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포트워스(DFW) 지역의 동성 결혼 부부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달라스 모닝 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흐린 날, 결혼식 장식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4시간밖에 자지 못한 끝에 아이재이아 기븐스(Isaiah Givens)는 파트너 쿠엔틴(Quentin)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식장에 입장하기 불과 5분전, 기븐스는 자신이 직접 쓴 서약문을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즉석에서 할까?” 기븐스는 남편과 주례자에게 물었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정말 패닉 상태였어요. 그러다 (퀸틴이) ‘나중에 하자’고 말해주더군요.” 이후 예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기븐스는 말했다. 약 130명의 하객이 참석했고, 두 사람은 그날 밤 서로에게 서약을 읽어주었다. 기븐스 부부는 현재 DFW를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수천 쌍의 동성 결혼 부부 가운데 하나다. 연방센서스국의 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American Community Survey) 추정치에 따르면, 자료가 공개된 최신 연도인 2024년 기준으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이 지역의 동성 결혼 가구수는 약 1만1천가구에서 2만2천가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거의 2배가 됐다. 전체 결혼 가구에서 동성 결혼 부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0.8%에서 2024년 약 1.4%로 상승했다. DFW 지역 성소수계(LGBTQ)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들은 이러한 변화가 성소수자와 가족을 보다 환영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됐을 뿐 아니라, 그 분위기를 다시 강화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달라스에 있는 퍼스트 커뮤니티 연합 그리스도 교회(First Community United Church of Christ)의 담임목사 멜리사 애시모어(Melissa Ashmore)는 “점점 더 수용적으로 변해왔다”고 말했다. 양성애자라고 밝힌 그는 2012년부터 아내 로라(Lora)와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혼 평등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결혼 평등에 대한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정서가 형성돼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가족법 전문 변호사이자 달라스 LGBTQ 변호사협회의 조시 도시(Josh Dossey) 회장은 DFW 지역이 오랫동안 LGBTQ 공동체 형성과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수십년에 걸친 텍사스의 LGBTQ 권리 관련 법적 투쟁 상당수가 달러스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1982년의 ‘베이커 대 웨이드(Baker vs. Wade)’ 사건에서, 달라스의 한 남성 동성애 교사는 TV에 커밍아웃한 뒤 해고되자 텍사스의 반동성애 성행위 법에 도전했다. 연방 지방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지만, 제5연방항소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해당 법은 2003년 연방대법원이 ‘로런스 대 텍사스(Lawrence vs. Texas)’ 판결에서 휴스턴 남성의 사생활 및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기전까지 유지됐다. 2014년 결혼 평등 소송 ‘델리온 대 애벗(DeLeon vs. Abbott)’의 원고 2명인 마크 패리스(Mark Phariss)와 현재의 남편 빅 홈스(Vic Holmes)는 플레이노에 거주한다. 이들은 당시 텍사스주 법무장관이었던 그레그 애벗(Greg Abbott) 현 주지사를 포함한 주 지도부를 상대로, 텍사스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할 권리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3인 항소법원 패널이 자체 판단을 내리기 전에, 연방대법원은 2015년 역사적 판결 ‘오버거펠 대 호지스(Obergefell vs. Hodges)’를 통해 전국적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그날 패리스와 홈스는 러브 필드 공항의 한 베이글 가게에 앉아 있었다. 패리스는 “빅과 나는 판결문을 읽었고,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울기 시작했다. 오열했다. 