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천 년의 숨결, 강릉단오제
강릉단오제를 다녀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해 6월, 강릉 남대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천막들 사이로 흘러나오던 행사의 열기를 잊지 못한다. 음력 5월 5일 단오를 기점으로 8일간 펼쳐진 이 축제는 단오굿, 단오 체험, 민속놀이, 청소년 어울림 한마당, 각종 경연대회 등 총 64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시민과 방문객을 맞이했다. 단순히 오래된 축제를 넘어, 강릉단오제는 수천 년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과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단오제 첫날, 신을 맞이하는 영신행차에 이어 펼쳐진 신통대길 길놀이는 축제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강릉시 읍면동 주민들과 각 기관 단체 34팀이 참여한 이 길놀이는 단순히 행진을 넘어, 각 공동체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특색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창의적인 경연장이었다. 단합된 열정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는 축제장을 가득 채웠고, 이는 곧 강릉 지역 주민들의 강한 공동체 의식과 문화적 자긍심을 대변하는 듯했다. 특히 강릉관노가면극의 무언극은 매우 흥미로웠다. 대사 없이 몸짓과 소리로만 이루어진 가면극은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몰입감을 선사하며, 전통 연희의 깊이 있는 예술성을 느끼게 했다. 또한 강남동 농악대는 오색 복장과 현란한 상모돌리기, 그리고 악기 소리의 완벽한 조화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어린아이들이 무동을 타고 천진난만하게 춤추는 모습, 부녀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일사불란하게 소고를 두드리는 모습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농악이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기쁨과 단합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강릉단오제는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강릉단오제의 핵심 행사인 단오굿은 엿새 동안 단오제단에서 진행됐다. 여러 거리의 굿 중 박혜미 이수자가 진행한 국가무형유산 용왕굿은 특히나 화려했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강릉 주민들에게 풍어와 만선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굿판에는 삶의 간절한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한 거친 파도 속에서 조업하는 가족의 무탈을 빌기 위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가족 사랑과 안전에 대한 깊은 기원을 느끼게 했다. 필자 역시 시 「동해안 별신굿」에서 ‘…/만경창파로 떠난 사람들아 / 날뛰는 꽹과리 소리 장구 소리 붙잡아라/ 정신줄 놓지 말거라./ 돌아오소. …’라고 쓴 바 있듯이, 우리 민족에게 굿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연로한 무녀들이 굿판을 떠나도, 종이꽃 신당 앞에는 무복을 입은 젊은 이수자들이 무구를 흔들며 기나긴 무가를 낭랑하게 읊조리고 있었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전통을 계승하려는 젊은 세대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졌다. 땀으로 흠뻑 젖은 하얀 모시 적삼을 입은 6명의 악사들은 무아의 경지에서 꽹과리와 징을 두드리고 장구를 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반주했다. 이 젊은 이수자들은 인간의 절박함을 신에게 고하는 중재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며 함께 호흡하는 연희자의 모습으로도 비쳐졌다. 이는 굿이 단순히 신을 향한 의식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공감하는 살아있는 공연 예술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강릉은 태백산과 인접해 있어 단오제 때 산신제를 지내고, 대관령의 국사성황신 내외를 모셔오고 모셔가는 제례와 조전제 등 유교식 제례도 거행한다. 이때 강릉시장을 비롯한 각 기관단체장들이 제관이 되어 주민들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모습은 지역 사회의 리더들이 앞장서서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처럼 단오제가 무속적이고 비과학적 요소를 중심축으로 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무속 행사에 대한 예산 집행 반대와 미신 숭배라는 부정적 관점을 가진 종교 단체들이 단오제 기간 중 열띤 집회를 여는 것 또한 강릉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릉단오제가 지닌 가치는 흔들림이 없다. 강릉단오제는 단순히 미신을 숭배하는 축제가 아니다. 오늘날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특색 있는 행사가 주목받는 가운데, 강릉단오제는 국가 유산(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축제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강릉단오제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인류 공동의 자산임을 의미한다. 외래 종교가 유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천 년을 이어온 강릉단오제는 이제 미신 중심의 제의식을 넘어 과거와 현대를 잇는 총체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릉시청은 강릉단오제 전수교육관을 운영하며, 강릉단오제 위원회와 강릉단오제전승보존회는 전통 행사의 전승과 보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축제 사흘째 되는 날, 강릉의 한 성당에서 단오장에 차린 천막 식당에 들러 막국수를 맛봤다. 식당 안을 진두지휘하며 손님들을 안내하던 신부님은 강릉단오제라는 전통 문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잠깐 비치기도 했다. 종교적 신념을 넘어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이러한 포용적인 태도는 강릉단오제가 지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보여준다. 마지막 날 밤, 찬란한 불꽃놀이로 단오제 행사는 성대하게 막을 내렸고, 언론은 약 70만 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이 수치는 강릉단오제가 단순히 지역 축제를 넘어 전국적인, 나아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강릉단오제의 각종 행사와 퍼포먼스는 어린이와 어르신이 함께 어우러져 공연하고 참여하며 세대 간의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또한 천막 장터에서 생필품과 먹거리를 사고파는 소상인들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됐다. 축제가 단순한 유흥을 넘어 지역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활력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축제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강릉단오제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국적 삶의 원형을 담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생존 방식과 공동체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민속학적, 인류학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살아있는 전통 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가 앞으로도 그 가치를 이어가며 더욱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 권정순 / 시인문예마당 강릉단오제 숨결 강릉 지역 공동체 의식 강릉 주민들
2025.07.31.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