠다거나, 3000여 명이 숨진 비극적인 테러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주장은 보수의 그 어떤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의 보수에 더 위험한 존재는 그런 그린을 옹호하는 세력들이다. 놀랍게도 그린의 수호천사들은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199명이었다. 그 ‘정신나간 거짓말’을 한 그린을 보호하기 위해 상임위 축출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공화의원들의 숫자다. 그린 의원이 말한 상식 밖의 주장 중 최소한 한가지는 사실로 보인다. 보수는 죽어가고 있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email protected]

2021.02.07. 19:00

[스토리In] 시위 현장서 무너진 ‘글로리아’

'글로리아'다. 로라 브래니건이 1982년 불러 히트시킨 노래다. 80년대를 대표하는 클럽 댄스곡이다. 경쾌한 박자에 저절로 몸을 흔들게 된다. 노래는 누군가 셀폰으로 찍은 동영상 속에서 크게 틀어져 있다. 현장은 하얀색 대형천막 내부다. 흡사 야외파티장 분위기로 떠들썩하다. 영상을 찍던 남자가 한 여성을 비추며 이름을 부른다. “킴벌리~.” 여성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한동안 여성을 찍던 카메라는 천막 안 정경을 비춘다. 정장을 입은 남녀들이 앞쪽 대형 TV 3대에서 생중계된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그중 낯익은 사람이 보인다. 대통령이다. 그리곤 영상을 찍던 본인을 비춘다. 대통령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다. 춤을 추던 여성은 그의 여자친구 킴벌리 길포일이다. 트럼프 주니어가 입을 연다. “개봉박두다. 지켜봐 달라. 생중계하겠다. 대단할 것.” 2분짜리 동영상은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촬영 날짜와 장소를 알고 나면 충격적이다. 영상은 연방의사당이 유린당한 6일 찍었다. 장소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운집한 워싱턴 DC 엘립스공원 시위현장이다. 트럼프 주니어의 동영상을 지켜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의사당이 폭도들에게 점거당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동안 트럼프 가족은 난동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축하파티를 열고 있었다”고 분노했다. 댓글들은 온통 날이 서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난동 교사죄로 기소하라”, “내란(insurrection)의 증거” “이들은 사교 집단” 등등 험한 말들이 폭주했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댓글로 반박했다. 가짜뉴스라고 한다. 영상은 폭동 발생 전에 시위 현장에서 찍었다고 했다. 폭동을 지켜보며 즐긴 파티가 아니라는 변명이다. 폭동이 발생하리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대통령 편을 들었다. 이들은 또 다른 음모론도 제기했다. 이날 난동이 벌어진 이유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의사당 경찰이 시위대에게 의사당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극좌단체 ‘안티파’ 회원들이 트럼프 지지자로 위장해 시위를 격화시켰다고도 한다. 이들은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들은 믿으면서 상식적인 사실들엔 눈을 감고 있다. 대통령의 책임이다. 먼저 이날 대통령이 시위현장에 간 것 자체가 잘못이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지지층만을 위한 행사에 참석한 명분을 얻으려 했다면 반대하는 인종차별 시위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다. 그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BLM’ 시위자들을 폭도라고 불렀다. 두 번째 잘못은 선동 연설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랬다. “우린 절대 대선 패배를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도둑질당한 대선을 누가 인정할 것인가. 우린 침묵하기 않을 것이다. 의사당으로 구국의 행진을 하자.” 대통령의 연설은 불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의 허락을 받은’ 수백 명이 의사당으로 진격했다. 총기와 창으로 무장한 채 의사당 벽을 타고, 유리창을 부수고 진격했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죽었다. 만약 연설에서 대통령이 ‘당신들의 아픔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 나라를 위해 승복해야 할 때다.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더라면 최악의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의 동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봤다. 볼수록 위화감이 느껴졌다. 노래 가사와 상황들이 뭔가 맞지 않아서다. ‘글로리아’는 사람 이름이다.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여자다. 남자 붙잡기에 집착하는 허영심 가득한 그녀에게 정신 차리라 충고하는 내용이다. 클라이맥스 가사는 이렇다. ‘글로리아, 네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Gloria, don’t you think you’re fallin?)’ 글로리아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 남자를 ‘국민’으로 바꿔보면 알기 쉽다. 지난 4년간 대통령이 보인 말과 행동들을 압축할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었다. 이젠 찾은듯하다. 글로리아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1.01.10. 19:00

