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누군가 필요한 것들
지긋이 웃으면서 나이 드신 백인 할머니가 카트에 겨울옷을 잔뜩 싫고 들어온다. 옷장 안에 걸려있는 입지 않은 옷들이다. 세탁해서 주위에 있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세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개의치 않았다. 우리도 입지 않은 옷들이 얼마나 많은가. 귀찮기도 하고 정리하기도 싫고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1년이 지나간다. 어떤 손님은 많은 옷을 가지고 세탁을 주문하면서 선불을 한다. 그리고 세탁을 해서 필요한 사람이나 홈리스에게 아니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한다. 연말이 되면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의 보탬이라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꽃을 키우는 일이 재미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새싹이 나오면 조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 내내 물을 주고 가꾸어 교회나 양로원에 주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도마도 나무냐고 묻는다. 이름은 모르지만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린 색 열매가 오렌지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빨간색으로 변한다. 이탈리아 손님이 보고 자기 나라에서 키웠던 식물이라며 기뻐하면서 몇 개를 사서 갔다. 올해는 그 식물을 조그마한 것은 5달러 큰 것은 10달러를 붙여 가계 밖에 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다. 2달 동안에 50개 정도 팔았다. 우리 가게 옆 미국 교회에서는 매월 첫째 세 번째 토요일에 교회에서 직접 만든 콩 수프와 사과 1개, 물 한 병, 쿠키 1팩, 냅킨으로 스푼과 포크를 싸고 성경 말씀과 교회를 알리는 표지를 백에 넣어 홈리스와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가게에 배달되어 먹었는데 수프에는 여러 가지 콩과 옥수수, 그린 빈이 들어있어 맛있었다. 그 뒤로 가끔 손님을 통해 후원했는데 꽃을 판매한 대금이 조금 모여 그것을 그 교회에 후원했다. 추수 감사절 전후로 우리 동네 홈리스들이 지난여름에 던져 놓고 간 겨울옷들을 찾으러 온다. 홈리스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 있고 그 옷을 꼭 나에게 맡긴다. 그 많고 냄새나는 옷들을 여름에 물세탁을 해서 가게 뒤 울타리에 걸쳐 햇볕에 말린다. 냄새도 없어지고 뽀송뽀송 감촉도 좋다. 하나하나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찾으러 오면 내준다. 홈리스들도 가족이 있다. 명절에는 그 깨끗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어딘가에 사는 그 누구를 만나러 가는 뒷모습이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일 년 내내 방황하고 길가에서 구걸하지만 가슴 속에는 그 사람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 해 동안 찾아가지 않은 옷들이 있다. 주섬주섬 챙겨 비닐 백에 넣어 놓고 홈리스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매년 보내는 곳이다. 이때쯤이면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필요 없고 값진 옷은 아니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옷들이다. 무조건 사이즈가 크고 입고 벗기에 편리하면 좋아한다. 이번에는 두꺼운 재킷들이 제법 있어 유용할 것 같고 이불도 5개나 있다. 정신없이 살 거나 이사를 했거나 잊어버리고 찾으러 오지 않은 옷이나 이불이지만 하나하나 내 손끝이 만지작거린 정성을 들인 옷들이다. 그래도 누군가 입고 덮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짐을 꾸린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홈리스 센터 세탁 비용 가슴 한쪽
2025.12.16. 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