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함께 익어간다는 것
몇 해 전, 단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무릎까지 오던 묘목은 흙의 촉촉한 생기와 햇살이 건네는 따스한 기운을 마시며 어느새 내 키만큼 훌쩍 자랐다. 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리던 가녀린 줄기가 안쓰러워 지지대를 세우고 정성스레 끈으로 묶어 주었다. 스프링클러가 주기적으로 물을 주니 손이 갈 일이 없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올해 첫 열매가 맺혔다. 여린 줄만 알았는데 대여섯 알이 가지에 매달린 모습이 그저 대견스러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딸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빨리 뒤뜰로 와 봐요!” 한 달 반 집을 비운 사이, 잘 익은 주황빛 단감들이 나를 반겼다. 가느다란 가지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져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했다. 가지를 모아 지지대에 살짝 고정해 주니 무게가 골고루 나뉘어 한결 편안해 보인다. 단감을 유난히 좋아하는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따 먹어도 돼요?” “응, 조금만 더 기다리자. 생스기빙에 손님들 오면 자랑도 하고, 그때 따자.” 그날 이후 우리는 틈틈이 뒤뜰로 나가 감나무를 들여다보며 보살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났어, 어서 나와 봐!” 새들인지 다람쥐인지, 누군가 먼저 맛을 보고 간 뒤였다. 열매는 군데군데 쪼아 먹힌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애지중지 지켜보던 첫 열매라 가슴이 툭 내려앉는 듯 허탈했다. “하나만 먹고 가지, 왜 다 건드렸대….” 그 순간 스쳤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이토록 절묘하게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딸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문득 시어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버님과 사별한 뒤, 생전에 남편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았다고 하셨다. 귀한 것이 있으면 자식들부터 먹이겠다며 아껴 두다가 상한 적도 많았다며,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고 하셨다. “애들은 살아가면서 더 좋은 것 많으니까 너는 꼭 아범부터 챙겨라.” 그 말의 여운이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돌아보면 우리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늘 “애들 먼저 줘. 나는 괜찮아.” 하고 뒤로 물러났고 나는 그것을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라 여겼다. 그 사이 남편은 언제나 뒷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때가 되면 자식들은 각자의 시간표대로 삶을 향해 떠나고, 결국 부부만 남는 날이 찾아온다. 젊은 날의 열정도, 자녀들을 키우며 분주히 살아낸 세월도, 삶의 굽이마다 서로에게 기대어 버텨낸 그 모든 순간은 우리만의 연대기로 새겨진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일상마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침묵 속에서도 대화가 흐르고, 표정만으로도 마음을 읽는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 줄 사람은 배우자임을 가슴 깊이 새긴다. 너무 익숙해 소중함마저 잊고 있었던 남편을 바라본다. 남은 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무게까지도 함께 나눌 사람. 이제라도 그를 내 삶의 맨 앞자리에 다시 두리라 다짐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라는 강을 나란히 건너며 서로의 마음을 깊고 단단히 익혀 가는 과정일 뿐이다. 언젠가 강 건너 저편에 다다랐을 때 묵묵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마주하며, 과연 후회 없이 살아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김윤희 / 수필가이아침에 아침 남편 사이 남편 가슴 한켠
2026.01.01.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