[스토리 In] 거꾸로 걸린 성조기

국기는 거꾸로 섰다. 지난달 베터런스데이 즈음이다. 한 식당에 걸린 성조기는 위 아래가 뒤집혀있었다. 식당 주인은 필리핀계다.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알려줬다. 식당 주인은 일부러 그렇게 걸었다고 했다.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한 듯 답변은 각본 같았다. “나라가 위기다. 대선이 끝난 지 1주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당선인이 2명이다. 서로 대통령이라고 한다. 모두에게 정신차리라 경고하고 싶었다.” 성조기를 거꾸로 걸면 생명이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란다. SOS 신호다. 미국이 조난상태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거꾸로 걸린 성조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였다. 목숨 바쳐 지킨 국가의 가치가 뒤집혔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코끝 찡하게 해준 국기가 지난 4년간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됐다고 개탄스러워했다. 그가 말하고 싶어했던 특정 집단은 MAGA다. ‘Make Great America Again’의 약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다. 유세현장에서 성조기는 MAGA가 적힌 빨간모자와 한 세트를 이뤘다. 때론 극우단체들과도 어울렸다. 출퇴근길 도로 위에선 부자연스럽게 크게 만들어진 성조기 스티커가 붙은 차들이 늘어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 반복됐고 어느 틈엔가 성조기는 대통령 지지자들의 표식으로 굳어졌다. ‘서로 다른 애국’이라 받아들이는 쪽도 있었다. 미국 역사에서 성조기가 정치적 상징으로 사용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 때 성조기는 참전 반대의 표식이었다. 1984년 대선 당시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반대한 그레고리 존슨이 성조기를 불태우면서 헌법 개정 움직임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른 애국들이 서로 총질까지 해대는 국가적 분열을 낳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징조는 대통령의 유세현장에서 발견됐다. 성조기 옆에 걸렸던 또 다른 깃발은 국기가 대통령의 깃발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깃발엔 ‘Don’t tread on Trump'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트럼프를 밟지 말라'는 뜻이다. 성조기를 밟으면 국가 모독인 것처럼 트럼프를 반대하면 애국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MAGA가 성조기를 흔드는 바람이 거셀수록 그 반대쪽에 선 사람들은 점점 성조기에서 멀어졌다. 트럼프 지지자로 오해받기 싫어서다. 일부 극진보주의자들은 트럼프 정권 아래에서는 성조기와 나치 깃발,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남부연합기가 같은 뜻이라고까지 폄훼하기도 했다. 사회학자들은 성조기의 의미가 트럼프 정권을 기준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UC샌디에이고의 존 에번스 사회학 교수는 “성조기가 정반대 의미로 해석되는 시대”라면서 “종전의 포용적 민주주의(inclusive democracy)의 상징과 현재의 배타적인 국수주의(exclusive nationalism)”라고 했다. '우리'로 묶어주던 깃발이 '그들'로 나누는 데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성조기에는 변하지 말아야 할 의미가 있다. 성조기는 한문으로 별 성(星), 가지 조(條), 깃발 기(旗)를 쓴다. 영어로는 'Stars and Stripes'이다. 별 50개와 줄 13개를 뜻한다. 현재의 50개 주와 독립선언 당시 식민지였던 13개 주다. 주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를 연방이라는 틀에 담은 것이 성조기다. 27번 모양이 바뀌긴 했지만 20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하나된 미국을 뜻했다. 특정 개인이 반드시 이끌어야만 하는 미국이 아니다. 대선 한달이 지났다. 이제 곧 새로운 4년이 시작된다. 조 바이든 당선인의 일부 지지자들은 대선 승리로 성조기가 본래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들 역시 MAGA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식당 앞 국기는 아직도 거꾸로다. 정구현 선임기자·부장 [email protected]

2020.12.05. 18:05

[스토리 In] 스무살 선거 자원봉사자의 ‘정치’

그는 스무살이라서 부끄러워했다. 3일 LA한인타운 투표소에서 만난 백인 대학생이다. 이름은 잭이라고 했다. 한인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단다. 앳된 얼굴의 그는 이번이 첫 대통령 선거 참여라고 했다. 이것저것 물었다. 어린 철학이 듣고 싶었고, 어른의 철학도 훈계하고 싶었다. 투표란 이런 거라는. 질문마다 그는 아직 잘 모른다고 수줍어했다. 쭈뼛쭈뼛 말을 이어가던 그가 안쓰러워 그만 놓아줬다. 10분 뒤, 투표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잭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 채 그를 잠시 지켜봤다. 가만 보니 그는 아까 만난 숫기없는 스무 살이 아니었다. 투표소는 한가했는데 그는 바빴다. OOO 후보를 지지한다는 푯말 앞에 혼자 서 있던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누군가 투표장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수줍음이라곤 없었다. “투표하러 오셨나요?”, “오늘 꼭 투표하세요.” 불과 10분새 수십명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직 오전시간인데도 ‘OOO 후보를 지지합니다’ 문구가 적힌 그의 티셔츠는 군데군데 땀으로 젖었다. 시동을 끄고 다시 다가갔다. 신념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고 말이었다. 스무살 어린 철학을 반드시 들어야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첫 문답부터 허를 찌른다. -상대후보의 단점은 뭔가. “전 상대후보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좋은 점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이것 봐라?’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기분은 좋다. 서로 원색적인 비난만 했던 이번 대선 TV토론에서 듣지 못한 지극히 상식적인 선거 캠페인이래서다. 문답은 계속된다.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이 무엇인데. “LA 토박이라서 LA를 가장 잘 알고요.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힘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입장을 잘 압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분 덕에 큰 도움을 받았어요.” -무슨 도움을 받았나. “그의 지역구에 살았던 덕에 미국 국무부에서 지원하는 한국어 무료수업의 기회를 얻었죠. 한국에 6개월간 가서 체류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과 미국을 잇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됐어요.” 그말을 하고는 한국어를 하기 시작했다. 한인타운 투표소에서 만난 백인 청년 자원봉사자가 말이다. 갈수록 놀라운 스무살이다. 투표소의 자원봉사자 25명 중 한인은 2명밖에 없다. 그중 한 명은 2세라 한국어가 다소 서툴다. 그와 우리말로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나. “누군지는 말할 수 없죠.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지는 말할 수 있어요. 정치인은 시민을 섬기는 사람이어야 해요. 스스로 왕이 되려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 동네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더 안전하게 해줘야 하죠. 더 많은 사람들이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서 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길 바라요.” -그래도 지지하는 후보를 말해줄 수 있나. “음…. 4년 전 대선이 끝나고 실망스럽고 무서워서 친구들과 엉엉 울었어요. 새 대통령이 제 불체자 친구들을 추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4년 뒤 선거에 꼭 투표하겠다고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제 바로 옆에 상대후보 지지 텐트가 있어요. 서로 지지하는 후보는 다르지만 자원봉사자들끼리 서로 존중합니다. 룰을 따르죠. 그런데 투표소에 온 어른들은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서로 욕해요. 또 룰도 지키지 않죠. 누가 당선되는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자부심 아닐까요.” 2020년 두 동강난 미국, LA한인타운 투표소 앞에서 만난 스무살 어린 신념은 어리지 않았다. 어른이라서 부끄러웠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11.03. 18:28

