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미주체전에서 달라스 종합우승에 크게 기여한 에반 최(수영) 선수와 헤나 박(육상) 선수가 각각 달라스 선수단 남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 최우수 감독상은 김은정 육상 감독에게 돌아갔다. 미주체전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성한)은 지난 12일(토) 오후 5시 뉴송교회에서 달라스 선수단 해단식을 열고 최우수 선수들을 비롯한 선수단, 자원봉사단, 그리고 후원 업체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조직위원회는 달라스 교회협의회장 신자겸 목사, 북텍사스 한국여성회 이송영 회장, 그리고 북텍사스 한인부동산협회 헤나 오 회장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달라스 교회협의회장인 신자겸 목사에게 공로상이 수여됐다. 신 목사는 40여 개 교회를 연결해 대회 둘째 날인 6월21일(토) 선수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했다. 특히 교회협의회가 제공한 도시락은 각지에서 출전한 선수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북텍사스 한국여성회는 이번 미주체전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가장 큰 부분을 감당했다는 평을 받는다. 여성회는 달라스 선수단 출범식에서 300명 분의 식사를 비롯해, 대회 첫날인 6월20일(금) 1,500명 분의 저녁식사 등을 제공했다. 부동산협회는 후원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온 5명의 국악팀원들의 손발이 되어 대회 기간 내내 그들의 교통, 관광, 식사, 공항 픽업 등의 일을 맡았다. 남자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에반 최 선수는 이번 미주체전 수영 종목에서 무려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헤나 박 선수는 육상에서 6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이번 대회 다관왕에 등극했다. 김은정 육상 감독은 달라스가 육상에서 961점, 마라톤에서 655점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육상과 마라톤에서 나온 1616점은 달라스 선수단의 총점인 6,541점의 25%에 해당하는 것으로 육상과 마라톤이 달라스 종합우승을 견인했다는 평을 받는다. 시상식 후에는 각 종목별 선수단이 단상에 올라 대회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해단식에는 주달라스 영사출장소 도광헌 소장, 장덕환 전 달라스 체육회장, 김성한 조직위원장이 참석해 선수단에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성한 조직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짧은 기간 안에 준비하고 치르면서 여러분 모두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흘렸는지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여러분의 열정, 팀워크,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땀은 정말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여성회는 이날 해단식에서도 참석자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해 큰 박수를 받았다. 토니 채 기자경기장 선수 최우수 선수들 달라스 선수단 종목별 선수단
2025.07.18. 8:13
13일 잉글우드 소재 소파이 스타디움(SoFi Stadium)에서 2026년 LA 월드컵 잔디구장 공개 행사가 열렸다. 내년에 이 경기장에서 월드컵 경기가 총 8차례 개최될 예정이다. 스타디움 측은 "FIFA의 요구 사항을 충족한 잔디 구장" 이라며 "20일부터 열리는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네이션스 리그가 끝난 후 구장을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윤재 기자la월드컵 경기장 la월드컵 경기장 잔디 구장 잉글우드 소재
2025.03.13. 22:21
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간판 스타였던 루카 돈치치가 LA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는 모습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LA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그가 LA로 트레이드된 이후 레이커스는 보스턴과 맞붙은 원정 한 경기를 제외하고 연승을 거두며 NBA 서부 컨퍼런스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6일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는 연장전 접전 끝에 113-109 승리를 거뒀다. 르브론 제임스는 31득점 12리바운드로 팀을 이끌었고, 돈치치는 20득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격과 경기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레이커스의 JJ 레딕 감독은 경기 후 “우리 선수들의 후반 수비력은 환상적이었다. 특히 르브론과 루카의 움직임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돈치치의 합류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었다. 그는 레이커스를 다시 우승 경쟁팀으로 끌어올릴 차세대 슈퍼스타다. 일각에서는 르브론과 공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두 선수는 오히려 환상적인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흔을 넘긴 르브론은 돈치치가 볼 핸들링을 분담하면서 체력 관리가 수월해졌다. 덕분에 경기 후반에도 강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뉴욕전처럼 클러치 상황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비에서도 돈치치의 존재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가 단순한 득점원이 아니라 팀 밸런스를 맞춰주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르브론이 수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최근 레이커스의 수비 효율성은 리그 1위까지 상승했다. 