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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한 걸음만 밝히는 빛

 오래전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남편은 갑자기 덮쳐오는 암흑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한쪽 시력을 잃은 뒤부터 그에게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형체 없는 두려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다시는 극장을 찾지 못한다. 대신 그의 침대 곁 스탠드 위에는 어떤 밤에도 잊히지 않는 파수꾼처럼 작은 손전등 하나가 늘 놓여 있다.   깊은 밤, 세상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정적만이 방 안에 고여 있을 때가 있다. 남편은 잠든 나를 깨울까 조심스레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의 손바닥 안에 폭 담긴 작은 불빛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한다. 굽이진 길 전체를 한꺼번에 보여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서 있는 발치와 다음에 내디딜 한 걸음의 거리만을 조용히 밝혀 줄 뿐이다.   손전등 불빛은 늘 작았다. 그러나 그 작은 빛으로도 밤은 충분히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인생 전체를 환히 비출 태양 같은 빛을 원한다. 내일의 풍파는 물론이고, 아직 오지 않은 노년의 시간까지 미리 알아야 안심하려 한다. 그러나 생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은 눈부신 서광이 아니라 오늘의 보폭만큼만 비추는 작은 등불인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은 때로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나를 더 깊은 신뢰로 이끄는 길이었다는 것을. 만약 삶의 모든 지도가 처음부터 환히 펼쳐져 있었다면, 나는 누군가의 손을 그토록 간절히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고, 겸손히 멈추어 서는 법 또한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을 견딜 만큼의 온기, 발을 헛디디지 않을 만큼의 조각 빛, 그리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작은 용기. 손전등의 겸손한 불빛은 내게 ‘충분함’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일러 준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으시는 까닭은, 아마도 우리가 그분과 눈을 맞추며 한 걸음씩 걸어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일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내가 든 빛이 커서가 아니다. 작은 불빛을 들고도 끝내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그분의 따뜻한 숨결이 늘 내 곁 가까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엄영아 수필가이 아침에 걸음 걸음씩 걸어가기 손전등 불빛 오래전 남편

2026.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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