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사설] 발의안 50, 승리한 게 아니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민발의안 50(Proposition 50)’을 통과시켰다. 발의안은 지난 2008년 이후 중립적인 ‘독립위원회’가 맡아온 선거구 재조정 권한을 일시 중단시키고 민주당 주도의 주의회로 다시 넘기는 조치다. 5일 오후 3시 현재 개표율 75%인 상황에서 찬성이 63.8%로 압도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당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향후 전국 정치 구도의 근본적인 변화와 민주주의의 딜레마가 숨어있다.   발의안 50의 가장 큰 의의는 텍사스, 미주리, 노스캐롤라이나 등 공화당 주들이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획정하는 행위)’으로 의석을 늘리려 했던 것에 대해 캘리포니아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정면 대응한 점에 있다. 현재 공화당이 219석, 민주당이 213석으로 근소하게 나뉜 연방 하원의 권력을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주도권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발의안의 통과로 가주는 일단 내년 중간선거에서 최소 5석의 민주당 추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발의안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트럼프 행정부를 저지하기 위한 힘의 균형을 더 중요하게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불공정을 감수한다”는 역설적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독립 선거위원회는 ‘정당 간의 권력 나눠 먹기’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개혁의 산물이자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제도다. 발의안 50이 비록 공화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해도 제도의 중립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조치임은 분명하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가주 주지사가 “트럼프처럼 되지 않기 위해 트럼프처럼 행동하는 건 모순”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이유다.   가주의 발의안 50이 쏘아올린 신호탄으로 향후 정치권은 더욱 극심한 양극화와 ‘정치 공학’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민주당의 전략적 승리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미국 정치가 ‘정당 주도형’ 선거구 재편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공화당 주들과 뉴욕, 일리노이 등 민주당 주들 모두 자당에 유리한 선거구 그리기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6년 중간선거는 정책 대결보다, ‘누가 더 교묘하게 지도를 그리는가’의 싸움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차기 대선 구도 역시 영향을 받게 된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이번 발의안 통과를 본인의 정치적 리더십 시험대로 삼았다. 그는 “트럼프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전면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나서 “공화당의 의회 장악을 막아야 한다”고 발의안 50에 찬성해줄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TV와 온라인 광고에 1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는 등 압도적인 캠페인이 전개됐다. 발의안 통과는 2028년 대선을 염두에 둔 뉴섬의 정치적 입지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투표로 LA를 포함한 한인 밀집 지역 역시 선거구 재편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새 선거구 재획정 과정에서 한인 밀집 지역이 쪼개지거나 흩어질 경우 우리의 목소리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반대로 인접 지역과 통합될 경우 더 넓은 정치적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선거구 경계선 하나가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향후 재획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감시해야 한다.   발의안 통과는 정치적 명분보다 현실적 힘의 논리가 앞선 결과다. 당장 내년 하원 다수당이 되기 위한 민주당의 승부수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불신과 냉소주의만 키울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결과를 ‘승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으로 인식해야 한다. “정치가 제도를 훼손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정치적 유리함을 얻은 만큼, 그 운용 과정에서 공정성과 절제력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지난 대선과 같은 반작용은 불 보듯 뻔하다.   한인 사회 역시 이러한 거대한 정치 지형의 변화 속에서, 혹여 표심이 분산되지 않도록 단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력 결집 방안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사설 발의 승리 가주의 발의안 발의안 50 내년 중간선거

2025.11.05. 19:3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