뉴욕전 4쿼터에서 단 15점만을 허용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돈치치의 이적은 그의 친정팀인 매버릭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25일, 그는 트레이드 후 처음으로 친정팀 댈러스를 상대하며 19득점 15리바운드 12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경기 후 그는 “(댈러스가 날 트레이드한 것에 대해)감정이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는 레이커스 팬들이 “땡큐 니코(Thank You, Nico!)”를 외쳤다. 댈러스 단장 니코 해리슨이 돈치치를 트레이드한 것을 비꼬는 의미였다. 처음부터 이 트레이드는 논란이었다. 돈치치를 내보낸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댈러스는 카이리 어빙과의 조합을 유지하며 새로운 전력을 구성하려 했지만, 오히려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설상가상으로, 돈치치 트레이드로 얻은 앤서니 데이비스마저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댈러스의 시즌 계획은 완전히 어긋났다. 댈러스 팬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다. 경기장에는 빈 좌석이 늘어났고, SNS에서는 ‘#해리슨아웃’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오를 정도다. 반면, 레이커스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돈치치와 르브론의 조합은 공격뿐만 아니라 경기 운영에서도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력까지 리그 최상위권으로 올라서면서 팀의 완성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JJ 레딕 감독은 “이제 우리는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조직력과 팀워크가 우리의 새로운 무기”라고 강조했다. 경기장에서는 르브론(23번)과 돈치치(77번)의 등번호를 합친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포스터와 사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선수의 시너지가 극대화됐다는 의미이자, 팬들의 기대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루카 돈치치의 합류는 레이커스의 DNA를 다시 세팅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라 팀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코비 브라이언트 이후, 다시 한 번 NBA 정상을 노릴 슈퍼스타가 나타났다. 레이커스 팬이기 이전에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도, 댈러스가 돈치치를 레이커스로 보낸 이유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이제 레이커스의 중심이며,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팀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레이커스 경기장 최근 레이커스 이후 레이커스 레이커스 팬들
2025.03.10. 18:45
조지아주의 명문 조지아텍의 풋볼 경기장에 현대차 이름이 붙여진다. 조지아주 대학 교육위원회(Board of Regents)는 조지아텍의 풋볼 경기장 이름을 '바비 도드 스타디움 앳 현대 필드'(Bobby Dodd Stadium at Hyundai Field)로 바꾸는 안건을 승인했다고 8일 밝혔다. 현대차 미국 법인은 경기장에 자사 이름을 넣는 권리를 얻기 위해 조지아텍 체육협회dp 5500만 달러를 제공하고, 향후 20년 동안 이름을 유지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현대 필드'라는 이름이 20년 동안 붙여진다면 회사 측은 1년에 275만 달러를 지불하는 셈이다. 샌드라 노스 교육위원 부총장은 애틀랜타 저널(AJC)에 "10년 계약에 5년 갱신을 두 번 할 수 있는 계약이며, 만일 대학 평판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아텍 풋볼 경기장 이름에 '바비 도드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은 변하지 않으나, 당초 '그랜트 필드'(Grant Field)였던 이름이 '현대 필드'로 바뀐다. 학교 측은 또 변경하기 이전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 경기장 내부에 전시물을 만들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웨스트 포인트의 기아차 공장,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현대차 공장을 두고 있으며, 사바나에는 대규모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에 더해 명문 조지아텍의 경기장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동남부 지역에서 더욱 로컬 친화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랜트 필드의 바비 도드 스타디움은 지난 1913년 개장했으며, 5만5000명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바비 도드는 1945~1966년 조지아텍의 전설적인 풋볼 코치 로버트 리 도드(Robert Lee Dodd)를 가리킨다. 지난 2020년 K팝 그룹 BTS의 애틀랜타 공연이 이곳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ESPN의 대학 풋볼 전문 기자 피트 써멜은 8일 트위터를 통해 "소식통에 따르면 경기장 이름 변경 외에도 다른 스폰서십을 합쳐 7000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아 기자경기장 풋볼 풋볼 경기장 현대 필드 경기장 이름
2023.08.08. 14:26