[스토리 In] “제발 그만 좀 싸우세요”

마지막 질문은 허를 찔렀다. “뉴스마다 온통 공화당과 민주당이 싸우는 이야기뿐입니다. 또 시민들끼리 싸우는 소식만 들립니다. 대선 토론에서도 두 후보 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기만 했죠.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7일 밤 유타에서 열린 부통령 후보 토론회의 승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카말라 해리스 후보도 아니었다. 5800만 명이 지켜본 이날 토론의 대미를 장식한 질문자였다. 사회자 수전 페이지는 유타주 스프링빌 주니어하이의 8학년생인 브레클린 브라운의 질문을 대신 읽었다. 부통령 토론에 앞서 유타주 대선토론위원회와 주교육위원회가 개최한 부통령 후보 토론회 질문 콘테스트에서 700명 중 1위로 뽑힌 질문이다. 이날 토론회 기획진의 의도와 선택이 무릎을 치게했던 순간이다. 소녀의 원초적 궁금증은 질문이라기보단 꾸짖음에 가깝다. ‘어른 노릇 제대로 하라’는 소녀의 충고는 두 후보뿐만 아니라 토론을 지켜본 어른 중 한 명으로 낯이 뜨겁기까지 했다. 소녀는 사이좋게 지내라는 표현을 ‘get along’이라고 썼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어른들이 밥 먹듯이 하는 잔소리를 거꾸로 어른들에게 던진 셈이다. 소녀의 질책은 계속된다. “지금 미국의 수도는 화합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나쁜 사례의 도시로 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어떤 쪽에 서있든 다들 자기 말을 들어주기만 바랄 뿐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이해하려하지 않습니다.” 백악관, 의회에 출입하는 어떤 기자들도 꺼내지 못한 냉정한 비판이다. 대통령의 실책만 지적하고 잘했다 칭찬하지 않는 언론도 문제지만 대통령의 실책은 지적하지 않고 잘했다 칭찬만 하는 언론도 문제다. 그 중간에서 국민은 진실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거나 믿고 싶은 것만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왜곡이고 호도다. 소녀는 해결책을 숙제와 함께 던졌다. “누군가 이런 말싸움과 분노의 악순환을 깨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가가 양분되는 것을 막는 책임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두 후보님들이 모범을 보이신다면 모든 불화가 화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보님들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들은 어떻게 나라를 화합하고 치유하실 수 있나요?” 앞서 85분간 다름을 놓고 싸웠던 두 후보는 아마 가슴 한켠에서 아차 싶었을지도 모른다. 서로 상대가 잘못하고 있다는 손가락질이 대부분이었던 탓이다. 민주당 후보는 현 정부의 코로나 대응 실책이라는 ‘과거’에 대한 지적에만 매달렸고, 현 정부의 넘버 2는 좌익으로 치우칠 수 있는 ‘미래’를 경고하기 바빴다. 무엇보다 러닝메이트로서 차기 대통령 후보가 ‘통 큰 지도자’임을 부각했어야 했다는 때늦은 후회도 들었을지 모른다. 이전 1차 토론 때 마치 유치원생들처럼 싸우던 두 대통령 후보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옳았을지 모른다. 또 국민을 어떻게 화합할 건지, 어떻게 '등따시고 배부르게' 할 건지, 국가적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건지 말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들었을지 모른다. 소녀의 질문은 보수와 진보, 백인과 유색인종, 기득권과 소외계층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우린 원래 하나의 국민이라는 따끔한 충고였다. 두 후보가 이번 토론에서 얻어야 할 것은 ‘내가 더 잘했다’는 평가가 아니다. 공화, 민주 이전에 국민을 위한 정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본질적 고민이다. 소녀의 물음에 대한 두 후보의 대답에는 안타깝게도 그 고민이 담겨있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선거가 끝나면 우린 미국 국민으로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 답변은 허상처럼 들렸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10.12. 12:30