게이 커플이자 게이 개인으로서, 마침내 미국의 완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며칠 뒤, 패리스의 사건을 맡은 법원은 오버거펠 판결을 근거로 텍사스가 동성 결혼을 막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애시모어 목사는 특히 자신이 주내에서 결혼할 수 없던 시절, 결혼 주례를 계속 맡기 어려웠던 상황을 떠올리며 안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곧바로 출생증명서와 보험을 떠올렸다”며 아이들 서류에 아내의 이름을 올리는 문제를 언급했다. 2015년 판결 이후 결혼 평등에 대한 지지가 훨씬 광범위해진 느낌이라고 애시모어는 말했다. 도시는 동성 결혼 부부의 가시성이 더 큰 수용으로 이어지고 그 수용이 다시 결혼이라는 가시적 선택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 덴튼 카운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웨딩 사진작가 셰비 존스(Chevy Jones)는 2019년 페이스북에 ‘노스 텍사스 LGBTQ+ 웨딩 네트워크(North Texas LGBTQ+ Wedding Network)’를 만들었다. 현재 회원수는 약 1,300명이다. 존스는 “나는 LGBTQ 당사자는 아니지만 공동체의 동맹(ally)다. 성소수자 커플들이 포용적인 장소와 플래너, 벤더를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그룹을 시작했다. 홍보물뿐 아니라 실제 운영에서도 LGBTQ를 배려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계약서 문구에서도 ‘신부-신랑(bride-groom)’으로 한정하는 표현을 피한다”고 전했다. 수년간 존스는 커플들이 자신의 필요와 편안함을 더 분명히 요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LGBTQ 커플의 행복에 진정으로 투자하는 벤더 선택지가 늘어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존스는 LGBTQ 고객을 상대하면서 작업의 창의적 기회도 넓어졌다고 했다. 그가 촬영한 한 결혼식은 요정 귀(elf ears)와 ‘젤다(Zelda)’ 테마 의상을 갖춘 ‘위칸 스타일(Wiccan style)’로 연출됐다. 존스는 “그들의 취미 같은 요소와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더 분명하게 담아낼 수 있다. 물론 장식 없이 아주 단순하게 치른 예식도 충분히 아름답게 기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영역에서 수용성이 커졌음에도, 최근 LGBTQ 권리에 대한 정치적 역풍으로 많은 공동체 구성원들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수개월 동안 주정부는 오크 론 지역의 횡단보도에 그려진 무지개 줄무늬를 달라스시가 제거하도록 압박해 왔다. 알링턴시는 연방 지원금 중단을 우려해 지난해 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조례를 중단했다. 텍사스 주의회는 2023년 미성년자에 대한 성별 확정 치료를 금지했고 이 법은 2024년 법원의 판결로 유지됐다. 인권 캠페인(Human Rights Campaign/HRC)의 법률정책 담당 선임 디렉터 캐서린 오클리(Cathryn Oakley)는 “텍사스는 혁신가이자 반복적 위반자였다”며 “반 LGBTQ 입법과 관련해 가장 공격적인 주의회 가운데 하나”라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달라스나 포트워스 같은 도시가 평등을 우선시하려 해도, LGBTQ를 둘러싼 전반적 분위기는 타격을 입었다고 오클리는 지적했다. LGBTQ+ 포용도를 정책 데이터로 집계하는 HRC의 ‘지자체 평등 지수(Municipal Equality Index)’에서 달라스의 점수는 2024년 만점 100점에서 2025년 93점으로 하락했다. 전국적으로도 동성 결혼에 대한 지지는 주춤하는 양상이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 성인의 동성 결혼 찬성률은 2019년 63%에서 2023년 71%로 올랐다가, 지난해 5월 68%로 다시 낮아졌다. 또 올해 1월 초 텍사스주 대법원은 지역 판사들이 주 사법 윤리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도 동성 커플의 결혼 집례를 거부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패리스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정말로 우려스럽다”며, 최근 판결이 10년전 자신이 받아낸 가처분 명령을 “잠재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그들은 게이 공동체를 다시 옷장 속으로 밀어 넣어 보이지 않게, 들리지 않게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기븐스 역시 최근 정책들에 대한 우려를 느꼈다며, LGBTQ 공동체와 함께 평등권을 옹호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그는 남편과 함께 이미 많은 일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정치적 역풍이 그들의 관계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기븐스는 “우리는 이미 결혼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든 우리의 사랑에는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혜성 기자〉포트워스 달라스 결혼식 장식 결혼 평등 결혼 생활
2026.02.25. 7:46