올림픽은 한때 아마추어의 잔치였다. 대부분의 종목이 프로선수 출전을 금지했다. 올림픽 상업화의 효시인 1984년 LA올림픽부터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완화됐다. 그런가 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남자축구에 출전 선수 나이 제한(23세 이하)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남자축구에서 나이 및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없었던 유일한 대회다. 그렇기에 대회 출전국과 선수의 면면이 월드컵과 맞먹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축구에는 16개국이 출전했다. 조별 리그에서 한국은 미국·소련·아르헨티나와 함께 C조에 속했다. 한국은 2무 1패, 조 3위로 탈락했다. 금메달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2-1로 꺾은 소련이 차지했다. 당시 소련팀을 이끈 지도자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한국이 세계 축구에 눈뜨게 한 그 감독이다. 그는 1943년 키이우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선수 시절에도 우크라이나 명문클럽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소련 축구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올레흐 블로힌과 이호르 벨라노우(러시아 발음 이고리 벨라노프)다. 두 선수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블로힌은 1952년 키이우, 벨라노우는 1960년 오데사에서 각각 태어났다. 둘 다 선수 시절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득점 기계’로 불린 안드리 셰우첸코와 함께 ‘발롱도르’를 수상한 세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이들 외에 발롱도르를 받은 소련(러시아 포함) 선수는 ‘거미손’ 레프 야신뿐이다. 여자체조의 전설 라리사 라티니나는 1956년 멜버른,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에 걸쳐 금 9개, 은 5개, 동 4개 등 모두 18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는 1934년 헤르손에서 태어났고 키이우에서 자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세르히(러시아 발음 세르게이) 붑카는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 최초로 6m를 넘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겼다. 붑카는 1963년 루한시크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일부는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다. 한때 이들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와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이들의 후예인 수많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자신들이 뛰던 경기장을 떠나 총을 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안타까운 전사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루빨리 이 미친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곳이 바로 그들 자리다. 장혜수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J네트워크 경기장 우크라이나 선수들 우크라이나 출신 서울올림픽 남자축구
2022.03.13. 19:07
올림픽은 한때 아마추어의 잔치였다. 대부분의 종목이 프로선수 출전을 금지했다. 올림픽 상업화의 효시인 1984년 LA올림픽부터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완화됐다. 그런가 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남자축구에 출전 선수 나이 제한(23세 이하)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남자축구에서 나이 및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없었던 유일한 대회다. 그렇기에 대회 출전국과 선수의 면면이 월드컵과 맞먹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축구에는 16개국이 출전했다. 조별 리그에서 한국은 미국·소련·아르헨티나와 함께 C조에 속했다. 한국은 2무 1패, 조 3위로 탈락했다. 금메달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2-1로 꺾은 소련이 차지했다. 당시 소련팀을 이끈 지도자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한국이 세계 축구에 눈뜨게 한 그 감독이다. 그는 1943년 키이우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선수 시절에도 우크라이나 명문클럽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소련 축구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올레흐 블로힌과 이호르 벨라노우(러시아 발음 이고리 벨라노프)다. 두 선수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블로힌은 1952년 키이우, 벨라노우는 1960년 오데사에서 각각 태어났다. 둘 다 선수 시절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득점 기계’로 불린 안드리 셰우첸코와 함께 ‘발롱도르’를 수상한 세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이들 외에 발롱도르를 받은 소련(러시아 포함) 선수는 ‘거미손’ 레프 야신뿐이다. 여자체조의 전설 라리사 라티니나는 1956년 멜버른,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에 걸쳐 금 9개, 은 5개, 동 4개 등 모두 18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는 1934년 헤르손에서 태어났고 키이우에서 자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세르히(러시아 발음 세르게이) 붑카는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 최초로 6m를 넘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겼다. 붑카는 1963년 루한시크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일부는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다. 한때 이들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와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이들의 후예인 수많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자신들이 뛰던 경기장을 떠나 총을 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안타까운 전사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루빨리 이 미친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곳이 바로 그들 자리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경기장 우크라이나 선수들 우크라이나 출신 서울올림픽 남자축구
2022.03.13. 17:04