[스토리 In ] ‘똑개비뉴스’ 6주 분투기

“뉴스가 뭘까요?” 지난 노동절 연휴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러 간 길이었다. 그 목적지에서 만나기 어려운 질문을 마주했다. 대화에서 상대방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20년 신문사 밥을 먹었으니 잘 안다했던 자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뉴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마치 밥은 무엇이냐, 인간은 무엇이냐는 말로 들렸다. 본질(What)을 파악해야 하는 ‘사유’를 글쓰기 수단(How)으로만 삼았던 한계다. 다행히 최근 맡은 새 업무가 ‘뉴스=X’의 공식을 푸는데 다소 도움이 됐다. 지난 7월28일 똑개비(똑똑한 개인비서)라는 이름으로 중앙일보 이메일 뉴스레터를 출간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다. 그간 편지 쓰듯 매주 2회씩 13차례 독자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냈다. 고백하자면 13통의 편지를 쓰는 동안 매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앞서 만든 이가 없었으니 뭐든 처음이었던 탓이다. 벤치마킹이 필요했다. 액시오스(Axios), 애틀랜틱,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의 뉴스레터를 찬찬히 뜯어봤다. 그들은 벌써 저멀리 진화해가고 있었다. 특히 액시오스는 보면 볼수록 탐난다. 분야별로 21개의 뉴스레터를 만드는데 기사 자체가 뉴스레터에 최적화되어 있다. 오전 출근시간에 맞춰 오늘의 가장 중요한 뉴스 10건을 정리한 액시오스 AM, 하루를 마무리하는 오후에 그날 뉴스를 정리한 액시오스 PM만 읽으면 다른 매체를 굳이 볼 필요가 없다. 성공한 뉴스레터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엄청난 착각을 해왔다는 자책이다. 뉴스레터에 비해 기존 매체들의 기사 전달방식은 차라리 강요에 가깝다. 독자를 위해 쓰는 기사인데, 기자 본인들에게 편한 방식으로 작성하고 있다. 액시오스의 홈페이지(axios.com)는 기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뉴스레터로 발송한 기사들을 순서대로 올려놓는데, 각 기사는 제목 아래 보통 두 개 문단만 넣는다. 주제의 개요를 설명하고 왜 해당 이슈가 문제 되는지(Why it matters)만 적는다. 그리고는 맨 아래 ‘더 보기(Go deeper)’ 링크를 넣고는 끝이다. 관심있는 독자만 더 읽으라는 뜻이다. 기존매체들은 ‘기사의 주제’도 강요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를 언론사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해 줄줄이 늘어놓기 바쁘다. 뉴스레터를 만들면서 쉽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어떤 이슈건 독자를 이해시키려면 쓰는 기자가 먼저 100% 알아야 한다. 모르는 내용은 빼고, 아는 내용만 부풀리는 편법은 신뢰성을 떨어트린다. 기사 전개방식도 불편하다. 액시오스의 뉴스레터는 서론, 본론, 결론의 전형적인 기사 틀을 버렸다. 대신 글을 문답형식으로 단락단락 쪼개 독자들이 보기 쉽도록 배열했다. 미사여구보다 팩트 전달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뉴스레터의 성공 분모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뉴스는 쉽고 친절해야 한다. 똑개비뉴스도 철저히 그 원칙에 따라 제작해왔다. 한 가지 더 원칙이 있다. 독자들의 의견 청취다. 기사 주제가 어땠는지, 방식은 좋았는지 등등 귀찮게 물었다.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독특하다, 참신하다, 어색하다, 읽기 쉽다, 더 쉽게 설명해 달라, 한쪽으로 치우쳤다, 균형잡힌 보도였다 등 서로 달랐다. 하지만 뉴스레터에는 자양분이 됐다. 대표적인 의견이 ‘친절한 설명도 좋지만, 다양한 뉴스도 접하고 싶다’는 제안이다. 그래서 두줄뉴스라는 코너를 만들었고, 뉴스의 분량도 늘렸다. 7월28일 1호 뉴스레터보다 13호는 기사량이 3.5배 늘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똑개비뉴스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독자 입장에서 한 가지 질문만 붙잡고 고민하면 된다. 뉴스는 무엇일까라는.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09.09. 18:34

[스토리 In] 사랑의 마스크, 정치의 마스크

“아들아, 마스크 꼭 쓰고 다녀라.” 어느 추운 겨울, 흰 천 마스크를 씌워주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감기 걸린 어린 아들이 등굣길 칼바람을 덜 맞기 바라셨다. 다른 아이들에게 감기 옮기지 말라는 배려이고 행여 아들이 거추장스럽다고 벗을까 예방주사처럼 놓은 신신당부기도 했다. 네, 네, 네 답은 해놓고 항상 얼마 안 가 까맣게 잊는다. 마스크 쓰고 왔는지 조차 까먹고 신나게 뛰어놀면 그날 밤 열이 더 펄펄 끓을 때도 있었다. 아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한결같다. 마스크 꼭 써라, 기침할 땐 입 가리고 해라, 집에 오면 손발 깨끗이 씻어라….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나. 자식이 아프지 않길, 자식이 아프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앓았으면 한다. 그 ‘걱정’과 ‘염려’, ‘사랑’이 녹아있는 마스크가 지금 미국에서 ‘싸움’과 ‘대립’을 상징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다툼은 1월21일 첫 감염자가 나온 이래 7개월 동안 마치 전염병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13일 대통령은 그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재차 반대했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앞으로 적어도 3개월간 전국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4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촉구해서다. 대통령은 반대 이유로 “모든 국민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나는 국민의 선택을 믿는다, 의무화 여부는 지방정부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당 후보의 발언이 “퇴행적이고 비과학적이며 국가에 해가 된다(regressive, unscientific and bad for our country)”며 “팬데믹을 정치화하려는 속셈”이라고 했다. 듣다가 실소가 나왔다. 다른 말은 정치적 수사라고 치부해도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에서 만큼은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그는 지난 2월27일부터 지금까지 “바이러스가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것(One day it's like a miracle, it will disappear)”이라는 발언을 최소 24차례 했다. 온다던 어느 날은 아직 기약조차 없는데 그동안 500만 명이 감염돼 16만 명이 죽었다. 비과학적 말과 행동은 계속됐다. 지난 4월엔 환자들에게 살균제를 주사하거나 강한 자외선을 쐬게 하면 어떠냐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 물론 마스크는 공식석상에서 쓰지 않았다. 그러다 예언했던 어느 날이 반 년째 오지 않자 지난달 그는 “마스크를 쓰는 것은 애국”이라고 '퇴행적' 발언을 했다. 미국이 전세계 감염자 수 최다, 사망자 수 최다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있는데도 대통령은 본인이 가장 대처를 잘하고 있다고 했다. 가히 과학적이라 보기 힘든 대통령이 공격한 야당 후보의 발언은 얼마나 '비과학적'이었는지 옮겨본다. “전문가들 분석에 따르면 전국에 마스크를 최소 3개월간 의무화하면 적어도 4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에 덜 노출되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이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마스크는 (선택의)권리가 아닙니다. 국민으로서의 책임입니다.” 도대체 이 말들 어디에 정치, 비과학, 퇴행, 반국가적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수 있는지 따지기가 어렵다. 반면 대통령 발언의 의도는 오해하기 쉽다. 그는 코로나19 대국민 브리핑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했다. 감염 상황과 예방책을 발표해야 할 자리였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고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라리 여당 후보에게 전염병 대책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보자 제안했어야 했다. 또 국민에게도 전염병을 끝내기 위해서 단합하자 호소했어야 했다. 대통령의 말엔 진심만 담으면 된다. 공화당이니 민주당이니, 보수니 진보니 이념은 접자고. 우리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고 부모가 아니냐고. 자식, 형제, 부모가 아프길 원하느냐고. 그러니 마스크 꼭 쓰고다니라고. 정구현 선임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15. 21:29