결혼 생활에는 세 개의 링이 있다고 한다. 약혼반지(Engage ring), 결혼반지(Wedding ring), 그리고 고난(Suffering). TV에서 한 목사님이 주례를 서며 이 이야기를 전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링인 ‘서퍼링(Suffering)’이야말로 결혼 생활의 무게와 깊이를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느 날 구멍 난 양말을 들고 와 내게 보여주었다.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됐네.” 그 말에 나는 자연스레 되물었다. “꿰매줄까요?” “그럼 좋지, 아직 멀쩡한데 버리긴 아깝잖아.” 그 양말은 남편이 특별히 아끼는 것이다. 색감이 멋스럽고 도톰해서 발바닥은 편안하고 종아리에도 부드럽게 감겼다. 양말 한 켤레에 대한 그의 애착은 어쩌면 그 양말이 전하는 따뜻함이 고단한 삶에서 작은 위안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 나는 돋보기를 먼저 꺼낸다.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마련해 준 반짇고리는 반백 년 세월 동안 열고 닫히며 빛바랜 채로 나와 함께 늙어왔다. 그 안에서 찾은 매끄러운 전구를 양말 속에 밀어 넣고, 환하게 드러난 구멍 난 부분을 조심스레 꿰매기 시작한다. 남편은 내가 양말을 꿰맬 때면 어릴 적 어머니가 촛불 아래에서 바느질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말하곤 한다. 내게 양말을 꿰매는 일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 하나의 예술이자 삶의 의례다. 또한 이 시간은 내가 주님과 깊이 동행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구멍 난 자리를 메우며 나는 우리의 관계를 떠올린다. ‘우리의 우정과 사랑에도 이런 구멍이 나 있지는 않을까?’ 자문해 본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 때면 작은 아픔을 견디며 인내를 배우고, 꿰맨 자국이 투박해 마음에 차지 않을 때면 다음번엔 더 정성스럽게 하리라 다짐한다. 오늘 손을 본 양말은 청색과 회색이 차분하게 섞인 빛깔이다. 구멍 난 부분에 회색 천을 덧대었지만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남편이 이 양말을 신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사실 이 소소한 바느질이 단순히 나의 알뜰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친할머니의 가르침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할머니는 “헌 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낡은 것을 결코 함부로 하지 않으셨다. 겉에는 늘 깨끗한 새 옷을 입으셔도, 속에는 몇 번이나 꿰맨 속옷을 소중히 입으시던 분이었다. 요즘은 눈이 많이 나빠져 바늘귀를 끼우는 일조차 힘들다. 하지만 새 양말을 사주는 편함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양말을 정성껏 기워주는 것, 나는 이것 또한 ‘사랑의 서퍼링(Suffering)’이라 믿는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작은 불편과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구멍 난 양말 한 켤레를 꿰매며 결혼 생활의 또 다른 의미를 배운다. 삶의 작은 틈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위해 수고로움을 견디며, 그 과정에서 온기를 발견하는 것. 기운 양말은 남편의 발에서 사랑의 기억을 안고 다시 힘찬 걸음을 내딛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양말처럼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삶을 오늘도 감사히 여긴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suffering 서퍼링 반지 서퍼링 기운 양말 결혼 생활
2026.02.05. 18:28
다도해가 아스라이 보이는 수정산 기슭에 높직이 자리 잡은 교사, 거기 2학년 교실에서 그날 우리는 무슨 궤적인가를 구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기하 시간은 우리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담임선생님 과목이라 책상에 엎드려 졸기만 할 수도 없었다. 여름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7월의 창밖으로는 한낮의 뜨거운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끙끙대고 있는 우리가 딱했던지 일찌감치 문제를 다 풀고 난 반장이 정적을 깨고, “선생님, 육갑 좀 해 보세요” 했다. 반장은 수학 천재로 담임선생님의 수제자이지만 선생님에게 육갑이라니! 이 일이 무사히 넘어가려나. 그런데 선생님은 돌아서서 칠판에 한자로 된 긴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를 쓰고 난 후 풀이하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설명이었고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글자들이었다. 이토록 심오한 세계를 여태 몰랐다니. 충격이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어머니에게 나는 무슨 띠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듣고 그날 두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그림으로만 봐도 징그러운 뱀이 하필이면 내 띠라니. 