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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클래식 음악과 하루를

클래식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칼럼을 준비하며 ‘클래식 음악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을 스스로 던져보았다. 동시에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사회에 적용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휘자 서지태씨의 저서 ‘클래식 경영 콘서트’에서 그는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표현했다. “보통 대중음악 콘서트장을 찾으면 격렬한 사운드와 열정적인 공연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그러나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를 감상하고 나면 새로운 무엇으로 나 자신을 정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즉 에너지를 발산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흡입해서 내 안에서 다시 재창조해낸다.” 또한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는 이렇게 말했다. “수준 높은 예술은 결코 건전한 세계상과 단순히 회복되는 세계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에 대한 회복 가능성, 즉 모든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순수 음악의 기준이다” 라고. 클래식 음악이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중음악처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릴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독서를 취미 삼아 즐길 수 있듯이 클래식 음악도 마치 책을 읽듯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며 역사와 사회의 흐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클래식 음악을 통해 삶에 창의력이 불어넣어 지고 새로운 도전을 끌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춰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음악을 취미 삼아 음악 감상이나 음반을 사 듣는 사람들은 쉽게 만나지만 각 지역에서 상시로 열리는 음악회를 찾는 발걸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대중가요 몇 곡 아는 것으로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음악이나 듣기 좋은 것으로만 선택하고 모든 음악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꼭 클래식 음악만 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또한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베르디가 어떤 시대의 인물인지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면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감성과 순수 음악의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도 결국은 많은 음악 중 하나이다. 즉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클래식 음악이 익숙하고 즐거워지게 된다면 자연스레 교향곡,협주곡, 소나타,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클래식 음악의 기원과 형식의 특징, 발전과정까지도 관심을 두게 된다. 점차 장르의 규칙이 이해되고 음악이 주는 감동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엄청나게 많은 콘서트 시리즈와 연주회를 찾아볼 수 있다. 매년 100여 회가 넘는 다양한 콘서트가 열리는 볼티모어 오케스트라, 내셔널 오케스트라, 스트라스모, 울프트랩, 피바디 음대, 조지메이슨대학교 등 연주회를 하나씩 찾기 시작한다면 한 명의 작곡가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고 클래식 음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끝없는 배움의 길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일상의 매 순간을 즐기며 그 가운데 나의 삶이 조금씩 새롭게 변화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책을 읽든, 좋은 연설을 찾아 듣든 간에 우리는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예술 장르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우리의 삶에서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200년이 넘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도 어느새 서서히 내 안에 녹아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6.05.11. 7:31

[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스트라빈스키의 끝없는 이민의 삶

어느덧 오월이다. 잡을 수 없는 시간이 아깝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듯 이민자로 살아가는 나도 계절에 따라 마음속으로는 늘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기대한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과 힘든 생활이 뒤따른다. 처음 여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라,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환경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과 세월이 흐를수록 이민생활은 녹록지 않고, 한국과 고향이 그리워지는 만큼 미국을 이해하고 적응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누구보다 이민자의 아픔을 겪은 인물이기에 칼럼의 첫 인물로 소개한다. 러시아가 민족주의 음악의 색채를 띤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이다. 이때의 다양한 색과 화려한 관현악법을 자기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가 바로 스트라빈스키이다. 그는 발레라는 영역에서도 큰 공헌을 하였다. 20대부터 예술기획가 디아길레프와 함께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발레단에 합류, 1910년 불새, 이듬해 페트루슈카, 1913년 봄의 제전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스트라빈스키의 삶이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작곡가와의 차이점이자 그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이민의 삶일 것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스트라빈스키는 집과 모든 재산을 공산당에 몰수당했다. 결국 프랑스로 음악 활동을 옮겨야만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정말 그의 삶처럼 다양한 작품에 색을 입혀냈다. 파격적이고 그 시대를 잘 표현한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꼭 들어야 할 작품은 무용음악으로 그의 개성을 잘 드러낸 ‘봄의 제전(1913)’이다. 20세기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 중 하나이며, 바그너의 뮤직 드라마 ‘링 사이클’과 비교될 정도로 논란의 대상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용음악이라는 장르를 다루었다는 점과 여기에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조국 러시아의 상황과 제1,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민족적인 요소가 늘 음악으로 표현되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음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의 첫 미국 데뷔는 1925년 뉴욕필하모니를 지휘하며 불새, 불꽃놀이, 페트루슈카를 소개하면서이다. 40개 이상의 작품을 뉴욕 카네기 홀에서 초연하였는데 그중에 에보니 협주곡, 3악장 교향곡, 불새 모음곡 등이 연주되었다. 음악의 시학 (Poetics of Music in the Form of SixLessons) 책에 따르면 1939년 9월 그는 유럽을 떠나 하버드 대학 강의를 위해 미국으로 온다. 1940년 두 번째 부인을 만나 할리우드에 정착했다. 그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 안소니아 호텔에서 살던 중 사들인 지 얼마 안된 자택에서 마지막 임종을 맞이한다. 스트라빈스키는 현대예술의 탄생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20세기의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이자,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발판삼아 새로운 창조물을 세상에 내놓았던 현대예술의 위대한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민자의 삶이 늘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해 달려가듯이 스트라빈스키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음악 발명가이자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작곡가이며 진정한 이민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16.05.04.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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