[스토리 In] 똑.개.비.가 찾아갑니다

‘?’ 편지에는 물음표만 적혔다. 그 사연은 역사상 가장 내용이 짧은 편지로 종종 되새김질 된다. 편지는 1862년 빅토르 위고가 썼다. 엄밀히 말하면 편지가 아니라 전보였다. 레미제라블이 출판됐을 때 그는 휴가를 떠나온 참이었다. 무척이나 궁금했을 터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반응은 어떤지 등등 수많은 질문을 그는 물음표 하나에 담아 출판업자에게 전보로 보냈다. 그가 물음표만 적어 보낸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초조함의 정도는 알 수 있다. 레 미제라블의 집필 기간은 16년이었다. 그는 책을 탈고한 뒤 “이제는 죽어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작품에 애착이 컸다. 재미있는 건 위고의 물음표만큼이나 재치있는 출판업자의 답장이다. 역시 문장 부호 하나로 대신했다. ‘!’ 느낌표였다. 위고의 전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레 미제라블 초판은 다 팔린 상태였다고 한다. 비록 느낌표 하나에 불과하지만 답장을 받았을 때 위고가 느낀 희열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위고처럼 재치있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 받는 이는 한인들이다. 편지 내용은 뉴스다. 이메일로 매주 2차례 발송하는 ‘뉴스레터’를 시작한다. 산고는 예상보다 길었다. 기자를 포함해 40대 중반 아저씨 3명이 한 달 넘게 머리를 맞댔다. 톡톡 튀는 20대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마당에 노산의 진통은 오래갔다. 먼저 편지의 이름이 필요했다.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를 찾기 어려웠다. 착안은 우연에서 나왔다. 한국 중견기업의 미주지역 지사장 역할을 하는 분이 한국 본사 대표에게 매일 수시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이분 참 똑똑한 개인비서시네’하고 혼잣말을 하다 똑.개.비. 세 글자가 나왔다. 도깨비와 비슷한 어감에 기억하기도 쉬웠다. 다소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인들의 똑똑한 개인비서가 되겠다’는 각오가 담겨있다. 똑개비는 중앙일보를 모체로 하지만 사실상 독립된 별도의 매체처럼 만들려고 한다. 그 첫걸음은 반성에서 출발한다. 기존 매체에 피로감을 느낀 독자들을 위한 뉴스 핵심 정리다. 꼭 알아야 할 소식만 쉽게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자로 익숙했던 습관들을 다 버려야 했다. 20년간 습관적으로 작성했던 딱딱하고 가르치는 듯한 기사체부터 바꿨다. 편지처럼 친구나 연인과 대화하듯 썼다. 분량은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바빠서 기사 볼 시간이 없다. 그런데 중요한 뉴스만큼은 알고 싶다”는 독자들을 위해서다. 동료, 친구들과 대화에서 ‘뭘 좀 아는’ 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내용은 기자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이 궁금한 것들에만 병적일 만큼 집착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지금 LA한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과연 2차 락다운이 될까’다. 또, 된다면 언제, 대상은 어떤 매장들이 될지 알고 싶어들 한다. 그런데 정작 기존 매체들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보긴 어렵다. 민감한 정치 문제를 다룰 때는 철저하게 한인 입장에서 쓰려한다. 그래서 똑개비의 당적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미주한인당’이다. 코너들도 마련했다. 뉴스를 맛있게 요리해 전달하는 ‘시사셰프’, 미국의 한인 유튜버들을 소개하는 ‘꿈튜버’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수신 요청을 하면 된다. 1호 뉴스레터는 이미 초안을 작성했다. 이 칼럼처럼 똑개비를 소개하는 예고편으로 만들었다. 한달여 준비과정을 거쳐 첫편을 쓰고 나니 초조함만 남는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머릿속에 수만 개의 물음표가 맴돌 수밖에 없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똑개비의 성공은 전적으로 한인들에게 달렸다. 똑개비를 읽은 이들의 머릿속에 부디 떠오르기를 바라고 바라는 바는 문장부호 하나다. ‘!’