어머니에게 띠를 바꿔 달라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그건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서 바꿀 수 없으며 이제 띠 같은 건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만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 후로 될 수 있는 한 띠에 관한 화제는 피했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끼어들 일은 없으리라 여겼던 띠 문제가 중요한 고비에서 불거졌다. 결혼을 약속한 우리는 서울 양가에 두 사람의 신상정보를 보냈는데 그의 집에서 이 결혼 허락할 수 없다는 회답이 왔다. 그와 궁합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겨울 출생이라 동면하는 뱀띠여서 좋지 않다고 했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여성에게 고리타분한 궁합으로 태클을 걸다니.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결혼식을 올리려던 우리 계획은 자연히 연기되었다. 개학은 다가오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던 중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시댁에서 우리 결혼을 드디어 허락하셨다고 했다. 내가 용띠로 바뀌어서 남편과 궁합이 아주 좋다는 소식이었다. 내 생일을 계산해보니 2, 3일 차이로 음력으로 용띠가 된다는 것이다. 용띠 아들을 기대하며 나를 가졌을 때 몸에 좋다는 것은 뭐든 구해 드셨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더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어머니의 태몽까지 동원되어서 우리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편은 내가 이무기가 될 뻔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승천한 억세게 운 좋은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놀리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삶은 용두사미를 많이 닮았다. 나는 헬스클럽 멤버십을 끝까지 이용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수영은 배우다가 그만뒀고 정구도 새벽부터 레슨받으며 부산을 떨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피아노도 라틴어도 모두 중도 하차했다. 다만 한 가지 골프는 핸디 14가 되도록 계속했고 학교를 중퇴한 적이 없고 결혼 생활도 중간에 파탄 내지 않았으니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하려나. 십간십이지에서 개띠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네 사람, 어머니와 딸과 두 손자가 모두 개띠다. 경술국치가 있던 1910년(경술년)에 어머니가 출생하셨고 그 후 60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경술년(1970)에 내 딸이 태어났다. 36년이 더 흐른 2006년(병술년)에 두 손자가 세상에 고고성을 울렸다. 친손자가 그해 10월 14일에 출생했는데 예정일이 아직 석 달이나 남은 외손자가 보름 뒤 10월 28일에 잇달아 태어났다. LA에서 첫 손자와 느긋이 친분을 쌓아가고 있다가 딸의 조산 소식을 듣고 서둘러 버지니아로 날아갔다. 3파운드로 태어난 외손자는 생명줄을 여러 개 몸에 달고 인큐베이터 안에 놓여있었다. 투실한 친손자의 무게에 익숙했던 내 두 팔은 아무것도 안지 않았음에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니큐에 아가를 남겨두고 저녁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딸네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양옆에는 무심한 버지니아의 단풍나무 잎들이 나날이 아름답게 붉어지고 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가 가까울 무렵, 손자는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달려 집으로 왔다. 한겨울과 봄이 지나는 동안 손자는 무럭무럭 자랐다. 몸을 뒤집고 머리를 들고 기었고 그리고 드디어 두 발로 섰다. 그렇게 기를 쓰고 개띠 대열에 합류한 녀석은 저보다 2주 먼저 태어난 같은 개띠 사촌과 지금 절친이다. 9학년인 손자들은 키도 훤칠하고 운동도 잘한다. 올림픽 사이즈 수영장 1/2 크기인 우리 단지 안 수영장을 거뜬히 왕복한다. 녀석들이 물장구를 치며 법석을 떨면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데 처음엔 눈총을 주던 백인들은, 아이들이 멋진 크롤로 물살을 한 번 가르고 나면 만면에 미소가 번지고 내게도 친근한 시선을 보낸다. 제 부모들이 들인 시간과 수영 레슨비에 1도 보탠 것 없지만 나는 어느 틈에 그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 구름을 뚫고 오르려던 하늘은 아득히 멀어졌다. 날아오를 기백도 기운도 이제는 없다. 가까이에서 늘 곁을 지켜주는 개띠들에 둘러싸여 여전히 용두사미로 산다. 한 가지 놓지 않고 있는 것은 글쓰기다. 글을 쓰며 빛바랜 추억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새롭게 채색한다. 무뎌진 감성에 잔잔한 자극을 덧입히고 메말라가는 사유의 광맥을 디그인 한다. 글을 구상하며 내 삶의 물가를 오늘도 생각에 잠겨 거닌다. 박유니스 / 수필가수필 용두사미 사람 어머니 결혼 생활 개띠 사촌
2022.08.04.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