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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사랑으로 남은 바느질

1977년 내가 헌팅턴 비치로 이사를 하면서 우연히 현이엄마를 알게됐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수영장에 갈 때마다 그녀도 늘 거기 있었다. 수영장이 그녀 집 가까이에 있어서 아이들이 먼저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수영을 마치면 집으로 데리고 가 핫도그를 만들어 먹이곤 했다. 그녀의 세 자녀와 우리 아이 셋은 또래여서 더욱 정답게 지냈다.   7월의 무더운 어느 날, 현이 엄마가 겨우 남편의 허락을 받아 다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에 갔다.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사장에 앉았다. 그녀는 순간 내 손을 잡으며 “처음 만난 날부터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웃고 뛰노는 모습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삶은 쉽지 않았다. 외동딸로 자란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는 한복을 지어 생계를 유지했다. 홀어머니와 늘 이사해야 했고 학교 공납금을 제때 내본 적이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도 그녀는 한국무용을 배웠고 힘들게 해외 순방 공연단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공연 중 출장을 온 남자를 만났고 나중에 미국 공연에서 또 만나게 됐다. 남자의 끈질긴 구애와 넘치는 선물 공세가 집요해 망설였지만 결국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녀가 꿈꾸던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의 의처증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직업도 갖지 못하게 했고 운전도 배우지 못하게 했다. 외출마저 허락을 받아야 했다.   혹시 아이들이 학교 친구와 동네 피자 가게에 가게 되어 같이 다녀오기라도 하면 남편은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의심했다. 의심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고, 폭행 뒤에는 좋은 식당에 가서 외식을 시켜주거나 새 옷과 보석을 사주었다.   수년 동안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그녀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한국 마켓에 가는 일조차 남편이 퇴근한 뒤에야 가능했고, 하루의 대부분을 남편의 통제 아래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들만큼은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레슨도 하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집 옆에 있는 태권도 도장에도 보냈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소망만이 그녀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 소망은 바느질로 이어졌다. 그녀는 틈을 내어 아이들 옷을 직접 만들었다. 남편의 허락을 받아 내가 그녀를 데리고 원단 가게에 가서 예쁜 천을 고를 때면 그녀의 눈빛이 환해졌다. 패턴을 사서 재단하고 한 땀 한 땀 옷을 꿰맸다. 분홍 꽃무늬 원단은 큰딸의 원피스로, 노란색 천은 둘째딸 원피스로, 푸른 줄무늬 천은 아들의 셔츠로 만들었다.   그녀가 만든 옷들은 사는 옷보다 예뻤다. 아이들이 옷을 입고 기뻐할 모습을 떠올리며 밤늦도록 바느질을 했다고 한다. 새 옷을 입고 환하게 웃던 아이들의 모습, 그것이 그녀의 삶을 견디게 한 힘이었다.   1993년, 내가 처음으로 가정폭력 쉼터 일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것이 가정폭력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나는 남의 집 사정이라 생각하며 지나쳤으니 돌이켜보면 참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의 무지가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따금 그녀가 떠오르면 마음 한편이 아프다. 가까이 살면서도 폭행을 당한 뒤 눈물로 고통을 얘기할 때 전문가에게 안내하여 상담을 받도록 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가 리버사이드로 이사 가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가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연락이 와서 병원으로 찾아가 만났다. 손을 꼭 쥐었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눈빛은 그동안 라이드를 자주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렇게 55세에 내 곁을 떠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녀는 조용한 숨결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살아 있다. 나란히 앉아 바느질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이 그립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일까. 그녀의 자녀들은 훌륭히 성장했다. 큰딸은 디자이너가 되었고, 아들은 큰 무역 회사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막내딸은 아버지를 돌보며 건축 회사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오늘 SNS에서 그녀의 세 자녀들이 쓴 엄마를 추도하는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녀가 떠오른다. 바늘을 잡고 조용히 미소 짓던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녀의 삶은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들에게 남긴 것은 옷 한 벌이 아니라 깊고 넓은 사랑이었다. 아이들에겐 어쩌면 그 사랑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떠났지만, 어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그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살아 있다. 엄영아 / 수필가문예마당 바느질 사랑 가정폭력 쉼터 동네 수영장 마음 한구석

2026.01.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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