2020.07.23. 19:11

[스토리In] ‘가제타’의 책임

신문은 ‘밥값’이었다. 1556년 베네치아 시민들은 유럽 최초로 돈을 주고 월간지를 ‘구독’했다. 근대 신문의 효시가 된 유료 정기간행물의 이름은 '노티지에 스크리테(Notizie Scritte)’다. 영어로는 ‘Written Notices’니 우리말로 ‘통지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종이쪼가리’ 통지문이 팔릴 수 있었던 건 시대 배경에 있다. 베니치아는 14세기 지중해를 장악했던 무역대국이다. 역사학자들은 베네치아를 국가라기보다 현대의 기업에 종종 비유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본업과 상관없이 사고파는 행위에 능숙한 상인이었다. 남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면 소식에 빨라야 했다. 정보가 곧 돈이라는 깨달음이 기꺼이 통지문 구독에 지갑을 열게 했다. 이 통지문의 흔적은 460년이 지난 지금도 신문에 남아있다. 통지문에는 환율과 상품가격, 정치 동향, 떠도는 소문들이 담겼다. 특히 새로운 소식을 ‘누오베(Nuove)'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는데 이 말이 영국으로 건너가 ‘뉴스(News)’가 됐다. 가장 흥미로운 건 구독료다. 통지문의 가격은 ‘가제타(Gazetta)’라는 동전 한 닢이다. 당시 베네치아 상업중심지인 리알토 일대 식당에서 샐러드 한 접시 값이 1솔디(Soldi)였는데, 1가제타는 2솔디라고 한다. 샐러드 두 접시 정도의 가치가 유럽 최초의 월간지 구독료였던 셈이다. 가제타라는 동전의 상징성은 현재 언론 매체명으로 자주 쓰이는 ‘가제트(Gazette)’로도 남아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은 노티지에 스크리테보다 327년 늦다. 1883년 10월 창간된 한성순보다. 열흘 간격으로 발행된 1부의 가격은 50문이었다. 지금 가치로는 2만5000원(약 20달러)정도다. 두 신문의 구독료 책정 기준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만드는 이들 입장에서 고민이 깊었을 것이라 짐작은 할 수 있다. 처음이라 비교 대상이 없어 ‘적당한 가격’을 가늠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비싸면 보지 않을 테고 싸면 이윤이 남지 않는다. 난제의 해결법은 아마도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면 이 신문을 얼마를 내고 볼까’라는 불편한 자문이다. 양 신문이 내린 결론은 비슷하다. 현재 물가 기준으로 구독료 가치는 한두 끼 밥값과 바꿀 수 있을 만큼이다. 그 금액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신문을 만드는 이들이 얻어야 할 것은, 밥값을 양보해도 밥값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독자의 신뢰였다. 그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더 치열하고 어렵다. 이윤과 독자 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대부분의 활자매체 언론사들에겐 꿈처럼 멀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황에 악재는 더 많아졌다. 최근 유례없는 세계적 전염병에 언론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최대 언론사인 뉴욕타임스의 2분기 광고수익은 반토막이 됐다. 지난달 23일 직원 68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USA투데이의 모회사인 가넷(Gannett)은 지난 4월부터 산하 100여 개 언론매체 직원들에게 3개월간 무급휴가를 시행 중이다. 본사를 비롯한 한인 언론들도 그 폭풍을 비켜가지 못했다.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 길을 모색중이다. 본지도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뉴스를 받아볼 수 있도록 새 틀을 만들고 있다. 효율적인 전달수단을 고민하다가 460년전 노티지에 스크리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노티지에 스크리테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필사 월간지다. 사회정의라는 거창한 사명보다 꾹꾹 눌러쓴 통지문의 구독료인 동전 한 닢을 되새김질 중이다. 신문의 밥값은 신뢰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07.02. 18:24

[스토리In] 더 슬픈 미국판 ‘난쏘공’

“화도 안나?” 막내 영희는 큰오빠를 다그쳤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다 죽여버려”라고 주문한다. ‘꼭 죽여’라는 2차례의 다짐에서 억눌린 분노의 깊이가 칼날처럼 시퍼렇다. 1978년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의 한 대목이다. 1970년대 판자촌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난쟁이 김불이(金不伊) 가족의 삶은 서글프다. ‘키 117cm, 몸무게 37kg’의 왜소한 체격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가난도 그렇다. 하수도 오물을 뒤집어쓰고, 부엌칼을 갈아주고, 건물 유리창을 닦으며 뼈빠지게 일해도 갈수록 더 궁핍해진다. 살던 판잣집마저 아파트 개발로 철거된다. 대가로 입주권을 받지만 입주비가 없다. 입주권은 결국 돈 있는 거간꾼의 차지가 된다. 인쇄공장 다니던 아들 둘도 해고된다. 불황을 명분으로 초과근무를 강요하는 사장에 맞선 대가다. 예쁜 열일곱 막내딸은 아버지가 판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거간꾼에게 순결을 바친다. 딸이 몸값으로 입주권을 찾아왔지만 김불이는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굴뚝에서 투신자살한다. ‘난쏘공’은 30여 년 전 처음 읽었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단문 덕에 읽는 눈을 배웠다. 부와 가난, 계층, 착취의 현실적 뜻도 어슴푸레 이해했다. 어린 기억에 책이 박힌 가장 큰 이유는 ‘지옥 같은 불행’이 일상인 동네 이름 때문이다. 김불이 가족은 ‘낙원’구 ‘행복’동에 산다. 42년 된 소설 속 역설은 지금 낯설지 않다. 2020년 ‘천사의 도시’의 박탈감은 오히려 행복동보다 초현실적이다. 열심히 일해도 월세 내기가 벅차다. 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엘 못 간다. 집에서 쫓겨날 걱정보다 나라 밖 추방이 더 두렵다. 천사의 도시에는 낙원구 행복동에 없는 ‘색깔의 차별’까지 더해졌다. 피부가 검거나 누렇다는 이유로 난쟁이 김불이 대하듯 짓밟고 멸시한다. 그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하얀 거인’중 하나가 얼마 전 누군가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죽였다. 유례없는 전염병이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간극을 더 헤집어놓은 때였다. 분노는 당연했다. 국가가 공정하지 못할 때 개인은 스스로 복수에 나선다. 위험한 판단이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들고 일어선 이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아파해야 할 ‘거인 중의 거인’은 오히려 화를 부채질했다.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폭력배’라며 억압해야 할 적으로 불렀다. 약탈자들에게 경고할 목적이었다면 더 효과적인 방법도 많았다. 애틀랜타의 키샤 랜스 바텀스(50) 시장은 시위대 속에 숨은 도둑들을 사정없이 꾸짖었다. ‘우리가 이것밖엔 안 되나. 하나로 뭉친 시민이라면 이것보단 나아야 하지 않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했을 때도 우린 이렇지 않았다. 이건 시민정신이 아니라 난장판(chaos)일 뿐이다. 당신들이 업소에 불을 지르면 우리 커뮤니티 전체를 불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들은 플로이드를 비롯한 모든 억울한 죽음에 먹칠을 하고 있다. 정말 미국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가서 투표하라. 11월 선거에 참여하라. 그게 이 나라를 변화시키기 위해 당신들이 할 일이다. (폭동은 그만두고) 제발 집에 가라!’ 그의 따끔한 말들은 ‘당신들(you)'로 시작된다. 약탈에 가담한 이들뿐만 아니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을 꾸짖었다. 또 거인들 편에 서있는 이들에게 시위의 목적을 꼬집어줬다. 개중에는 “흑인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서다. 하얀 거인이 목을 눌러 죽인 살인 동기가 그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린 모두 미국에서 난쟁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작아졌다. 하얀 거인들이 넘지 못하도록 쌓아놓은 벽들 때문이다. 그 벽을 넘느라 우린 고통과 절망을 겪지만 지켜보는 거인들은 비웃고만 있다. 난쟁이들이 공을 쏘아올릴 때가 곧 온다. 11월 선거다. 그동안 투표에 관심없었던 이들에게 영희의 말을 떠올려보라 권하고 싶다. 화도 안 나나. 정구현 선임 기자 [email protected]

