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태양은 지고 다시 뜬다
지는 것이 태양뿐이랴! 꽃잎도 피고 진다. 사랑도 뭉게구름으로 부풀었다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달이 차면 보름달도 이지러지고, 동쪽 하늘에서 새벽별로 반짝이던 그대 눈동자도 세월이 가면 목련꽃잎 되어 흩어진다. 새벽별은 계명성, 샛별, 금성을 가리킨다. 리투아니아 신화 속 새벽과 하늘의 여신으로 미모가 뛰어난 아우슈리네는 샛별(베누스)이 되어 하늘을 밝히고 어둠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어릴 적 산만하고 앞을 안 보고 생각(?)에 골몰해서 잘 넘어졌다. 엄마가 호호 불며 빨간색 아까징끼 발라준 무릎은 피카소 추상화처럼 성할 날이 없었다. 인생은 수백번 엎어지지만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무릎이 깨져도 절뚝거리며 어딘지 모르는 종점을 향해 달린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사는 것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마지막 열차라 해도 뛰어내릴 수 없다. 1819년 겨울 아침 사형대 앞에서 생의 마지막 5분을 세며 서 있던 스물여덟살 청년,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1분이라도 더 살 수 있기를 빌며 죽음 직전 그가 본 건 교회 첨탑에 반사된 빛이였다. 그 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그는 절규한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작품을 쓰는 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는데 페트라솁스키 금요모임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가난과 아버지의 죽음, 사형 선고 후 집행 직전 특사로 풀려나지만 혹독한 시베리아 강제 유배 생활, 광적인 도박 중독, 평생을 달고 산 뇌전증 등으로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가난한 사람들, 악령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집필했다. 1881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토스토예프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장례식에는 6만여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토스토예프스키는 한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열매 맺는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 죄와 구원, 자유와 신앙을 가장 깊이 파고 들어 불멸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잃어버린 인생의 희망과 방향을 제시한다. 지는 해는 슬퍼라! 노을은 찬란하게 불타는 별리의 인사말도 끝내기 전에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다.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태양은 지고 다시 뜬다. 그대가 잠든 순간에도 그리움의 끈을 놓치 않는다. 석양은 마지막 남은 잎새 껴안고 작별의 눈물 감추며 활화산처럼 불타오른다. 성냥개비 하나로 사랑은 우주를 밝힐 불을 지핀다. 오늘의 태양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어둠과 고통의 강을 건너 새벽별과 작별하고, 태양은 숨죽이며 찬란한 생명으로 대지를 물들인다. 힘든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온다. 꼭 오고야 만다. ‘내일’이란 단어 속에는 ‘희망’이라는 밝은 햇살이 반짝인다. 태양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 검은 망또 걸친 절망을 등 떠밀어 보내면 희망의 태양이 숨죽이며 다가온다. 지는 태양 붙잡고 눈물 떨구지 말라. 내일의 태양은 내일 찬란하게 빛난다. (작가,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새벽과 하늘 동쪽 하늘 건너 새벽별
2025.12.30.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