2020.06.07. 14:16

[스토리 In] 살균제 주사 권하는 대통령

잘못 들었나 싶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짤막한 영상을 보면서다. 제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살균제 주사를 제안했다(Trump Suggest Injecting Disinfectants)’였다. 영상은 23일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편집했다. 보고도 믿기 힘들어 그날 기자회견 전체 영상을 찾았다.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짜깁기 영상일 수 있어서다. 문제가 된 대통령의 발언과 그 앞 상황을 번역했다. #빌 브라이언 국토안보부 과학기술 차관 대행: “태양광이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강력한 효과를 갖고 있다… 또 표백제(bleach)로 기침·재채기 분비물 속의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5분이 걸렸지만, 살균제(disinfectant)로는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 바이러스를 전부 죽일 수 있다고 하면 무책임한 이야기지만 이 전쟁의 새 무기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고맙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분들도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빌(차관 대행)에게 했다.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체에 엄청난 양의 자외선(ultraviolet)이나 강력한 빛을 쏘인다면…(차관대행쪽을 보며) 이 방법은 아직 확인 안 해봤다고 (차관대행이) 말했지만 테스트해 볼 것이다. 그리고 빛을 인체 내부에 쏘이는 건(brought the light inside the body) 어떨까, 피부를 통해서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지 않나. (차관대행이) 이 방법도 테스트해 본다고 했다.” #차관대행: “(테스트할)적임자를 찾아 맡기겠다.” #대통령: “그리고 살균제는 1분 만에 바이러스를 죽인다. 단 1분이다. 인체 내부에 주사(injection inside)하든지 해서 바이러스를 거의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것(코로나바이러스)은 폐로 들어가 엄청난 숫자로 확산하기 때문이다.” 정말 지켜보기 힘든 ‘참사’였다. 전세계 어느 대통령이 생방송으로 사람 몸안에 자외선을 쐬거나 살균제를 주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제안하겠나.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 1등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 이 발언의 후폭풍도 코미디 영화처럼 상영됐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트윗을 통해 “살균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을 올렸다. 살균제 제조업체인 레킷벤키저도 “어떤 상황에서도 인체에 주입하거나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로 사용돼선 안 된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발언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대통령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이 코로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면서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클로로퀸이)매우 강력한 약이지만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며 치명적인 부작용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임상결과는 달랐다. 지난 21일 사우스캐롤라이나대와 버지니아대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투약한 환자 97명의 사망률은 27.8%로, 투약하지 않은 환자 158명의 사망률(11.4%)의 두 배가 넘었다. 대통령의 속내는 이해할 수 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과 국민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일터다. 그런데 해명이라고 내놓은 말에 애써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돌아서게 했다. “(내게 적대적인)기자들을 비꼬기 위한(sarcastically) 질문이었다.” 백번 양보해 비꼬는 말이었다고 해도 지금이 기자들과 말싸움이나 할 땐가. 전세계 코로나19 감염 사망자 넷 중 한 명이 미국에서 나왔다. 이젠 약은 그만 팔고 국민 마음을 사길 바란다. 국민들이 11월3일 대선만이 해결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 전에.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04.26. 15:03

[스토리In] 고수를 기다리는 이유 II

고수는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찾는 게 일이었다. 인물의 무게도 중요했지만 시의성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연령, 성별, 직업군도 고려해야 했다. 그런 고수의 기준에 맞춰 셀폰에 저장된 1500여 개 연락처 주인들을 검증했다.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면 연락처의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부탁했다. 그렇게 만난 이들은 깊숙이 숨어있는 ‘은자’들이 아니었다. 틀에 맞춰 묻지 않고 듣지 않고 보지 않았을 뿐 만나기 어렵지 않은 이들이었다. 두 달 전부터 매주 1회 게재해 온 ‘고수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가 10편째를 앞두고 있다. 연재다 보니 회를 거듭할수록 반응은 냉정하다. 물론 칭찬이든 지적이든 기자 입장에서는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데 글의 의도에 인터뷰 대상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목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으니 글쓴이의 책임이다. ‘진기명기’나 ‘세상에 이런 일이’, ‘무림 고수’, ‘생활의 달인’ 같은 코너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기사에서 그 기대를 접어달라 에둘러 표현했다. ‘깨달음 없이 부나 학식, 기술만을 습득한 자는 하수에 가깝다. 고수는 고집스럽게 '장이'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하는지 제대로 알고 실천해온 사람들이다. 기사에서 앞세우고자 했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고수’에 대한 정의다. 인물들이 겪어온 인생 굴곡은 그 정의를 부각시키기 위한 무대장치였다. 그래서 글의 마지막엔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고수가 뭔가’. 답변들은 이렇다.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리더”-LA경찰국 24년차 베테랑 수사관 조지 이. “미숙해서 두렵지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잘하는 사람”-미국 바둑협위 랭킹 1위 이상협 7단. “자기 꾀에 빠지지않는 사람”-21년차 커플매니저 제니퍼 이.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 상대의 역할을 이해하는 사람”-할리우드 20년차 조명감독 김기표. “끈기있게 맞는 열쇠(해답)를 찾는 사람"-60년 열쇠 명인 김대석 사장.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경청하는 의사"-질병예방통제센터 역학의학자 메리 최. “남이 안 볼 때 더 잘하는 사람”-20년 방역전문가 조현규 사장.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 하는 이”-27년 방송인 정재윤 사장. “현실에 대해 아프더라도 정직하게 조언하는 이”-37년 법조인 김기준 변호사. 답변들은 평범하다. 그런데 평범하기가 가장 어렵다. 이 대답대로만 산다면 집단의 위기는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될 때, 자기 위치를 모를 때, 남이 안 본다고 일을 게을리할 때, 해답이 없다고 포기할 때, 현실이 아프다고 외면할 때 재앙이 터진다. 그래서 고수의 반대말은 하수가 아니라 무능력자다. 아무나 고수라고 할 수 없지만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다. 묵묵히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미 고수가 되어 있을 수 있다. 자식 바르게 키운 부모도 고수다. 고령의 부모를 자주 찾아뵙고 안부 묻는 것도 고수다. 일터에서 ‘똑 부러진다’는 평판을 듣는다면 고수다. 식탁에 올릴 찌개 하나라도 맛있게 끓인다면 고수다. 문 앞에서 상대에게 먼저 문을 열어주는 배려가 몸에 밴 사람도 고수다. 화가 치밀어도 고객에게 상냥한 웃음을 잃지 않는 이도 고수다. 따지고 보면 그런 평범한 고수들을 우린 좋아하고 칭찬한다. 유례없는 전염병에 일상이 실종된 지금, 그런 평범한 고수들이 진정한 고수일지 모른다. 고수는 어디에나 있다.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04.05. 12:54

[스토리 In] ‘우리가 남이가’의 함정

당신을 왜 뽑아야 하나. 묻는 쪽은 팔짱을 끼고 있다. 정답은 없다. 원하는 답과 원하지 않는 답만 있다. 답하는 쪽도 의도를 알고 있다. 그런데 정답이 없으니 답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질문자가 원하는 답은 답변자가 할 수 없는 답일 수 있다. 정치인에게 표는 그 답의 보편성에서 나온다. 때에 맞는 시의성도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유권자들에게 두루 미치는 현재 혹은 미래에 딱 맞는 정책’이 표를 얻는 비결이다. 이 어려운 답을 찾기 위해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돈을 쓰고 사람을 고용하고 뛰어다닌다. 한인 후보들에게는 보편성과 시의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절대적인 조력자들이 있다. ‘혈연’으로 묶인 한인 유권자들이다. 3일 열린 예비선거의 투표소에서도 한인 표심은 탄탄해 보였다. 특히 올해는 LA와 OC에서만 16명의 한인 후보가 출마했다. 투표소에서 한인 유권자들은 사명감마저 내비쳤다. “한인 후보들이 많이 나왔다니까 한표라도 찍어주러 왔다”, “볼 거 있어, 무조건 한인을 찍어야지”라고 했다. 듣고 보니 한단어가 귀에 걸렸다. ‘무조건'이다. 시니어 유권자들 대부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1.5세와 2세 젊은 한인 유권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미국에서 태어난 개럿(32)씨는 “한인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찍지는 않는다"고 했다. 중학교 때 이민왔다는 약사 켈리(27)씨는 특정 한인 후보를 향해 “떨어져야 하는 정치인”이라고 악감정까지 드러냈다. 서로 다른 반응의 원인은 세대 차이가 아니다. 시니어 유권자들 대부분은 한인 후보들의 공약을 모르고 있었다. 같은 한인이니까, ‘우리가 남이가’라는 논리다. 공감한다. 우린 남이 아니다. 그런데 한인 후보라는 단어 앞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전제가 있다. ‘정치를 잘 할’이다. 역량 평가의 기준은 공약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이번 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를 블라인드 테스트해보자. A, B 후보 둘 중 한 명은 한인이다. 먼저 이력이다. 일단 두 후보 모두 이민자다. 어릴 때 미국에 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한 점은 같다. 다음은 학력이다. A후보는 UCLA를 거쳐 럿거스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B후보는 하버드를 나와 MIT대학 도시계획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둘다 학력으로도 검증된 후보들이다. 차이는 대표적인 공약인 홈리스 대책에서 갈린다. A 후보는 셸터와 영구주택이 해결책이라고 한다. 지역구 내 4곳에 셸터, 최소 356유닛을 짓겠다고 한다. 개발업자들과 협력해 저소득층 아파트도 늘리겠다고 했다. 그의 대안은 이미 타지역구에서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다. B후보는 좀 다르다. 홈리스 지원전문 '커뮤니티센터’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홈리스를 상담하고 셸터 입소 절차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미 센터 한 곳을 만들어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또 치솟는 렌트비를 감당키 어려운 잠재적 홈리스들을 보호하기 위해 ‘렌트비 임시동결’이라는 극약 처방도 내놓았다. 일정기간 동결 후 인상할 때는 임금상승률과 같거나 그보다 낮도록 규제해야 한다고도 했다. 어떤 쪽이 더 설득력이 있나.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 효과는 분명하다. '한인’이라는 이름표를 가리면 오히려 후보가 객관적으로 보인다. 한인 후보들이 가장 즐겨하는 캠페인 문구가 있다. ‘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겠습니다’다. 위험한 발언이다. 흑인 정치인이 흑인 커뮤니티만의 대변자가 되어선 안 되듯 ‘한인 정치인=한인 커뮤니티 대변자’라는 등식은 성립되어선 안 된다. 차별이고 이해충돌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의 척도는 한인 정치인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한인 표심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응집된 투표력이 목표여야 한다. 그래야 어떤 후보든 한인사회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11월에 결선이 있다. 한인 후보 여럿이 두번째 심판을 받는다. 유권자는 묻고 후보들은 답해야 한다. 당신을 왜 뽑아야 하나. 정구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03.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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